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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복원의 정치, 이제 현장의 먹고사는 문제로 선회하자
시놉티콘
2013. 9. 8. 15:10
중산층 복원의 정치, 이제 현장의 먹고사는 문제로 선회하자
20년 전에 비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약 18%나 줄었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이 하층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늘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식생활'이라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낀다면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빈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2013년 그 순위를 보면 식생활, 교육비, 주생활, 의료비, 의생활로 나타났다.
먹...고 가르치고 잠 자고 아프면 고치고 때되면 옷을 입는 문제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일상이다. 그 일상에서부터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무역규모 10위, G-20 국가, 2만불이 넘는 시대라고 강변해도 무의미하다. 그렇게 빛나는 외형에도 그 속살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늪으로 빠지고 있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이긴 해도, 정도의 문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것이 너무나 큰 차별도 드러난다면 그건 고통이고 참기 어려운 삶이다.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그 해결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비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이야기가 돌도록 해야 한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리타이어푸어 온갖 빈곤의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그것이 오늘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지면을 채우고 화면을 채우는 것은 온통 '광기'와 '윗사람들의 정치이야기'로 도배질 되고 있다. 대명천지에 '내란죄'가 술자리 안주가 되고, 도대체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국정원이란 곳의 지난 대선에서 벌인 댓글질이 6개월 이상을 정치권의 화두를 '이끌고' 있다.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루한 기싸움만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변화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20년이 넘어 다시 '망령'으로 부활했다. 독재와 싸우기 위해 비합조직을 만들어 그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전사들이 새로운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80년 민주화의 성과와 그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기관의 행태 하나 제대로 교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진보의 해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도대체 모르겠다. 2008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PNC 리포트에서 "진보의 해체와 정당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다시 5년 이후 이 문제가 재론되고 있다. 얼마전 페북에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단상을 올린 적이 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회의 재구성이다. 일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자기 동네를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해,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협동조합의 지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귀농과 귀촌을 통해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지역의 공동체 사업이 작은 손들에 의해 조금씩 영글고 있다. 그 바탕에서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삶의 자유와 진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함께 깃들어 있다.
더 답답한 것은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식생활'이라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낀다면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빈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2013년 그 순위를 보면 식생활, 교육비, 주생활, 의료비, 의생활로 나타났다.
먹...고 가르치고 잠 자고 아프면 고치고 때되면 옷을 입는 문제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일상이다. 그 일상에서부터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무역규모 10위, G-20 국가, 2만불이 넘는 시대라고 강변해도 무의미하다. 그렇게 빛나는 외형에도 그 속살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늪으로 빠지고 있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이긴 해도, 정도의 문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것이 너무나 큰 차별도 드러난다면 그건 고통이고 참기 어려운 삶이다.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그 해결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비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이야기가 돌도록 해야 한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리타이어푸어 온갖 빈곤의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그것이 오늘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지면을 채우고 화면을 채우는 것은 온통 '광기'와 '윗사람들의 정치이야기'로 도배질 되고 있다. 대명천지에 '내란죄'가 술자리 안주가 되고, 도대체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국정원이란 곳의 지난 대선에서 벌인 댓글질이 6개월 이상을 정치권의 화두를 '이끌고' 있다.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루한 기싸움만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변화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20년이 넘어 다시 '망령'으로 부활했다. 독재와 싸우기 위해 비합조직을 만들어 그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전사들이 새로운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80년 민주화의 성과와 그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기관의 행태 하나 제대로 교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진보의 해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도대체 모르겠다. 2008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PNC 리포트에서 "진보의 해체와 정당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다시 5년 이후 이 문제가 재론되고 있다. 얼마전 페북에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단상을 올린 적이 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회의 재구성이다. 일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자기 동네를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해,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협동조합의 지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귀농과 귀촌을 통해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지역의 공동체 사업이 작은 손들에 의해 조금씩 영글고 있다. 그 바탕에서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삶의 자유와 진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함께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