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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설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교양인·2만3000원
1996년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개발(development) 분야의 국제적인 기본 도서로 널리 읽혀 온 필립 맥마이클 미국 코넬대 교수의 <거대한 역설>(Development and Social Change)의 2012년 개정 5판 완역본이다. 기존 이론을 보충하고 신자유주의 파산 이후 자원 고갈과 생태·환경 파괴까지 겹쳐 한계에 봉착한 개발 실태와 지속 가능한 대안 담론 및 그 실천 동향까지 충실히 담았다.
<거대한 역설>은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주로 경제 발전이나 성장 관점에서 이해해 온 개발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주류적 관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맥마이클은 개발을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이 책이 왜 경제 만능주의적 개발 비전, 일종의 통치형태로서의 경제주의, 그리고 생태 안전을 명백히 위협하는 경제주의적 접근을 사회운동이 문제삼고 거기에 저항하는지를 얘기하는 것이라며, “그 기본틀이 정치적이고 세계사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그는 개발을 “일종의 정치적 구성물로서, 식민지배 본국, 정치·경제 엘리트, 다자간 국제기구 등 지배적 행위자들이 세계 질서를 수립하고 그 질서에 대한 반대를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식의 접근은 서구 근대 자본주의적 개발을 자연스런 진화·진보의 귀결, 서구사회를 인류의 궁극적이고도 유일한 도달점으로 받아들여 온, 또는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 온 사고방식에 대한 급진적 전복일 수 있다.
맥마이클은 개발의 역사 자체가 바로 서구가 비서구권 식민에서 빼돌린 자원으로 서구의 산업화를 추진한 주된 접근 틀, 기획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백인이 져야 할 (숭고한) 짐’이라는 가면을 쓴 서구 자본주의 근대의 인종주의적 식민 침탈과 지배로서의 개발은 처음부터 일종의 권력관계였다. 국가의 공식적인 프로젝트로서의 개발이 본격 추진된 것은 2차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부터. 신생 독립국 지배자들은 ‘국민을 잘살게 만드는 경제개발’을 내세워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고, 서구 지배세력은 냉전체제에서 우위를 지키고 옛 식민지들에 대한 지배·종속 관계를 사실상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개발담론을 활용했다. 맥마이클은 이를 지배엘리트·자본세력(지배적 행위자들)이 노동운동과 탈식민운동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국민국가 시스템 테두리 내에서 사민주의적 요소를 가미해 시장을 규제하는 ‘내장된 자유주의’적 개발로 본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에 부닥친 1970년대 이후 국가 통제보다는 시장 자유·민영화·자본의 이동 및 접근성 자유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바로 ‘지구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것 역시 남미와 아랍권 등의 지역 및 계급적 대항세력의 저항, 워싱턴 컨센서스와 신자유주의 파산, 자원고갈과 생태·환경 파괴 속에 경제·정치·생태적 안전을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이런 거시적 주기 담론에 <거대한 전환>의 칼 폴라니가 이론적 함의로 제시되는데, <거대한 역설>이란 제목도 거기서 따왔다. 책은 이런 단계별 개발 및 저항의 이론과 실제를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5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생생하게 종합했다.
오랫동안 성공회대에서 국제 엔지오(NGO, 비정부기구)론을 가르치며 이 책을 기본 텍스트의 하나로 삼아 온 옮긴이 조효제 교수는 이 책이 “개발의 의미와 본질을 역사적·정치적·사회적으로 따져보고, 우리가 왜 개발을 직선적 진보 논리와 진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소중한 길잡이”이자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문명비판서”라고 평가했다.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