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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은 생각하지마

파놉틱 정치 읽기

프레임은 생각하지마

시놉티콘 2015. 7. 29. 16:29



프레임은 생각하지마


한겨레 칼럼, “‘좌-우’ ‘보수-진보’ 위험한 이분법”을 읽으면서 눈에 계속 들어오는 단어, ‘프레임’. “여의도의 정당 전략가(?), 능력 있는(?) 기자, 능력 있는(?) 당직자,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국회의원으로 지칭되는 분들”의 말씀에서 항상 나오는 단어가 ‘프레임’이다. 오늘 칼럼에도 여지없이 등장한 프레임.

도대체 프레임이 뭐야? 그것이 뭔데 수많은 대중을 속이고 정당 내부를 뒤흔들고 새누리당의 독주를 가능하게 하는 거야? 아무리 살펴봐도 모르겠다. ‘프레임.’

프레임(frame)? 찾아봤다. 그 유명한(?)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오랜만에 다시 꺼내서 확인했다. “프레임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라고 한다. 또한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이 무슨 생뚱맞은 말인가? 즉 ‘인지적 무의식’이란 “두뇌에서 무의식적으로 처리되면서 심리작용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작용”이며, 프레임은 그것의 일부라는 것이다. 곧이어 “의식적인 형태로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우리가 사고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나,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도 프레임을 추론할 수 있다. 모든 단어는 개념적 프레임에 맞추어 정의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또는 프레임의 집합)이 작동한다.” 따라서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고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계속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두뇌에 처리되면서 유권자의 심리작용과 행동에 영향을 주어서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다는 그런 ‘뇌과학적’ 추론이라고 판단된다. 이 가설에 의하면, 핵심은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다르게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다.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하면 다르게 생각이 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고, 상식으로 통용되던 것도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인가? 사람이 언어로만 소통하는가? 말과 언어를 바꾸면 그 사람이 변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가?

그럴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교감과 공감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도 그 동물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이 싫은지? 왜 힘들어 하는지? 알 수 있다(단, 동물학자들이 훨씬 더 우수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진심을 공감하지 않으면 그의 말과 태도가 변했다고 해서 그를 믿지 않는다. 말보다 더 빠르고 말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교감‧공감이라는 능력(뇌과학에서는 ‘거울뉴런’이라고 한다), 인류의 오래된 진화의 누적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옛날부터,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의미를 다하지 못한다"(易經, 繫辭上傳), "교묘한 말은 덕을 어지럽힌다"(論語, 衛靈公)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라촐리티의 연구’, ‘야코보니의 연구’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해명되고 있다. 언어는 사람이 말하자고 하는 그 의미를 다하지 못하고, 언어를 통해 바꾸려는 것은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칼럼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새정치연합 안에 여당이 만든 엉터리 프레임으로 다른 계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심하다.”…“프레임의 위력은 강력했다. ‘보수는 다소 부패했지만 대체로 유능하고, 진보는 다소 깨끗하지만 대체로 무능하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는 식의 근거 없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지금도 새누리당의 필승 전략이 바로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이다.”

‘여당이 만든 엉터리 프레임’이 이분법적 가설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분법적 가설이 없이 진행된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가? ‘엉터리’라는 것도 우습다. 제대로 작동했다면 정교한 프레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프레임의 위력은 강력한 것이라는 논리와 연결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한심할 이유도 없다. 프레임은 강력하게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장난’이라고 ‘프레임의 낙인’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된다. 언어전략을 바꾸라는 것일 텐데, 이분법적 논리와 가설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일 텐데. 언어 이전에 자세와 태도,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 보수는 유능하지 않았던가? 진보는 무능하지 않았던가? 이것부터 성찰해야 한다. 왜 유권자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단지 언어 때문에, 프레임 때문에? 그렇게 유권자에게 보이도록 했기 때문이다. 언어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태도로 이미지로 그외 등등…. 그렇다면 그것부터 변화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진짜 새정치민주연합에 애정이 있다면, 아니 보수정권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유권자에게 그렇게 낙인찍힌 행동, 태도, 이미지, 자세부터 바꾸라고 해야 한다. 유권자와 공감은커녕 교감도 못하는 것 같은 상황부터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냐고, 가서 계속 들어라 귀로, 가서 계속 봐라 눈으로, 가서 계속 일해라 몸으로…그렇게 교감은 시작되고 그런 누적의 시간이 공감으로 전환되고 우린 더 깊은 이해의 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너무 말 많이 하지 말자. 국회의원부터 전략가란 분들 마이크 잡으면 너무 말이 많다. 국회에서도 정당에서도 지역구에서도 행사장에서도 마이크 못 잡으면 안달이 난다. 거기에 방송과 언론이 붙으면 더욱 가관이다. 듣고 느끼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다수유권자연대와 풀뿌리 조직이 만들어진다. 언어만 바꾼다고, 말만 바꾼다고, 무의식 속에서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까? 영향이야 받겠지만, 사람들은 단박에 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그가 왜 말을 머뭇거리는지, 왜 말을 더듬는지, 왜 말을 빨리하는지, 왜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지, 언어보다 말보다 더 빠르게 우리는 교감과 공감으로 안다.

