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틱 평화 읽기

3. 보수진영의 대북정책 비판, 어디까지 이해할 것인가?

시놉티콘 2001. 10. 26. 16:39
1) 대북정책이 '북한퍼주기'만 했는가?

'국민의 정부'가 지난 3년 5개월간 지원한 대북지원 총액은 3,779억원(3억 달러)이며 이를 국민 1인당 연평균 지원액으로 환산하면 2,338원 수준이다. 이 수치를 두고 '북한퍼주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런 논리라면 UN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북한에 퍼주라고 주문하는 꼴이니 말이다. UN은 국민총소득의 0.7%를 대외적으로 원조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우리의 대외원조비는 이 권고치의 약 1/10 수준에 불과하다. 2000년도 우리의 대외원조 총액은 약 3.2억 달러(해외 2.1억 달러+북한 1.1억달러)로 국민총소득의 0.07%에 해당한다. 즉 1998년∼2000년 우리의 대북지원 규모는 국제사회 전체(한국 포함) 지원액 10억 3,496만 달러의 19% 수준이라는 것이다.
통일전 서독의 대동독 지원총액은 574억달러(1,044억DM)로 연평균 32억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지난 6년간 우리의 연평균 대북지원 규모의 32배 수준에 달하는 액수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와 상황이 다른 서독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현재 남북한간의 국력을 비교(2000년 기준)해 보면, 국민총생산은 남한이 $4,552억원, 북한이 $168억으로 약 27배의 차이가 나며 무역규모도 북한에 비해 169배가 높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부차원의 대북지원 규모는 약 1억 2천만 달러(연평균 4,160만 달러)로, 그 이전 김영삼정부시절 3년간의 ½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리의 현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분단된 국가에서 치뤄야 할 분단비용(안보비용)이 존재한다. 안보비용은 소비하는 지출이다. 소비지출을 생산적 지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평화비용이다. 평화비용은 건설적 비용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창출의 관점에서도 생산적이다.
아마도 보수진영은 금강산관광지불 대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지원이 민간지원이라면 우리는 과거 김영삼 정부시절에 비하면 상당한 비용을 그들의 표현대로 '퍼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것을 '퍼주기'라고 공격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제기다. 아마도 이렇게 비판을 해야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근거해서 불공정거래를 중지하고 공정거래를 진행하라는 비판이 더욱 이성적이다(이것도 난센스다. 왜냐면 북한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 기업(그것이 자본의 논리에 근거하던 그렇지 않던 - 한국경제는 기존까지 거의 천민적 자본주의형태였기 때문에 공정거래가 존재했는지 의심스럽지만)인 현대가 자신의 사업적 프로젝트에 의해 정부의 허가에 근거해서 금강산관광사업을 시작했다면 '퍼주기' 비판의 대상은 현대이어야 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은 왜 허가해주었는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왕 싸울거라면 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싸웠으면 한다. 우리가 주는 지원이 북한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향후 남북관계의 평화적 유지라는 추상적, 무형적 긍정성 외에 남한경제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인지, 부정적 역할은 무엇일지 등 이런 문제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유지비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주한미군을 1년간 주둔시키는데 직접분담금으로 4억불 가량이 들어가며 직·간접 비용 모두를 합치면 연간 30억불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온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국민 1인당 방위비 분담금은 7.4달러이며 이는 현재의 환율로 환산할 경우 약 8천4백원 수준이고, 같은 해 국민1인당 국방비 30만원의 0.3% 수준이다. 이는 국민 1인당 대북지원 2,338원의 약 4배의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퍼주기'라는 논란을 벌이는 우리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누구를 위한 '퍼주기'논쟁인가? 쓰러져 가는 동포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아직도 먼 내년 겨울을 생각하는 그런 관점으로는 시대의 계선을 넘어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