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런 자(김태효)에게 국가 안보를 맡겨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자(김태효)에게 국가 안보를 맡겨야 하는가.
하이에크를 이어받아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만들고 전파한 이론 공급지이며 신자유주의 전사들을 양성한 곳이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다. 그 유명한 밀튼 프리드먼이 핵심 인물이다. ‘시카고학파’가 양성한 ‘시카고 보이스’는 칠레를 필두로 남미 경제를 완전히 뒤바꾸어놨고, 그 결과는 파산이었다. ‘시카이 보이스’의 실험은 남미에서 동유럽으로 러시아와 중국으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진행되었고, 어디를 가나 불평등의 속도를 높이고, 사회를 이중화했다.
미국 유학파 김태효는 MB 시절부터 보수정권의 핵심 이데올로그이자 실행자였다. 그런 그의 공직자 삶은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돈 봉투를 내밀었다고, 그것도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혔다. 부끄럽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진입이 가능케 하자는 논문을 썼던 그가 북한에 돈 봉투를 내밀었다는 사실은 코미디다. 또한 일본과 지소미아 몰래 밀어붙이려다 실패하면서 청와대를 그만둬야 했고, 나오면서 국가 안보 문서를 가지고 나와 법원으로부터 기밀반출 혐의로 벌금 300만 원과 선고유예를 받은 인물이다. 그 사건을 기소하고 사면한 사람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자 대통령이라는 것이 또한 코미디다.
선의의 도청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학설을 유포하고, 도청의 합법화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안보실 제1차장을 보면서 왜 희극이 비극인지를 알게 된다. 국민은 한일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이 정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는지 의심해야 했고,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미국 정부의 도·감청 행위 폭로에 대해 미국 정부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니라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공직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공직자가 맞는지 의심해야만 했다.
희극이 쌓이면 비극이 되고, 그 비극의 주체는 국민이 된다. 미국과 일본의 대외전략을 위해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 최우선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전 세계의 평화가 최우선인 대외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이자 가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