그것도 단박에…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사람 볼이 붉게 물든다. 우리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감정으로 가슴으로 느끼면서 서로를 알아왔고, 그 마지막 단계에 언어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왜 가장 미숙한 수단으로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칼럼들이 오히려 ‘프레임’을 상업화하고, 고착화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좌-우’ ‘보수-진보’ 위험한 이분법

등록 :2015-07-29 00:17수정 :2015-07-2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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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창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도 민생을 위한 무한경쟁을 하지 않고 당의 구성원들이 중도개혁이니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 뒤에 숨어 개인과 정파의 이익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28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 대표실에서 당 정체성에 대한 6차 혁신안을 발표하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절절한 반성에 이어 김상곤 위원장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념을 민생제일주의로 선언했다. 을지로위원장 우원식 의원이 당 정체성 소위원장으로 내용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최재천 정책위의장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최재천 의장은 지속가능한 사회, 포용적 성장과 시장경제,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공화제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모든 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성장은 보수가 하고 분배는 진보가 한다는 담론은 지극히 편협한 이분법”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혁신위원회와 비주류 정책위의장의 당 정체성과 정책노선에 대한 구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와 노선 갈등을 ‘친노 강경파’와 ‘비주류 중도파’의 대립으로 설명하려는 시각이 있다. 보수 성향 언론과 논객들, 새누리당이 야당의 내부 갈등을 분석하는 프레임이다. 야당의 주축을 ‘친노-좌파-종북-386(486 또는 86)’ 연합으로, 비주류는 호남에 기반을 두고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합리적 진보’로 가정한다. 그럴듯한가?

엉터리다. 당장 비주류인 이종걸 원내대표와 최재천 정책위의장이 왜 문재인 대표보다 종종 더 강경한지 설명하지 못한다. 비주류였던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끊임없이 ‘더 많은 진보’를 요구하다가 탈당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비주류인 박지원 의원이 북한인권법 제정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새누리당의 필승 전략이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

그런데도 새정치연합 안에 여당이 만든 엉터리 프레임으로 다른 계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심하다.

‘강경 친노’ 대 ‘중도 비주류’ 가설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대표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친노 앞에 붙는 강경은 ‘강경 진보’, ‘강경 좌파’를 뜻하고, 비주류 앞에 붙는 중도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중도’, 또는 ‘좌와 우 사이의 중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좌파정당이 아니다. 진보정당도 아니다. 지금도 아니고 과거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좌파정당이나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2002년 대선에서 두번째로 패배한 한나라당과 보수 성향 논객들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 진보정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학술세계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관념적 이분법을 현실 정치세계에 끌어들여 상대를 이념의 늪에 가두려 한 것이다. 프레임의 위력은 강력했다. ‘보수는 다소 부패했지만 대체로 유능하고, 진보는 다소 깨끗하지만 대체로 무능하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는 식의 근거없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

결국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았다. 후보의 경쟁력이 압도적이었지만 그에 앞서 이념 전쟁,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도 기여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7·30 재보궐선거,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때 ‘경제는 새누리당’이라는 펼침막이 곳곳에 나부꼈다. 지금도 새누리당의 필승 전략이 바로 좌-우, 보수-진보 이분법 프레임이다.

미국을 방문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 새누리당이 진보 좌파가 준동 못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걸 공고히 하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더욱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딱 그 프레임이다.

2013년에 터진 이석기 의원 사건, 2014년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분법 프레임을 더욱 강화시켰다. 2010년과 2012년 진보정당과 선거연대를 한 제1야당을 좌파정당이나 ‘종북숙주정당’이라고 몰아붙일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분법은 모든 분야에서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는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는 위험하다. 특히 정치를 이분법으로 설명하는 대가는 치명적일 수 있다.

첫째, 사실을 호도한다. 현 집권세력의 정책은 대체로 보수에 가깝다. 그러나 보수의 필수 요소인 도덕성과 애국심이 부족하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출세주의자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을 대변했던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자와 농민 곁에 서 있었나? 아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외면한 정치세력이 진보일 수 없다.

둘째, 유럽의 중도보수에 가까운 야당의 집권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새누리당의 영구 집권은 보수의 건강성 상실과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극우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이 그렇게 됐다.

셋째, 국민들이 어느 한쪽 가치를 포기할 위험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들은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 침해를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짐이 있다. 경제성장과 보수를 선택하고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보는 것이다. 프레임 효과다.

정당의 가치와 정책노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깃발이 얼마나 다를까. 2012년 대선을 거치며 비슷해졌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 그리고 신뢰로 승부해야 한다. 누가 이 시대의 과제를 진짜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