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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정치

시놉티콘 2020. 11. 27. 13:30

직장생활과 대학생활을 병행하는 고된 4년을 보내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의 청춘과 인생, 행복에 대한 에세이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어린 시절 결정했던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선택
직장생활에서 느꼈던 낯설음과 힘겨움, 눈물과 억울함
설렘으로 만났던 대학 캠퍼스와 직장‧학업 병행의 고충들
그리고 20대 그 또래 모두가 겪는 삶의 이야기들
열심히 살아가는 그 친구들에게도 가시 같은 아픔은 하나 둘 이상 있고
열심히 살아가며 얻고자 하는 큰 꿈과 희망으로 버텨내고
버티다 힘겨워 잠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뒷걸음치기도 하고
그래도 언제나 글의 마무리는 나를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매번 배우고 또 배운다.
나도 지나왔던 길이었지만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고
여전히 철들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모든 것이 후회고 부끄러움이고 아쉬움이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들려왔던 옛날 노래 ‘바위처럼’의 가사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왜 작은 방울이 맺히는지 모르겠다.
10여분을 그냥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가 그렇게 불렀던 이야기처럼
해방세상의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아왔던가?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다짐은 지금도 여전한가?
촛불 이후 만들어가는 세상이 모두를 위한 세상이었던가?

상식과 원칙이 흔들리고
敵과 我만 있는 ‘전쟁의 정치’가 벌어지고
누구의 의견이 나와 다르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고
해방세상은 다를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을 위한 법과 제도는 뒷전이고
왜 싸우는지도 모를 지루한 싸움은 끝이 안보이고
‘준내전’, ‘내전의 정치’

말 한마디, 문장 하나,
스스로 검열 아닌 검열을 해야만 하는 난독의 상황
정신분열증이라도 걸린 듯 다른 이에게 퍼부어야 해소되는 상황
그래서 가장 아끼고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어딘가를 선택해야 하는 강압의 시대
평등을 말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역설의 시대
그래서 누구도 말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그런 혼돈의 시대

절박한 자들에게 우리 세대는 뭐라 말할 것인가?
해방세상의 주춧돌이 되겠다고 바위처럼 그렇게 되겠다고 말했던 우리들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