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틱 평화 읽기

3. 2) 3) 연합/연방제와 상호주의 문제(논쟁 아닌 논쟁)

시놉티콘 2001. 11. 2. 10:10
2) 연합제와 연방제에 대한 정부의 무지인가? 사실의 왜곡인가?

연방(federation)과 연합(confederation)을 둘러싸고 상당한 혼전이 있었다. 그 사유인 즉 6.15 남북공동선언의 내용 중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합의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판의 지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을 수용한 것이며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으로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제안과 합의였음으로 이는 국민을 무시한 행위라는 비판이다.
후자의 문제인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며, 대북정책 전개과정에서 항상 문제시되었던 점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부분도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일정 정도의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양해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부분은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내용보다는 형식에 급급한 발상임을 알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실제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만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연합은 2개의 체제와 2개의 정부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통합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며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통합을 위한 예비적·중간적 단계를 형성한다. 반면 연방은 2체제 2국가는 유지하되 중앙정부가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는 형태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북당국이 주장하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중간적 성격을 갖는다. 즉 통일국가기구는 존재하되 실제적 권한은 각각의 정부가 갖고 있는 형식이다. 이는 남과 북의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남과 북이 합의하에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는 중앙정부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전제 속에서 북한이 남한의 연합제적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체제의 속성 상 그들이 주장한 연방제를 포기할 수 없는 조건에서 나온 수사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증후들은 북한의 이후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북의 접촉과 교류·협력의 이유는 향후 만들어 갈 통일을 위해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통일을 할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만 한다. 사회적 합의의 과정은 통일방안에 대한 열린 토론이 가능해야 하며, 다양한 논의들이 용공이라는 매도 없이 진지하고 자유분방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남과 북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부적합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정 기간 유보를 하는 것이 방법이다. 적어도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의 성격의 변화 등 정치경제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 남북정상간의 합의사항은 일면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이 파생할 여진을 생각할 때 부정성도 내포하고 있다.


3) 상호주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상호주의 원칙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과 북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함으로써 상호이익을 증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북한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처해 왔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사항을 먼저 제시하고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동시에 북한의 부정적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 몇가지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첫째, 우리의 남북관계 개선노력을 북한이 선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역학관계로 볼 때 남북간 협력구도에 북한이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서는 것은 북한에게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가 남북관계의 성과를 내기 위해 정치적으로 서두른다는 비판도 있다. 이 부분은 해묵은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속도조절이란 무엇인가? 너무 빠르다는 주장이다. 천천히 가자는 얘기다. 역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오해 때문에 대북정책 추진력이 상실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요구대로 변화하는 것이 북한이라면 우리는 굳이 대북포용정책을 펼칠 필요도 없다.
완벽한 상호주의는 불가능하다. 그건 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라 우리는 남과 북의 다양한 조건을 전제로 한 국가간 상대이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상호주의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도적 지원이다. 조건 없는 지원이란 뜻이다. 그 외의 문제에 있어서는 비등가성(非等價性)·비대칭성(非對稱性)·비동시성(非同時性)을 감안한 신축적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