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이란 용어가 아니라 민주화세대로 불러야...
50대 유권자의 표심 변동이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마 ‘박근혜 탄핵 사태’가 없었다면 특히 더 중요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차기 대통령은 보수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정권교체 효과는 이미 전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386 세대’여서가 아니라 너무나 과도한 교육 경쟁사회에서 자식을 키우고 있고, 노인들에게 ‘돌봄의 미덕’을 보이지 못하는 ‘반(反)복지 사회’에서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노후 준비는 ‘복에 겨운 소리’고 사교육비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고통의 소리’다. 그래서 세대 사이에 갇힌 50대의 판단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좌표일 수 있다. 특히, 이 세대집단의 선택은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대 분석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세대를 ‘386’이라는 코드로 획일화하는 점이다. 당시 대학 입학 비율은 20~30% 수준이었다. ‘백만학도’를 주장했던 전대협조차 백만학도를 대표할 수 없었고, 오히려 소수자였다. 1965년 이후 태어나서 대학을 입학한 84학번 이후 세대는 민주화의 큰 흐름에 문화적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다. 대학을 들어갔건 들어가지 않았건 군사독재가 아닌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경험한 세대이며, 국민의 힘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능력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의 이념성향을 진보와 보수를 나누기보다는 그들의 경험이 민주화라는 문화적 토대 위에 있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대학을 가지 않은 친구들도 민주화를 만끽했고 세상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에게만 특권이 있지 않았다. 그 세대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특수한 시대’를 만나 좀 더 높았다고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일관되게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았다. 잘못된 정부에 대해서는 투표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당연한 문화였다. 매번 삶을 죄여오는 다양한 고통을 당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무책임한 정부는 비판했다. 진보가 잘못했으면 보수를 선택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고, 보수가 잘못하면 진보를 선택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들에게 이념은 꽉 틀 잡힌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을 선택했다. 그래서 매번 선택 행위에 대해 후회했던 것이다. 어떤 정부도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이념의 잣대로 봐 선 안 된다. 기로에 선 대한민국의 낡은 점은 보수(補修)하고, 좋은 점은 진보(進步)시켜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선택이 20여일 정도 남았다. 이번 선거가 또 다른 내부 전쟁의 시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념의 틀로 세상은 구성되지 않으며, 진영의 가치는 전체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다르다는 것을 적을 분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치의 시대를 끝냈으면 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단죄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의 정치도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그 허울 좋은 ‘정의’도 따지고 보면 권력화 되는 것이다. 그 권력의 힘으로 정의의 기준에 따라 단죄 또는 배제가 진행될 테니 말이다. 동시에 무엇이 정의인지를 둘러싸고 또 다시 싸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대 유권자 중에 소수파가 ‘386’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세대가 소외되는 용어, 소수가 다수로 규정되는 용어는 이제 쓰지 말자. 그냥 50대 유권자 중에서 대학을 들어간 ‘386’들이 있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들은 시대가 요구할 때 도망치지 않고 시대의 요청에 따르려고 노력한 세대다. 하지만 그 시대가 지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귀환했고, 여전히 남아 여의도를 배회한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낡은 가치로 욕을 얻어먹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봉양과 자식 교육으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50대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너무 젊은 나이에 기성에 탐닉하면서 낡은 정치로 비판받았던 ‘정치권 386’들이 진정 민심을 위한 자기희생과 새로운 가치를 실천하는 멋진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1987년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그 격랑을 함께 살아온 50대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는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