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6. 11:02ㆍBook
만주 조선인의 ‘지워진 9년’을 아십니까 | |
한국전쟁기 북쪽 주력부대 ‘절반’ ‘이중 사명 의식’ 지닌 투쟁적 삶 ‘한국사의 일부’로 조망하는 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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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한국전쟁-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
염인호 지음/역사비평사·3만8000원
역사학자 염인호(서울시립대 교수)씨가 쓴 <또 하나의 한국전쟁>은 이 나라가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 만주지역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 이들의 ‘선택’과 ‘조국’에 대한 생각을 화두로 부여잡은 책이다.
지은이는 책이 다루는 1945~53년을 ‘국공내전·한국전쟁기’라고 부른다. 만주 조선인의 처지에서 이들의 선택과 삶을 들여다보려는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만주 조선인 역사를 “한국 현대사 최대 사건인 한국전쟁이라는 큰 호수를 향해 치달은 한 줄기 강물”이라고 비유한다. 이를 조망하기 위해 그는 조선의용군 출신을 면담하고, 그 지역에서 명멸했던 조선인 신문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기록 등 방대한 1차 자료를 섭렵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한 인민군 주력부대의 절반은 만주에서 건너온 조선인 부대였다. 전체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다. 1945~49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국공내전)에 참전하여 단련된 부대다. 남북 대결로 출발했다가 국제전으로 변화한 한국전쟁에서 남북 대결은 사실, 남한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 및 만주 조선인 사회를 일방으로 하는 양 세력의 대결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만주 조선인 부대의 뿌리는 일제 패망 직후 치안이 무너진 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조선인들의 자위 무장대오에 있다. 8·15 뒤 중국 관내지방에서 들어온 ‘조선의용군’과 소련에서 들어온 동북항일련군 조선인 대원들은 이 자위 무장대오를 흡수·개편했다. 이 부대들이 성장하여 4만~5만명에 이르는 만주 조선 청년들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다. 이상조·주덕해 등 조선의용군 지도자들은 1945년 그어진 38선을 ‘제국주의 반동 진영’과 ‘민주 진영’이 맞붙는 경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만주는 100만 동포가 거주하고 조선의용군과 관계가 밀접한 팔로군이 점령하고 있으니 만주를 남북통일의 기지로 삼는다는 ‘만주기지론’을 주창했다. 1945~49년 만주 조선인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보려면 이 만주기지론과 함께 만주에 혁명근거지를 세워 국민당과 겨룬다는 중국 공산당의 동만근거지론, 그리고 조선인들의 ‘이중 사명의식’을 살펴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만주 조선인들은 한반도 조국에 대한 애착 못지않게 만주 현지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의식도 강했다. 이중 사명의식이다. 이들의 국공내전 참전은 이른바 조국통일 준비이기도 했지만, 만주에 뿌리내리려는 의지의 결과이기도 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 시기 북한은 만주 조선인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1948년 말 중국공산당은 만주 조선인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며 조선인은 이 조국을 보위할 국방의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만주 조선인의 (중국과 북한) 이중국적 상태를 인정한 셈이다.
중국공산당은 왜 중국의 여타 소수민족과는 달리, 만주 조선인들에게 이런 특수지위를 인정했을까. 지은이는 이를 만주 조선인과 북한 지도자들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채권자 의식’으로 설명한다. 곧 일제하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 참전하여 “중국 혁명을 위해 조선인들이 흘린 피의 대가”에 대한 요구다. 임춘추·김광협·임민호 등 조선인 지도자들과 북한 쪽은 이 채권자 의식을 발판으로 연변의 북한 귀속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공 내전중이던 1947년과 1949년 공식적으로 중국(중국공산당)에 항일투쟁과 국공내전 참전 대가로 연변에 자결공화국을 세우고 궁극적으로 연변을 북한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연변은 북한에 귀속되지 않았고 1952년 9월 자결공화국 대신 자치권한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변조선족자치구가 건립됐는데, 이런 결정에는 한국전쟁의 추이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중국군이 한반도 전쟁에 참전하여 전황을 바꿔놓으면서 만주 조선인사회는 중국에 감사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채권자 의식이 약화되고 조선족자치구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물론 채권자 의식에 기반한 연변의 북한 귀속론도 사라졌다. 공식적인 조국관에도 변화가 생겨나 조선족자치구 성립 이후 한반도가 조국이라는 표현 대신 중국이 조국이라는 표현이 공식문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전 참전을 통해 중국은 연변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해방 즈음, 연변과 북만주, 남만주 등 만주지역에는 100만~200만명 가까운 조선인이 살았다. 만주는 일제 강점기 조선 항일독립투쟁의 기지였으되, 1945~53년 만주는 우리의 시야에서 공백상태였다. 이 책은 이 공백을 채우고 이 시기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지은이는 이 시기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중국공산당이 이끈 중국혁명의 틀 속에서 중국사의 일환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역사는 조선 항일투쟁사의 연장선에 놓인 ‘한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기사등록 : 2010-09-03 오후 08:5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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