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세코 폰 뤼프케의 "두려움 없는 미래"

2010. 1. 24. 00:43Book

 

 

절망하는 세계… 미래 희망엔진은 ‘시민운동’
인도에서 생태농업 싹 틔운 시바 박사 등
행동하는 석학들과 대담 통해 ‘위기’ 진단
경쟁보다 협력과 공생…“위기에서 희망을”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절망하는 세계… 미래 희망엔진은 ‘시민운동’

 

<두려움 없는 미래〉


게세코 폰 뤼프케 지음·박승억 박병화 옮김/프로네시스·2만8000원

 

비관적인 세계 전망, 그 전망을 기회로 삼는 낙관주의자들의 용기 있는 세상 바꾸기 도전.

 

정치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독일의 방송프로 기획자 게세코 폰 뤼프케의 <두려움 없는 미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은이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두툼한 책에는 모두 21명의 ‘석학’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 〈두려움 없는 미래〉
“지금까지의 (세계)시스템은 거의 효용성이 다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문제들 앞에 직면해 있고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200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이런 얘기는 그가 이미 세계 경제 시스템의 파국적 결함에 대해 누차 경고해온 만큼 그저 심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위기’란 얘기도 이젠 진부해질 법도 하다. 이런 얘기는 어떤가. “우리는 현재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세계, 즉 커다란 위기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금융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급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첫번째 예비신호일 뿐입니다. 다가올 위기의 파도는 마치 쓰나미 같을 것입니다. … 세계는 이제 과거에 우리가 해왔던 방식으로 통제되지 않습니다. … 말하자면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 위기의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수많은 위기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로마클럽 공동 설립자인 일반시스템 이론 전문가 어빈 라즐로 교수다.

 

볼프강 작스 부퍼탈연구소 베를린 지사장은 말한다. “지구가 100만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지표면 자원들을 우리는 1년 안에 동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200년 동안 마구 낭비했으니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시절도 곧 사라져버릴 게 분명합니다. 지하자원은 부족해지고 더 비싸지며 많은 중요한 자원들은 향후 50년 안에 바닥나 버릴 것입니다. 지난 200년은 대풍년이었습니다. 특별한 행복의 조건들을 마음껏 누려온 시기였죠. 하지만 이런 특별한 조건들을 미래의 우리는 물론 이 지구에 사는 다른 생물들도 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생물학자이자 시스템 이론가 엘리사베트 사투리스는 매번 지구상 모든 생물종의 50~95%를 멸종으로 몰아갔던 지구 역사상 다섯번의 대멸종에 이어 지금 제6의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을 떠올리면서 생태계파괴와 기후변화 속에 지난 100년간 구축돼온 경제 시스템 전체가 몰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09년에 독일어로 출간된 책의 원제는 ‘미래는 위기로부터 열린다’. 위기에서 미래의 대안을 개척한 예를 세계화와 유전공학·신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범세계적 저항운동을 벌여온 인도의 양자물리학자요 에코페미니즘의 선구자 반다나 시바의 얘기를 통해 살펴보자. 오늘날의 국가는 거대 기업들이 배후 조종하는 거대기업국가라는 게 시바나 뤼프케의 생각이다. 지금의 글로벌 위기 원흉은 바로 그들 사이의 무한이익 추구 경쟁이다.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담수(물) 사유화 배후에는 다섯 개의 다국적기업이 도사리고 있고 그들은 매년 1조달러 이상의 이익을 챙긴다. 전세계 파종용 종자(씨앗)를 독점하고 있는 것도 또다른 다섯 개 거대 기업이다. 코카콜라 공장이 인도에 들어가서 지역 수자원을 점유하고 콜라병을 채우면 코카콜라 통장엔 돈이 쌓이지만 지역 재산은 졸아든다. 곡물회사 카길이 비료를 팔면 팔수록 현지 인도의 토지 생산력은 떨어진다.

 

현재 유전자변형식품(GMO) 종자의 95%를 장악하고 있는 몬샌토는 향후 몇년 안에 전세계 모든 시장의 경작 가능한 종자들 전부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시바에 따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8500가지나 되는 다양한 식물들을 경작해온 인도는 곡류와 콩과 유채, 목화 등 네 종류만 지원하는 이들 거대 회사 때문에 거의 단작(단종)농업으로 변모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인도 농부 20만 이상이 빚과 가난 때문에 자살했다. 무역자유화 이전 인도인 극빈층 비율은 45%였으나 지금 인도 어린이의 70%가 하루 한 끼를 겨우 때울 지경이 됐다. 시바는 이를 “사회를 하나씩 교묘하게 말살시키는 일이며, 명백한 대량학살”이라고 했다.


이는 주로 서방 언론들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최근 인도 현대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이를 “새빨간 거짓말”이라 쏘아붙인 시바에 따르면 서방 매스컴에 등장하는, 부유해진 인도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바는 “우리가 지원하는 농부들이 생태학적 경작으로 전환하여 벌어들인 수익이 몬샌토에 기만당한 농부들 수익의 10배나 된다”며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인도의 식량 부족은 거대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시바가 몬샌토에 장악당한 인도 농민보다 10배나 더 많은 소득을 현지인에게 안겨주는 반식민 저항전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시바뿐만 아니라 거대 독점언론들의 횡포에 맞서고 있는 미국 방송 저널리스트이자 인권운동가 에이미 굿맨, 이집트 사막을 초원으로 바꿔 유기농업과 문화 기적을 일군 세켐운동 설립자 이브라힘 아불레이, 독일 바이에른 뮌헨 인근 소도시들에서 유통되는 지역화폐 킴가우어를 얘기하는 화폐전문가 마르그리트 케네디, 지속가능한 생명문화·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양자물리학자 한스페터 뒤르, 대안 경제전문가 헤이즐 헨더슨 등 저명한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철학자, 시민운동가들이 등장해 사회적 불안정성, 금융위기, 기아문제, 온난화문제, 정신적 가치와 방향상실 위기 등에 대해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패러다임 전환을 꿈꾸는 낙관적 행동주의자들이라는 점, 경쟁보다는 협력과 공생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기야말로 혁신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이며, 위기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위기를 낭비하는 범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근본적 혁신을 지향하는 미래기획은 통상 위기 이전으로의 복귀와 현상유지를 꾀하는 정부 쪽이 아니라 시민운동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도 대체로 같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사등록 : 2010-01-22 오후 1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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