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와 사공일 본사 고문은 1980년대 중반부터 교류해왔다. 두 사람은 상아탑 경제학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론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론적 엄밀성 못지않게 현실적 대안을 중시했다. 이런 두 사람이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마주 앉았다.
▶사공일=한국 독자와 정책 담당자, 비즈니스 리더들이 세계 경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미국 경제부터 살펴보자.
▶마틴 펠드스타인=미 경제 상태가 좋다. 특히 노동시장 상황이 좋아 보인다. 최근 경제 지표에 따르면 임금이 꽤 올랐다. 실업률이 낮아졌다. 올해 미 경제가 3% 정도 성장할 듯하다. 성장률이 상당히 높고 노동시장 상황이 좋아 연방준비제도(Fed)가 조만간 인플레이션을 경계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공= 더 긴 안목에서 미 경제는 어떨까.
▶펠드스타인=미 경제의 미래를 낙관한다. 미국이 유럽과 일본보다는 혁신과 투자에 유리한 풍토를 갖고 있다.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본시장도 있다. 게다가 기름값 하락은 뜻밖의 횡재다. 단 인구 감소, 특히 노동시장 공급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1인당 소득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사공=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과는 달리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펠드스타인=미 경제가 연 2% 정도 계속 성장하면 침체라고 걱정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서머스 등은 생산성 증가가 너무 저조한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가 정확하지 않아서라고 본다.
▶사공=요즘 일부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들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펠드스타인=난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심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일 때가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아주 낮은 상황이다. 에너지 가격이 떨어진 덕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사공=서머스가 최근 신문 칼럼 등에서 ‘인플레이션 증상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준금리 인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면 미리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낫다’는 요지로 말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펠드스타인=윌리엄스 쪽이다. 윌리엄스는 지금껏 비둘기파(성장 중시)였다. 이런 그도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여름 내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글을 썼다. 그때 우리는 제로 금리 정책 때문에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고위험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신흥국과 미국 국채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역사적인 평균치에서 벗어나 있다. 현재 비정상 상황이 빠르게 바뀐다면 위험해질 수 있다.
▶사공=소득 증가율이 낮고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펠드스타인=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가장 가난한 계층이다. 극빈층 아이들이 열악한 학교에 다녀야 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일은 심각한 문제다.
▶사공=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주의』란 책을 펴내 많은 사람이 불평등 문제를 주목하게 됐다. 그런데 그는 노동과 자본으로 너무나 단순화한 모델로 경제를 분석했다. 창의적 기업가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당신이 늘 주장한 통계의 부정확성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인 듯하다.
▶펠드스타인=전적으로 동감이다. 피케티가 사용한 소득분배와 관련된 조세자료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사공=요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펠드스타인=유로존 탄생 순간부터 나는 유로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태가 나빠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사공=당신이 그때 밝힌 비관적인 평가와 전망을 잘 알고 있다.
▶펠드스타인=유로존 회원국은 서로 다른 법과 노동시장, 가계 체계를 갖고 있다. 이런 마당에 유럽연합(EU)본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사공=그럼에도 유로존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평가할 만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QE)를 실시하기로 했다. 결과가 어떨지 궁금한 한국 독자가 많다.
▶펠드스타인=마리오 드라기(ECB 총재)의 QE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QE가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국채 금리가 연 4% 정도 됐었기 때문이다. QE로 국채 금리가 2% 정도로 낮아졌다. 그 덕분에 주가가 급등하고 집값이 회복했다. 이런 효과가 유럽에선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그들이 총수요를 늘리려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세금 인센티브 같은 조치 말이다.
▶사공=요즘 그리스 새 정부가 채권자인 트로이카(EU·ECB·IMF)와 협상하고 있다. 그리스는 어떻게 될까.
▶펠드스타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렉시트는 그리스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은행들에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끝은 아니다.
▶사공=내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면, 유로존과 EU를 붕괴시킨 정치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메르켈이 자국 유권자들을 의식해 강경하게 발언하고 있고 그리스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시일 안엔 그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펠드스타인=나도 타협할 것으론 본다. 하지만 그리스가 구조개혁과 재정 건전화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사공=한국 독자들은 당신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펠드스타인=1982년 이후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들은 놀라운 변화를 이룩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은 중대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중공업이나 수출보다는 도시 생활 여건과 서비스 산업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화의 리스크가 크기는 하지만 큰 효과를 볼 것 같다.
▶사공=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중국의 그림자 금융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이나 유럽만큼 크지 않다. 미국은 파생상품 때문에 그림자 금융이 복잡했지만, 중국은 단순해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펠드스타인=금융위기 때 정부가 은행에 돈을 투입해 부실 자산을 제거해줬다. 미국과 유럽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할 때 저항이 만만찮았다. 일본이 과감하게 부실 자산을 정리하지 못했다. 중국의 경우엔 그런 저항이 없을 것 같다(중국은 미국보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구제금융을 투입할 것이란 얘기다).
▶사공=일본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펠드스타인=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세 가지 화살(무제한 QE, 재정투입, 구조개혁)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사공=세 번째 화살(구조개혁)이 아직 제대로 발사되지 않은 상태라고 봐야 한다.
▶펠드스타인=나도 그렇게 본다. 세 번째 화살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효과가 클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재정정책과 관련해 아베가 소비세를 인상했다. 그 바람에 경제가 다시 심각한 둔화 양상을 보였다. 물론 일본의 장기적인 문제는 재정적자와 엄청난 국가 부채다.
▶사공=아베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처럼 구조개혁에 투철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구조개혁 의지로 충만한 정치인은 아닌 듯하다.
▶펠드스타인=요즘 내가 낙관적으로 보는 나라가 인도다. 두 달 전에 인도를 방문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재무장관 등을 만났다. 경제구조 개혁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사공=인도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모디의 개혁적인 리더십이 전 총리인 만모한 싱보다는 강해 보이던가.
▶펠드스타인=훨씬 강하다. 내가 싱 전 총리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좋아한다. 하지만 총리로서 그는 유명무실했다. 실권이 없었다.
▶사공=인도 경제가 내년엔 중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펠드스타인=그럴 순 있다. 중국보다 빨리 성장하면 심리적으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 경제가 저점에서 회복하는 것이라 큰 의미는 없을 듯하다.
▶사공=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시아 중시’ 전략 핵심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다. TPP 협상이 곧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펠드스타인=오바마가 내세울 업적의 하나로 TPP를 성사시킬 것으로 본다.
▶사공=요즘 미국 일각에선 환율조작 금지 규정을 TPP에 넣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TPP 같은 양자 또는 다자간 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다루다 보면 정치적 갈등으로 변질하기 쉽다.
▶펠드스타인=무엇을 환율 조작으로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공=그렇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과 QE 같은 거시경제 정책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다.
대담 = 사공일 본사 고문
정리=강남규 기자
사진=안정규 JTBC 기자
마틴 펠드스타인
-1939년생
-하버드대 경제학 석좌교수 겸
전미경제연구소(NBER) 명예회장
-미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
-1970년대 중반부터 30년간 NBER 회장 역임
-전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1977년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하버드대 경제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