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노와 현재

2010. 1. 19. 15:15sensitivity

 

 

 

 

양반만 인정하는 이 드러운 세상!!!

노비가 노비를 잡고 노비가 노비를 살리고

 

우리 드라마에서 최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극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어찌보면 현재 방송 트랜드와는 다른 방향이라는 소재의 독특성이 재미있다.

하지만 아마도 현란한 촬영기법, 자본의 동참없이 추노라는 드라마가 이런 흥행성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비들의 삶과 애환, 분노와 폭발을 잘 얼버무린 드라마

주인공들은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아마도 당대 노비들의 특수한 형태였을 것이다.

오히려 조용히 그 억눌린 삶을 참아가며 견디어낸 역사가 아마도 노비의 역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억센 팔과 노동의 일상이

우리 역사를 만들어낸 생산의 원천이었을거다.

그 들푸른 논과 밭의 생산물은

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그들의 땀과 노동 없이는 아마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민초라 했던가!

 

그들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희구는 도도한 역사의 장을 열어제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 바로 그 자체다. 그래서 그들은 영웅이다.

오지호, 장혁이 아닌, 업복이의 분노가 바로 영웅이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슬픈 현실이 들어온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 그 많은 실직자와 비정규직의 모습이 떠오른다.

400만 명이 넘어선 '사실상 실업자'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비정규직

우리 시대 생산의 주역이며 다수의 삶을 대변하는 그들의 일상은

어쩌면 '현대판 노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처참한 삶에 허우적 거리는 당대의 노비와 현대의 실업자와 비정규직

분탕질과 권력욕에 빠져 있는 당대 양반들, 그리고 일상의 서민의 삶에 대안도 주지 못하면서 정치싸움질에 빠져 있는 현대 정치인들

당대의 추노, 현대에 남기는 이야기들이 전개되었으면 한다.

시청률과 방송자본의 논리에 빠져버리는 추노가 아니라

당대 추노들의 생생한 삶을 복원하는 드라마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이 단지 액션과 촬영기법에만 몰두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와 현재의 삶의 문제도 동시에 고민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이 시대 힘들게 살아가는 실업자와 비정규직들에게 희망이 비추는 2010년이 되기를

그들이 주인은 아니어도 동등하게 대접받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가 오기를 

 

그리고

의 삶을 다룬

 

새 사극 ‘추노’ 열풍

한자말 자막처리 ‘양반 허위의식’ 꼬집고
‘매트릭스·킬빌·300’의 한장면 안방으로

 

 

<추노>는 2년동안 주인이 없어 방송가를 떠돌던 대본이었다. 노비가 노비를 잡고, 노비가 양반을 잡는, 사람사는 세상 아닌 세상이 바로 우리의 뿌리였다는 그 자체로 ‘부담스러웠던’ 대본은 임자를 만나지 못했다. 노비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이 꼼꼼하게 묘사된 일상사의 궤적은 50부작 대하드라마를 방불하지만 그 캐스팅의 어려움 또한 제작자를 만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예견된 듯 문제적 사극 <한성별곡-정>을 만든 곽정환 피디는 고사 직전의 대본을 살렸다. 그리고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촬영 기법, 자막, 연기까지 기존 드라마의 관행을 뒤집었다. 사극의 고정팬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마저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주연 잡는 조연군단

 

선과 악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구조의 모순이 극에 달했던 세상의 신산함을 그려내는 것은 장혁, 오지호가 아니다. 한정수, 공형진, 김지석, 안석환, 이한위, 성동일, 윤문식, 데니안, 윤기원, 김응수…. 각자의 사연을 품고 등장하는 1분, 1분, 이들은 주연을 잡아먹을 기세로 시대의 긴장감을 헛웃음나는 속삭임으로 만들어 버린다.

 

» 드라마 ‘추노’의 공형진.

데뷔작인 영화 <파이란>의 치열함까지 엿보이는 업복이 역의 공형진은 지게질하는 리듬만으로도 희·비극을 관통하는 공력을 선보인다. 세상을 뒤집자며 그가 몸 담은 노비당의 인물들 또한 영화·드라마를 넘나드는 조연들로 한마디 한마디에 인물들의 사연을 담는 연기 공력이 녹록잖다. 추노패 두목 천지호 역의 성동일도 기존의 거칠었던 연기톤이 사극에서 정제돼 애드리브인지 대사인지 짐작하기 힘든 송강호류의 힘을 발산한다. 조정에 피바람을 몰고오는 그림을 그리는 방화백 역의 안석환은 쇳소리 발성으로 조정 환란정국을 비웃는 익살 연기를 선보인다. 능청 연기만큼은 따라올자 없는 이한위도 추노꾼을 동원해 노비를 잡아들이는 비열한 오포교 역할로 웃음을 준다. 마의를 연기하는 윤문식 또한 조연 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 드라마 ‘추노’ 의 성동일.

‘경국지복근’을 가진 최장군 역의 한정수는 추노꾼이지만 정세를 읽어낼만한 식견을 가진 인물로 부족함이 없고, 복근보다 라인을 중시하는 트렌디한 몸을 앞세운 왕손이 역의 김지석 또한 의리와 계산 속이라는 양날의 감정을 지닌 인물로 브라운관 안을 뛰논다.

 

어느 영화에서 봤더라?


대사:반노(叛奴) 일로 심상(心傷)하여 분루(忿淚)가 종횡무진(縱橫無盡) 하더니, 이리 추쇄(推刷)하여 만분다행(萬分多幸)일세.

자막:도망노비 때문에 열 받아서 눈물 날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잡아서 다행일세.

 

» 드라마 ‘추노’ 주인공들. 이다혜, 오지호, 장혁(왼쪽부터).

말놀음으로 양반들의 허위 의식을 희화화하는 1부의 한장면. 자막이 주로 인물 명과 사건 개요의 설명에 쓰였다면 <추노>의 자막은 방언와 속담, 사자성어를 넘나들면서 ‘묘사’한다. 가깝게는 천성일 작가의 전작 <7급 공무원>, 멀리는 영화 <넘버3>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4부 초반에 등장하는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과 뒤이은 추격 장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등장한 촬영기법이기도 하다. 뒤이은 오지호의 검투 장면은 영화 <300>의 전투신과 <올드보이>의 장도리 격투신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대길의 패거리가 노비를 잡아들이는 첫 장면은 영화 <신용문객잔>, 난간을 타넘는 카메라 워크는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의 한장면과 닮았다. 무엇보다 매회 등장하는 대길의 무술 장면은 <소오강호>에서 <와호장룡>에 이르는 액션을 보듯 자연스럽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영화사 하늘 제공

 

 

 

 

 

 

 

 

 

 

 

 

 

 

 

 

 

기사등록 : 2010-01-19 오전 09:23:18 기사수정 : 2010-01-19 오전 09:41:23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