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10대 시절 좋아했던 노래 중 하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낯선 랩으로 시작된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그리고 잠시 뒤 흘러나오는 노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양희은이 불렀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불러 더 유명해졌던 노래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김남주 시인의 가사에 곡을 붙인 ‘죽창가’,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1990년대 서정적 멜로디로 가슴을 적셨던 민중가요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가사의 내용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가사로 들린다다. 그러나 누구의 인생인들, 하이에나보다 표범처럼 살기를,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겠나. 그러나 누가 반란의 죽창이 되고 싶고, 그 투쟁의 길을 가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누구든 바람처럼 왔다가 그저 이슬처럼 사라지기를 바랐겠나.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누군가의 삶은 모두 전인미답(前人未踏) 길이고, 누구나 가치 있게 살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 비참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하이에나’가 되어야 했고, 이리저리 휘어 빛을 받아야 하는 ‘소나무’가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상록수는 어떤 의미이고, 죽창은 어떤 의미이고, 투쟁의 길은 어떤 의미일까?
도시 곳곳 스피커의 볼륨으로 퍼져 나오는 주장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나? 23일 동안 전국을 들썩일 이야기들이 정말 우리들의 이야기일까? 브레히트의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 말미의 문구가 계속 머리를 맴돈다.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십 년마다 큰 인물이 나온다. 그 비용은 누가 댔을까?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