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가 이끄는 4차 산업혁명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1위 중국(14억3700만명), 2위 인도(13억6600만명)로 답한다면 당신은 구시대의 국경과 영토에 갇힌 ‘지리의 죄수(prisoner of geography)’일 수 있다. 신시대의 디지털 인구 기준으로는 세상이 달라진다. 2012년 인스타그램(10억명)을 인수한 페이스북(23억 8000만명)은 33억명의 인구를 보유한 압도적 ‘1위 국’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유튜브도 20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큐존(5억7200만명), 틱톡(5억 명), 시나 웨이보(4억6500만명)는 중국을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으로 미국(3억2900만명)보다 더 많은 인구를 보유한 대국이다.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2억7100만명)조차 인스타그램·레딧·트위터·도우반·링크드인·스냅챗 등 신흥 기업에 밀린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은 영토와 국민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상식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혁명이 세계 경제지도 바꿔
인터넷·통신망 초국적 연결이 주도
경쟁력 있는 연결성이 혁신 이끌고
‘지리적 상상력’은 기업 운명 갈라놔
평면적 사고로는 기회 포착 불가능
매켄지 글로벌연구소의 연결지수에 따르면 상품·서비스·금융·사람·데이터 분야의 모든 흐름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중심국가로 싱가포르(1위)·네덜란드(2위)·미국(3위)이 꼽힌다. 전체 16위를 차지한 한국은 상품(8위)·서비스(12위) 분야에서는 앞서 있지만, 금융(28위)·데이터(44위)·사람(50위) 분야의 연결성은 낮다. 기술 강국인 중국(7위) 역시 전체 순위는 높지만 다양한 이민자를 받아들이거나 국경을 넘는 여행을 통해 사람의 연결성을 확장하는 능력(82위)은 부족하다. 반면 메카 성지 순례가 연중 계속되고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람의 연결성 지수 2위 국가다. 반면 서울은 최상위 글로벌 중심지로 뉴욕·런던·홍콩·도쿄·싱가포르·두바이보다 글로벌 연계성이 많이 떨어진다.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융·복합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러 산업에 걸쳐 꼭 필요한 빅데이터·AI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생태계를 조성하며 성장한다.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기차역 플랫폼처럼 외부와 연결성이 높을수록 확장에 유리하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하지만 한국 기업의 플랫폼 경쟁력은 우려스럽다. 글로벌 플랫폼 전쟁터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네이버가 개발한 라인은 아시아에서 부상한 최초의 대형 메시지 플랫폼이었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왓츠앱, 중국의 위챗에 빠르게 추월당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발하다 보니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기 버거워졌다.
4차 산업혁명, 플랫폼 혁명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수록 커넥토그래피가 운명을 좌우한다. 글로벌 플랫폼을 확보해 ‘경쟁력 있는 연결성’을 유지해야 대기업도 생존이 가능한 시대다. 구글·아마존 등 잘 나가는 기업들은 공간정보와 연계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물류비를 절약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지리학자와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를 우대한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과 도시, 국가도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를 잘 찾고 틈새를 찾는 지리적 상상력이 필수다. 이건희 전 회장의 멘토로 삼성전자의 개혁을 이끌었던 요시카와 료조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설명하며 “이제 마케팅은 선진국에서 제 3세계로, 틀에 박힌 분석 보고서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지정학적 제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미 포화상태인 서구 선진국의 안락한 공간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낯선 오지를 계속 탐험해야 하는 이유다.
원천기술과 함께 플랫폼 확장해야
언제나 혁명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일어났다. 첨단 기술이 단기간에 사회 전반에 침투하여 급속하게 생활을 바꾸는 현상을 ‘립 프로그(leapfrog) 성장’이라 하는데, 자기 키를 훌쩍 넘어 크게 점프하는 개구리는 결핍된 환경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낙후된 경제, 불편한 환경이 정보기술혁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동력이 됐다. 2000년대 집에 전화가 없는 사람이 많으니 휴대폰에 열광하고, 농촌에 상점이 부족하니 전자상거래가 발달한다. 은행 통장이 없는 가난한 계층이 두터운 아프리카·남미 등 제 3세계에서 핀테크 등 금융과 결합한 디지털 경제가 급성장한다.
이제 골방에 갇혀 암기에 집중해 시험만 잘 보는 편협한 모범생의 시대는 저물어 간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고립되면 쇠퇴하고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신기술 개발과 코딩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연결과 융합’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의적 인재의 지리적 상상력은 학교와 공장·오피스에 갇혀 있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아름다운 휴양지의 카페, 꽉 막히는 도로의 차 안,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