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6. 12:57ㆍinterview
황석영 “막힌 남북관계 풀려는 뜻…나는 변하지 않았다” | |
[황석영씨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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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를 풀라고 촉구하는 선언에 서명했던 제가 ‘변신’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변한다면 황석영의 문학 전체가 무너지는 건데 어떻게 제가 변하겠어요? 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이 와야 하고, 그러자면 정부의 협조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황씨를 1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자택 부근 찻집에서 만났다.
-14일 귀국한 뒤 발언 파장을 보면서 든 소감은? “집에 오자마자 새벽 두 시까지 인터넷 찾아보고,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고 점심에야 깨어났다. 세상이 난리가 났더라. 이번에 따라간 게 가장 큰 실수였다는 심정이 들 정도다. 일하는 과정에 비난이 있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드셀 줄은 몰랐다. (1989년에) 방북했을 때랑 반응이 똑같다. 진보에서 욕먹고, 보수에서 욕먹고…. 내 말이 잘못 전달된 점이 많다. 또 사회적으로 설명이 잘 안된 채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같다.”
-뭐가 잘못 전달됐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진보정권이었고 많이들 (정부와) 일을 해서 나는 거리를 뒀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남북관계가 막힌 것처럼 재야와 정부가 완전히 막혔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후배들도 동의했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 이 대통령 쪽에서 연락이 와서 만나기 시작했다. 특히 남북문제에서 양쪽 모두 시간낭비하면 안 된다. ‘몽골+2코리아’ 구상이 있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한 노동자와 남한 청년실업자들이 몽골에 가서 개척하며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러면 ‘느슨한 연방제’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도 생각이 같다고 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북-미 수교를 할 수 있게 하는 기회라고 봤다. 이 대통령에게 ‘대북관계를 풀 생각이냐’고 하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안 하면 어떻게 가겠느냐’고 하더라. ‘유라시아 평화열차’ 구상도 정부가 밀어주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후배인 진중권이 나더러 ‘코미디’라고 했는데, 작가가 이런 꿈을 안 꾸면 누가 하겠나. 나는 정치하는 사람도, 할 사람도 아니다.”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현 정부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남북관계는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국가보안법에 걸린다. 내가 옛날처럼 할 수는 없지 않으냐. 부분 협조를 해서 성공한다면 현 정부가 성공하는 것 아닌가. 현 정부가 성공하는 게 국가·사회적으로 나쁜 일인가.”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보여온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건가? “한시적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다. 그때를 넘기면 현 정권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중도실용이라고 보나? “중도실용을 들고 나와서 당선됐잖냐. 그런데 촛불시위로 정신없었을 테고, 주위를 둘러싼 세력이 지난 10년과 반대 방향으로 가니까 자기 생각을 관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편향이 심해졌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부패세력’이라며 비판하지 않았나? “그 뒤 선거를 했고, 투표했고, 자기들 표현대로 ‘압도적 과반’을 얻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걸 현실적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카자흐스탄 간담회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라고 했다.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은,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광주가 나이자, 나의 문학이다. 그 표현을 갖고 ‘가치가 변했냐’는 것은 말꼬리 잡기다.”
-‘유럽도 광주사태 같은 걸 겪으면서 가더라’고 한 말은 광주학살을 용인하는 듯 들릴 수도 있는데? “창피한 일이 서구에서도 있더라고 말한 것이다. 사안마다 (정부와) 싸울 때도 있지만 큰 선에서 변화시키는 길도 있다는 말인데 그게 마치 광주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비쳤다. 오해가 있다면 나를 믿어달라.”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명박 정부 한시적 용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비판 논평을 냈다. “내가 민노당 창당 발기인이다. 북한의 존재 앞에서 우리나라 진보정당이 노동조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고민들을 얘기한 것이다. 민노당이 섭섭하다고 한다면 ‘내 잘못이다. 믿어달라’고 하고 싶다.”
-순방 따라간 걸 후회하나? “후회라기보다는 좀더 신중하게 결정할걸 그랬나 싶다.”
-이명박 정부와 부분적으로 손을 잡으려다 보니 ‘립서비스’가 지나쳤다는 말인가? “그런 면이 있다. 그런 면의 경솔함을 사과한다. 같이 일을 하자고 하니까…. 그런데 단서가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도 대북문제를 풀려는 아무런 노력이 없을 때 현 정권에 희망을 접고 포기하겠다고 이 대통령에게 분명히 밝혔다.”
-앞으로 남북문제나 몽골+2코리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좀 맥이 풀리지만 후배들과 의논하면서 추슬러 가겠다. 욕은 내가 먹겠다. 누구는 ‘저게 정치적으로 야욕이 있어서 그런다’고 한다. 나는 독자들 사랑을 받았고, 지금 죽어도 문학적으로 여한이 없다. 하지만 남북문제를 풀어야 하고, 세계에서 자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왜 굳이 황석영이 나서냐는 얘기도 있다. “우리 마누라가 어젯밤에 나더러 ‘그놈의 메시아 콤플렉스 좀 버리라’고 하더라. 자기 문학과 삶을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일치시키자는 게 젊었을 때부터 있는 것 같다.”
-르 클레지오가 며칠 전 황 선생을 비롯해 몇몇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얘기했다. “우리 문학이 번역 때문에 그렇지, 그 수준으로 말하면 노벨상 받을 만한 사람이 한 10여명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작가는 일상적 행위로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서민 정책 등 다른 분야도 충고를 하나? “그 주변의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시민단체가 정책적 참여나 정책적 견인을 해내고 변화시키는 역할이 안 되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충고한다. 합리적 보수와 극우를 떼어내야 한다.”
-유라시아 문화 특임대사 내정설이 있는데? “몽골+2코리아 구상 등을 실천하려면 정부 예산 등이 필요하다. 그걸 하려면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황씨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보수로부터는 ‘북의 첩자’, 진보로부터는 ‘변절자’ 얘기를 듣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광대의 심정”이라며 “다 털어놓고 나니 시원하다”고 말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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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9-05-16 오전 01:39: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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