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틱 평화 읽기

북한 제7차 당대회 중간의 단상

시놉티콘 2016. 5. 9. 17:02


선군(先軍)노선에서 선당(先黨)노선으로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북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30대 초반의 새로운 지도자의 개혁은 왜곡된 사회주의 북한의 구조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당대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사회주의 일당에 의한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점이다. 출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비핵화는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지만 출구를 막고 있는 강고한 잠금쇠다. ‘경제국방병진노선’은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대체되었다. ‘핵 고도화 정치’를 통한 권력구조의 유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북한적 딜레마’, 비핵화의 전략을 선택하는 순간 권력구조의 근본적 버팀목이 부러질 것이라는 ‘북한적 공포’, 출구를 찾기 위한 핵실험 시위와 안보 위기의 지속화는 이제 ‘무딘 칼’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어쩌면 ‘한반도적 아이러니’일 수 있다. 핵실험을 해도 미사일을 쏴도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어디서 나오는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욱 강화된 제재와 압박으로 이어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의 공포는 그럴 리가 없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묻혀버린다. 작은 실수와 작은 변란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의 공포’는 그저 발생하기 어려운 ‘확률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더 이상 이렇게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계기를 포착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좀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동구와 같은 평화적 체제 연착륙만을 기대하기에는 사태가 그리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평화협정’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용어가 미국에도 중국에도 돌고 있다. 중국은 외교부의 공식입장으로 표명되었고,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은 비공개 한국 방문 와중에 평화협정 협상 문제를 언론에 흘렸다. 북한도 군사회담의 가능성과 핵을 보유한 평화협정에 대한 ‘몽상’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대화의 국면으로 다시 재진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니 무의미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해는 하지만 너무 폭력적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북한이 망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북한을 망하게 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런 방식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분단으로 희생되었고 지금도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화협정을 매개로 한 커다란 패키지를 만들어서 대화에 들어가야 한다. 평화는 한반도가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산소호흡기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이며 대통령의 임무이기도 하다. 평화와 통일은 따라서 헌법적 가치다. 평화협정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아주 좋은 가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정말 중요한 역할인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도 잘 먹고 살 수 있고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은 경제 부흥이다. 저성장 구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은 사람들의 창의성과 연대, 사랑의 미덕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북방경제’는 대한민국에게 한반도에게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상상력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것, 분노와 증오를 뛰어넘는 것이다. 진정 가슴으로 저 고단한 국민들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젠 뛰어넘을 때다. 진정 저 고통 받는 북녘의 주민들을 생각한다면, 이젠 뛰어넘을 때다. ‘뛰어넘음’의 대북정책, 쉽지 않겠지만, 계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모든 것을 걸고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북한의 제7차 당대회를 보면서 체념하고 그냥 지나치기에는...이젠 뛰어넘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