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53)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전직 당 대표이자 수도권 기반, 대선주자급 정치인의 탈당이다.
정치권은 안 의원의 세력화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세력화 성패에 따라 야권은 분열과 확장의 기로에 서게 됐다. 새누리당도 촉각을 곤두세우긴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지지층과 중도층 이동이 감지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안 의원 탈당이 야권의 분열과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안 의원 탈당은 시기적으로도 예사롭지 않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상황이다. 정치권이 ‘안철수 탈당’ 방정식을 푸는 데 분주한 까닭이다.
현재 여야의 셈법을 가르는 열쇠는 분열과 통합 프레임이다. 하지만 분열과 통합 프레임만으론 안철수 탈당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안 의원 탈당 이면엔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우리가 외면한 현실, 그리고 우리의 달라진 현실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과 당시 정치 지형에 빗대보면 드러난다.
■익숙한 현실 - 거물급 명분있는 탈당, 통합 시너지, 프레임 주도
선거 직전, 거물급 정치인의 탈당(창당 포함) 사례는 적지 않았다. 2000년 16대 총선 한 달 전 당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탈당파가 민주국민당을 만들었다. 한나라당에선 이회창 전 대표의 물갈이 공천에 밀린 김윤환·조순·박찬종 전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이 참여했고 새천년민주당에선 우상호 의원에게 공천장을 뺏긴 김상현 전 의원이 합세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민국당은 전체 득표율 3.7%로 지역구 1석, 전국구 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거물급 정치인들도 거대 양당 독주(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와 지역대립 구도(한나라당이 영남 65석 중 64석, 민주당이 호남 29석 중 25석 차지)에 밀려났다.
2004년 17대 총선 5개월 전 새천년민주당 탈당파들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원, 천정배·정세균 의원 등이 창당 주역이다. 2008년 총선 한 달 전인 3월23일 박근혜 의원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비판했다.
부정부패 정치인 배제 원칙에 따라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을 받지 못했다. 서청원 의원과 홍사덕 전 의원은 탈당 후 친박연대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한나라당을 나와 친박무소속연대 후보로 출전해 당선됐다. 총선 개표 결과 한나라당 131석, 통합민주당 66석, 자유선진당 14석, 친박연대 14석, 친박무소속연대 12석 등으로 나타났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총선 전 거물급 정치인 탈당은 안 의원 이전에도 많았다. 거물급이라 해도 탈당 명분이 분명해야 당선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위기 후 통합’은 총선을 관통하는 원칙이었다. 통합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구조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2004년 총선 전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 노선을 둘러싼 신·구세력 갈등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까지 겹쳐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4월15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정당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에 만족해야 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개혁국민정당과 재야세력 출신 인사, 노사모 등 당내 다양한 정치세력의 단합이 열린우리당의 승리 요인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은 여야 모두 하향식 공천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나라당은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의 탈당이, 통합민주당은 물갈이 공천에 밀려 낙천한 호남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4·9 총선 투표율은 46.1%로 역대 최저치였다. 탈당과 분당, 창당을 되풀이한 정치권 이합집산에 시민들이 정치 불신으로 대응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81석에 머문 통합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됐다. 공천 학살로 한나라당은 분열 위기에 처했지만 박근혜 의원이 당에 남아 공천 탈락자의 신당 창당을 만류하는 등 통합을 깨뜨리지 않았다.
프레임 대결을 주도한 세력이 승리한다는 공식도 ‘익숙한 현실’이다. 1997년 대선 당시 DJP연합, 2002년 대선의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추진,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등은 야권에 승리를 안긴 일등공신이다.
■외면한 현실 - 분열=패배?, 정권심판론=만병통치약?
분열=필패, 통합=필승은 오랜 선거 공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역대 총선 결과에서 이 공식은 일관성이 없었다. 통합과 분열의 성격이 중요한 이유다.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 결과는 의회사상 최초의 여소야대였다.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 순이다. 평민당과 민주당 의석 합계가 129석으로 여당인 민정당을 앞섰다.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87년 대선 이후 지역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선거”라고 진단했다. 실제 민정당은 호남에서, 평민당은 영남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심 교수는 “과거 지역주의는 후보자 개인 차원에서 나타났고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13대 총선 이후 지역주의는 정당 차원, 장기적인 현상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정국 안정화를 앞세워 거대 여당인 민자당이 등장했지만 1992년의 14대 총선 역시 여소야대로 정리됐다. 민자당은 과반에 한 석 모자란 149석에 그쳤다. 민주당은 개헌저지선에 육박한 97석을, 통일국민당은 31석을 얻었다. 민자당은 합당 이후 내각제 각서 파동, 공천 실패, 독선적 당운영 등 심각한 후유증을 드러냈다. 불완전한 통합은 야권 견제를 불렀다. 반면 야당은 분열했지만 여당의 과반을 막았다. 최광웅 데이터연구소장은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민자당을 견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대구와 강원, 경상도 등 민주당 취약지역에서 24석을 얻은 국민당의 도움으로 집권여당 과반의석을 막았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분열된 상태로 임했던 1996년의 15대 총선도 여소야대로 끝났다. 그러나 내용적으론 야권의 패배였다. 당시 국민회의는 야당세가 강했던 서울과 수도권에서 28곳만 이겼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45곳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야권 분열이 여권 분열에 비해 심각했기 때문이다. 민자당 탈당 의원은 5명이었지만 김대중 총재를 좇아 국민회의에 입당한 민주당 의원은 53명이나 됐다. 김종욱 동국대 연구교수는 “어떤 통합인지, 어떤 분열인지가 중요하다. 정치 발전을 위해선 무원칙적인 ‘통합’보다 발전적인 ‘분열’이 더 낫다”고 말했다.
