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토리아] 러시아혁명 뒤 100년간 세계는
[중앙포토, AP=연합뉴스]
소련, 코민테른 통해 혁명 수출
피압박 민족 해방투쟁 불붙여
중국·북한·베트남 등에 공산정권
폭력혁명 과정 수백만 희생 예사
양성평등 비롯한 진보적 요소 파급
빈부격차 심한 나라선 아직도 위력
중국공산당, 러시아혁명에 자극받아 창당
중국공산당은 1958~62년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고 자본주의 국가들을 추월하겠다며 농공업 증산을 위한 대약진운동을 벌였지만 실패하고 그 여파로 대흉년이 들어 약 3000만 명의 아사자(추산)가 발생했다. 1966~76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봉건주의·관료주의 적폐를 제거하고 ‘혁명 후 영구적 계급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며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그 결과 마오는 반대파를 제거했지만 중국 사회는 홍위병 폭력 속에 암흑기를 겪었다. 공식 통계로 72만9511명이 박해받았으며 3만4800명이 숨졌다. 결국 중국은 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며 경제를 추스를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피의 소용돌이
라오스에선 좌파단체 파테트라오가 1953~75년 내전을 벌여 왕정을 전복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내전으로 2만~6만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에선 무장조직 크메르루주가 1967~75년 24만~3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내전 끝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을 수립했지만 최대 2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킬링필드 대학살을 벌이다 93년 몰락했다. 킬링필드는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대학살로 인류사에 상처를 남겼다. 말레이시아 공산당은 1948~60년, 1968~89년 게릴라전을 벌였다. 65년엔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무장봉기로 정권 장악을 시도하다 실패했으며 그 여파로 약 50만 명이 학살됐다.
빈부격차가 심한 중남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온상이었다. 59년 쿠바에 게릴라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하는 지역 최초의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70년에는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공산당 등과의 좌파연합을 이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미주 지역 최초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하지만 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로 무너졌다. 79년 니카라과에서 무장투쟁으로 다니엘 오르테가의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 90년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오르테가는 선거 패배로 물러났으나 2007년 선거에서 다시 권력을 차지해 현재에 이른다. 엘살바도르는 공산 게릴라의 반란으로 1979~92년 내란을 겪었다. 페루에선 80년 공산반군 ‘빛나는 길’이 게릴라전을 시작해 7만 명의 사망자를 낸 채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1982~97년에는 또 다른 급진단체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이 별도 게릴라전을 벌였지만 97년 무너졌다.
아프리카에선 63년 콩고공화국에서 군사쿠데타로 수립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이 최초다. 소련의 지원으로 탄생한 이 정권은 소련이 무너지자 91년 스스로 공산주의 포기를 선언했다. 에티오피아에선 77년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자당이 쿠데타로 일당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노동자당은 90년 다당제를 약속했지만 이듬해 반군이 집권하면서 지도부가 투옥됐다.
동유럽, 반공·반소 저항 계속
소련 붕괴 이후에도 새롭게 등장
도미니카에선 2000년 노동당이, 볼리비아에선 2006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선거로 집권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요소를 상당히 담은 정책을 펴고 있다. 2007년 재집권한 니카라과의 오르테가도 마찬가지다. 96년 네팔의 마오쩌둥주의 통일공산당은 1996~2008년에 걸친 게릴라전을 끝내고 연정 파트너의 하나로 국정에 참여했다. 그해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부가 들어서면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일부 계승한 정당이 새롭게 정권을 잡은 나라는 한결같이 가난과 빈부격차가 심하다. 100년 전 현실정치에 처음 등장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제대로 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경제적 번영과 국민통합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에선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