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과 대한국민이 지켜야할 대한민국
1919년 3‧1 대한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 제가 쓴 연구논문 중 서론 일부와 결론 부분입니다. ‘내란’이 벌어졌던 이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것이 바로 대한독립만세운동입니다.
김종욱, “국가와 시민사회의 항일연합항전: ‘패치워크 역사 접근방법’을 통한 3‧1운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NGO』 제17권 제1호(2019)
1. 들어가며
3‧1운동이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일제에 의한 고종황제의 독시(毒弑)와 미국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의 영향 때문이었다. 일제가 고종황제를 독시했던 이유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에 따른 국제사회의 변화를 포착한 고종황제의 파리강화회의 밀사 파견 실행과, 또 다른 차원에서 준비된 북경 망명 계획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3‧1운동은 고종의 대일항전 독립투쟁을 막으려는 일제의 독시에 맞서 백성이 비폭력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3‧1운동을 통해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했고, 상해임시정부는 불굴의 용기와 수많은 목숨을 바쳐 카이로선언에 대한민국 독립 보장을 확인하도록 했으며, 1945년 마침내 대한민국의 광복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의 성격을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5. 고종과 3‧1운동, 그리고 상해임시정부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조인,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한국군 해산이라는 국권 망실의 과정을 막으려고 고종은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1907년부터 3여 년간 해산 국군과 의병이 연합한 국민군은 일제와 치열하게 전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1910년 병탄되었다. 병탄 이후에도 고종태황제의 독립을 위한 항일운동은 계속되었다. 대한독립의군부의 재건을 통해 항일조직을 재구축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게 전략을 수정하여 비폭력 투쟁노선으로 전환했다.
식민지 백성의 삶은 일제의 강탈과 억압으로 도탄에 빠져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라는 환경을 활용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서 국제사회에 일제의 폭압과 대한의 독립 필요성을 알리는 한편, 북경에 망명정부를 구성할 계획에 착수했다. 이런 정황을 알아챈 일제는 고종을 독시하여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백성은 고종의 죽음이 일제에 의한 독살임을 간파하고 죽음에 대한 슬픔을 독립만세운동으로 승화시켰다. 따라서 우리 헌법 전문이 밝히고 있듯,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근간으로 하며, 3‧1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일제에 의한 고종의 독시에 대한 공분이 결합되어 일어난 것이므로, 대한민국 법통의 뿌리에는 백성과 고종의 부단한 독립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고종을 독시한 이유가 파리강화회의 밀사 파견과 북경망명정부 계획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거족적인 비폭력 저항운동 방식도 고종과 순종의 비밀황칙을 받든 임병찬의 정치전략서 「관견」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지대하다. 고종황제의 국권회복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헐버트(Homer Hulbert)는 1942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역사에 기록될 가장 중요한 일을 증언하겠다. 고종 황제는 일본에 항복한 일이 결코 없다. 굴종하여 신성한 국체를 더럽힌 일도 없다. 휜 적은 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미국의 협조를 구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유럽 열강에 호소문을 보냈으나 강제 퇴위 당하여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고립무원의 군주였다. 한민족 모두에게 고한다. 황제가 보이신 불멸의 충의를 간직하라.
우리는 3‧1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동시에 고종을 어떤 위치와 위상에 놓아야 할까?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후대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이다. 앞으로 시작될 100년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지난 100년을 만들었던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대한 의미 해석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여전히 망국의 무능한 왕 고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파란 눈의 헐버트가 연설한 일본에 항복한 일이 결코 없었고 생명을 무릅쓰고 일제와 싸웠던 불멸의 충의를 가진 왕으로 볼 것인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대한의 독립을 온몸으로 외쳤던 당대 백성들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였고, 그 국가를 살아갔던 시민사회의 국민들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이 대한민국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