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7. 18:27ㆍBook
〈킨제이와 20세기 성연구〉
조너선 개손 하디 지음·김승욱 옮김/작가정신·2만5000원
자고 일어났더니 만인의 스타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고 일어났더니 ‘공공의 적’이 돼 있는 사람도 있다.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동물학자에서 하루아침에 ‘음란한 성 전문가’로 전 미국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된 남자. 죽고 나서 48년 만에 만들어진 자전적 영화조차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으로 힘들게 상영됐던 남자. 바로 앨프리드 킨제이(1894년~1956년) 박사다.
미국 사회의 남녀 1만2000명을 심층 인터뷰한 방대한 성 보고서로 유명한 킨제이의 일대기와 그의 연구업적을 마치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집을 짓듯 철저한 고증으로 취재·기록한 책이 나왔다. <킨제이와 20세기 성연구>는 성실한 과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킨제이의 삶과 연구 성과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조망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일요일엔 기도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금지하는 극단적인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 아래 자란 킨제이에게 ‘어린 시절’은 성년이 된 이후 절대 입 밖에 꺼내는 일이 없는 암울한 과거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복종과 금욕만을 강조하는 아버지, 지독한 가난으로 아들을 시켜 가게에서 ‘외상’을 구걸하게 만드는 어머니, 그리고 너무나 내성적 성격과 허약한 건강으로 친구들의 집단적인 괴롭힘 대상이 됐던 킨제이. 유일한 낙은 공부와 자연탐사. 다윈의 진화론에 매료되고 생물학에 빠져든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자신이 원하는 생물 공부를 못하게 막는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온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는 영영 결별하게 됐지만, 학자로서의 인생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남자 대학생들이 여자와 스포츠에 열광할 때 수줍음 많고 성실한 킨제이는 오로지 학업에만 매진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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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인디애나 대학 교수로 임용된 그는 여학생회로부터 ‘결혼 강좌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수년에 걸쳐 남성 5300명과 여성 5940명을 인터뷰한 자료 <남성 성행동 연구>와 <여성 성행동 연구>를 펴내게 된다. 온갖 도표로 이뤄진 딱딱한 통계 학술서에 불과한 이 책은 6개월간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보다 더 많이 팔리는 등 미국 사회에서 파란을 일으킨다. 당시만해도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교는 죄악시됐으며 동성애는 변태로 취급됐고, 여성은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12~18살 사이의 남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1%가 ‘처녀성’이나 ‘동정’에 대한 단어의 뜻을 몰랐으며 27%는 ‘성교’라는 단어를 몰랐고, 96%는 ‘자위행위’라는 단어를 몰랐다. 여성에 대해선 더 무지해서 월경에 대해 모르는 이는 71%에 달했다.
이런 시대에 킨제이 보고서는 ‘혼외정사’ ‘동성애’ ‘자위’ ‘매춘’ 등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던 주제들에 대한 통계를 제시했는데 그 통계치가 미국 사회를 경악케 했다. 미국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결혼할 당시 처녀가 아니었고 심지어 가정주부의 4분의 1이 혼외정사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의 37%, 여성의 19%는 사춘기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동성애의 경험이 있었다. 통계적으로 오류가 있을 순 있겠지만, 동성애와 이성애가 연속선상에 있으며 여성의 성적 욕구는 당연히 인정돼야 하고 인간의 성을 얘기할 때 너무 다양하고 그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등의 킨제이의 주장은 지금 봐도 급진적이다. 이 때문에 킨제이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 하원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까지 받고 종교단체의 압력으로 연구 후원도 모두 끊기는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여전히 ‘정상’과 ‘변태’의 구분이 명확한 한국에선 킨제이 보고서가 아직 번역되지도 않고 원작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의 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듯 술술 읽히는 이유엔 원작자의 뛰어난 필력도 있겠지만, 번역했다는 느낌이 안 나게 자연스런 한글로 옮긴 역자의 공이 크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기사등록 : 2010-03-26 오후 07:4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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