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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신울
리히 벡 지음, 홍찬숙 옮김
길·2만5000원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69)이 출세작 <위험사회>(1986) 이후 줄곧 매달려온 작업은 크게 보아, 서구 중심으로 추구되고 형성돼 온 근대성의 한계를 탈피하고 새로운 근대, 곧 ‘제2의 근대’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뒤 줄기차게 펴낸 <정치의 재발견>, <지구화의 길>,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같은 책은 그런 모색의 소산이다.
2002년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에서 벡은 <위험사회>의 기본 테제(개념)인 ‘개인화’가 방법론에서 일국적 시각에 갇혀 있었다고 자기 비판하면서 세계 시민주의 시각, 곧 세계 시민주의 사회학을 본격 표방한다.
벡이 2008년에 내놓은 <자기만의 신>은 자신의 기본 개념인 ‘개인화’와 ‘위험의 지구화’에 대한 생각을 발판 삼되 세계 시민주의 시각을 곧추 세우면서 종교의 세계화, 세계화된 종교가 낳는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자기만의 신>은 근대라는 것이 ‘탈주술화’(막스 베버), ‘세속화’(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에서 시작되었고 이 세속화가 민주주의와 근대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면, 근대화가 세계 차원으로 진전된 지금 21세기에, ‘종교의 귀환’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죽은 한 유대인 여성의 일기를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여성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끊임없이 독백처럼 대화했던 ‘신’이 유대교의 신도, 기독교의 신도 아닌 그 무엇, “속수무책의 신이 침묵하는 상태에서 독백하듯 대화하듯 읊는 기도”, 곧 종교적 영성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벡은 ‘자기만의 신’이라 명명한다. 자기만의 신은 종교의 ‘개인화’의 다른 이름이다. 근대화로 말미암아 제반 사회생활 영역에서 개인의 불안이 커짐에 따라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벗어나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외려 늘고 있다. 벡은 ‘자기만의 신’ 현상이 서유럽에서 기독교 신자는 급감했지만 무슬림 신자는 늘고 있다는 점, 아시아·아프리카에서 기독교도와 힌두교·불교도가 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종교의 귀환’ 현상의 한 양상을 이룬다고 파악한다.
벡은 종교의 귀환은 20세기 후반까지 근대 200여년을 지배했던 ‘세속화 이론’, 곧 “계몽을 통해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영역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세속화 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종교는 소멸한다’는 세속화 테제는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종교의 면모가 변모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 테제는 갈수록 느는 종교의 개인화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벡은 종교의 개인화를 ‘새로운 근대성’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으로 지목한다. 근대화가 진전되면 종교전쟁, 종교갈등이 사그라지리라 기대했던 세속주의의 희망은 오류로 판명됐지만, 종교간 문명적 공존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종교의 공존 조건으로 벡이 제기하는 관용의 원칙은 “진리가 아닌 평화”이다. “(각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가 위협하는 것이 평화뿐 아니라 인류의 지속적 실존이기 때문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