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상상하라, 두려워마라, 실행하라

약 2500년 전 편찬된 『예기(禮記)』 「대학」에 “재물이 소수에게 모이면 백성은 흩어지고 재물이 만인에게 흩어지면 백성은 모인다(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는 구절이 있다. 즉, 평등은 백성을 모이게 해 국가를 흥하게 하고, 불평등은 백성을 떠나게 해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 명제는 21세기에도 입증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이 확대되면 경제성장률은 하락한다. 한국의 상대빈곤율(2018~2019년)은 OECD 37개 회원국 중 코스타리카, 미국, 이스라엘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인구 중 16.7%, 66세 이상 노인의 43.2%가 중위소득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삶은 가혹함 그 자체다. 그런데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2019년 기준) 비중은 12.2%로 OECD 평균보다 8%나 낮다. 불평등은 심화되는데, 국가는 주머니를 닫고 있다. 올해 1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7%로 사상 최대,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니 국민이 빚더미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소득과 일자리를 연계시킨 기존의 소득분배체계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 해체됐다. 소득은 늘지 않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부는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소득분배체계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다수는 가난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분노는 쌓여만 갈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의회에 ‘억만장자세(billionaire tax)’를 발의할 예정이고, 대규모 증세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 내각도 법인세ㆍ소득세 인상 방안을 내놨다. 우리도 이제 착수해야 한다. 국가의 재정건전성 안정화와 국민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회적 공감ㆍ연대ㆍ나눔에 기초한 증세, 그리고 부자와 이익집단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의 단계적 중단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적 결단이다. 제정당과 대통령 후보들에게 묻는다. 국민이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만 복지 혜택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정의로운가? 이 사회적 빈자들은 평생 무능력한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야 하는가? 부를 ‘빨아들이는’ 기업과 부자에게 국가는 왜 보조금을 지급하는가? 이 불평등 시대에 막대한 이윤을 챙기면서 ‘쥐꼬리’만큼 세금을 내는 부자들에게 국가는 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가? 20세기 중후반(1932~1980년) 미국의 상위 소득에 적용된 최고세율은 평균 81%, 영국은 89%였다.
누구를 위해 국가는 존재하는가? 다수는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소수는 억만장자의 성곽을 쌓는 시대가 정의로운가? 불평등을 부술 망치는 헌법 전문(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에 담겨 있다. 헌법을 실천하는 자가 바로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다. 정치가 다수의 약자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불평등을 부술 망치를 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3개월 보름 정도 남았다.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의 ‘전쟁 같은 정치’와 ‘편 가르기 정치’를 뛰어넘어 불평등과 싸우는 후보를 상상하자. 그런 후보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자. 불평등을 혁파할 후보에게 투표하자. 그래서 이번 대통령선거의 시대정신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라! 그런 세상을 두려워마라! 그리고 불평등 혁파를 실행하라!” 바로 그것이다.
김종욱 동국대 행정대학원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