역대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야권의 무기다. 심판론이 강한 선거일수록 야권은 일대일 구도 형성에 사활을 걸었다. 2012년 19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주당은 시민사회세력인 혁신과통합, 한국노총 등과 힘을 합쳐 민주통합당으로 재탄생했다. 같은 해 18대 대선을 치르게 된 터라 통합야당의 정권심판 구호는 어느 때보다 컸다. 한명숙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힘을 모아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당 밖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에도 집중했다. 그러나 각종 공천파동은 내분을 일으켰고, 막바지엔 막말 파동과 형식적 야권연대로 선거 패배를 막지 못했다. 김종욱 교수는 “정권심판론 구호 속에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치러진 선거였다. 사회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야권 스스로가 작위적인 구도에 갇혔다”고 비판했다. 정권심판론이 더 이상 야권의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이후 선거 결과가 보여준다. 2012년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 2014~2015년의 각종 재·보궐선거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보수진영이 유연하게 대응하고 우발적 변수가 오히려 총선판을 장악하는 등 전통적인 심판론은 무의미해졌다. 오히려 심판론은 야권과 국회를 겨냥하는 등 정권의 역심판론이 가동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달라진 현실 - 중도 확산, 호남 변수
최근 선거를 거치며 유권자 지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중도층이 확산되면서 진보 약화, 보수 안정 기류가 굳어지는 추세다. 지지층도 더 이상 전통적 진보와 보수로 나누기 어렵다. 지난 8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우리나라 정당 중 가깝게 느끼는 정당이 있다’는 응답은 37%였다. 이중 고정 지지층 비율은 여당 24%, 야당 13% 정도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도층 비중이 40%를 넘어섰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는 정치권 모두에게 집토끼 결집전략의 궤도 수정을 요구한다. 현안 해결능력이 최우선이다. 여권이 상대적 우위를 갖는 지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새누리당은 중도와 보수의 결합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선거 이전엔 진영론에 기대다가도 선거정국에 돌입하면 중도 유인책을 동시에 구사한다. 이번 총선 의제로 격차 해소를 꼽은 것이 상징적이다.
따지고 보면 역대 선거도 중도층(충청권 포함)을 껴안은 세력이 선거 승리는 물론 정치권 재편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섰다. 민자당은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을 흡수했고 이인제 세력은 자유선진당을 거쳐 여권에 안착했다. 201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일화 파트너였던 정몽준 의원도 새누리당 품에 안겼다. 최광웅 소장은 “보수정당은 불리한 다자구도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중도, 제3세력을 포섭했다. 양당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충청권의 경우 지난 10년간 치러진 총선 결과를 보면 늘 캐스팅보트였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충청권 28석 중 19석을 얻으며 과반정당을 달성했다. 2012년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12석을 차지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지역주의는 역대 총선의 주요 변수였다. 하지만 이번 총선만큼 호남의 파괴력이 큰 선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세력화를 선언한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에다 안철수 신당이 현실화한다면 호남 내 야권 경쟁은 유례없는 다자구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철수(사진) 탈당’은 총선을 앞둔 야권에 위기이자 기회다.
지금처럼 분열과 확장 논란만 지속된다면 위기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총선 직전 통합(연대)한다 해도 ‘이기기 위한’ 몸 불리기나 권력 나누기 컨소시엄에 불과하다. 멀리는 1997년 대선의 DJP 연합이, 가깝게는 지난해 김한길·안철수 통합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 이해관계를 둘러싼 계산이 끝나자 싸늘하게 결별했다. 이승원 성균관대 교수는 “무원칙한 통합은 야권 전체를 후퇴시켰다. 그저 자기 생존을 위한 결사체에 머물게 했다”고 비판했다. ‘생존 결사체’란 오명은 여당에 견주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무엇을 위한 집권인지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구성원들의 공통된 지향점이 있을 리 없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힘겨루기가 공멸을 자초한 배경이다. 이는 여의도 정치권을 넘어 지지층 문화에도 악영향을 남겼다. 한 당직자는 “인터넷 공간에서 양측 지지자들은 노골적으로 편가르기 싸움만 벌인다. 정치 리더들이 지지 명분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차별화 경쟁이 시작된다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는 정책과 노선의 문제다. 야권을 지지할 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답하라는 요구다. 핵심은 새누리당과의 전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혁신에 방점을 둔 안 의원 탈당이 감동을 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청문회 국면도 야권은 그냥 흘려보냈다. 통합을 하더라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납득이 가게 해야 한다. ‘선 통합, 후 투쟁’이 아니라 싸우고 돌파하면서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분열하더라도 ‘어떤’ 분열인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김종욱 교수는 “지금처럼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분열은 안된다. 야권의 총량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새누리당 영향력 축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만약 새누리당 내부가 보수세력 대 개혁세력으로 갈리는 순간 야당은 시야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담론을 주도하게 되고, 정치공론층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면 ‘성공한’ 분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