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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전망 l 가계저축률 하락
90년대 20% 육박…2012년 4.7%기업은 소득증가율 6배 될 때
가계는 12.7%→6.1% ‘반토막’
국민연금 등 사회부담금도 원인 소득 고려 않은 저축장려 되레 ‘독’
기금운용 등 근본적 해결방안 필요
최근 우리 경제에서 가계저축률 하락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초 20%에 육박했던 가계저축률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하락해 2012년 4.7%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9%)보다 크게 낮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일부 위기국이나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등을 제외하면 거의 최저 수준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가계저축률 하락은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자금잉여 부문인 가계의 저축률 하락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투자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투자재원 부족은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계저축은 일종의 ‘충격 흡수제’ 구실을 한다. 경제위기 등으로 가계소득이 급감할 때 저축은 소비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돼 소비의 변동성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낮은 가계저축률은 소비와 경제 전반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계저축률 하락의 원인으로 제일 먼저 지적되는 것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양극화 현상이다.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1990년대 12.7%에서 2000년대에는 6.1%로 낮아진 반면, 기업소득 증가율은 같은 기간 4.4%에서 25.2%로 대폭 확대됐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계부문으로 원활하게 환류가 되지 못한 것이다. 저축의 원천은 소득이기에, 이는 곧 가계저축률 하락과 기업저축률 상승으로 귀결된다. 연평균 기업저축률은 1990년대 11.9%에서 2000년대 15.9%로 상승한 반면, 가계저축률은 같은 기간 16.1%에서 5.8%로 급락했다.
가계저축률 하락의 또다른 원인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부담금의 증가다. 1989년 건강보험 확대 실시를 거쳐 1999년 국민연금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됨에 따라, 특히 저소득층의 연금가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사회보험 부담률은 크게 높아졌고, 이 또한 가계부문의 저축 여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됐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부담금 증가로 인한 가계저축률의 하락폭은 2000년대 평균 4%포인트 안팎으로 추정된다.
사회보험 부담금 증가는 가계저축률 하락과 동시에 정부저축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연평균 8.2%였던 정부저축률은 2000년대 들어 9.9%로 상승했다. 국민연금 등은 사실상의 강제저축 제도로서, 가계가 지출하는 연금 부담액이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저축으로 계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요인으로 인해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이지만, 기업과 정부의 저축률이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총저축률은 3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2011년의 총저축률 31.7%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가계저축률 하락이 가계와 기업부문 간의 소득 양극화, 사회부담금 증가 등에서 주로 비롯된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금융상품이나 과세제도의 변경을 통해 가계저축 증대를 도모하는 것은 실효성이 크다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저축률 하락의 근본 원인에 대한 대응 없이 저축 증가만을 꾀하는 것은 내수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마저 있다.
소득분위별 가계수지를 보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1분위의 가계수지는 1990년대 말부터 적자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데, 이는 저소득층의 경우 저축 여력이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저축 촉진 정책은, 이들이 추가적인 소비 여력이 있는 계층임을 생각할 때 오히려 내수 회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가계저축률 제고를 위한 첩경은 기업과 가계부문의 소득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는 것이며, 아울러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통해 이들의 저축 여력을 확보해주는 것에 있다.
또한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금이 사실상 가계부문의 강제저축임을 고려할 때, 적립된 보험금의 운용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 경제가 내수부진 우려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가계의 강제저축 등을 통해 적립된 기금은 대부분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되고 있다.(국민연금기금의 경우 채권 64.8%, 주식 26.7%, 대체투자 8.4%, 2012년 말 기준) 노후대비를 위한 사회보험의 필요성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현재의 소비가 과도하게 제약되고 동시에 이 과정에서 적립된 기금이 대부분 금융시장에 투자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현재의 성장 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중장기적인 미래 대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일섭/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