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7. 18:59ㆍlecture
권력을 증오한 해커, ‘제국’의 가면을 벗기다 | |
‘정보공개’ 새 역사 쓴 위키리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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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정보공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비밀정보가 온라인상에서 마구 쏟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세차례의 대규모 비밀정보 공개로 전세계 매스컴의 총아가 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대표적이다.
보수적 경제잡지인 <포브스>조차 최신호에서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비자발적 투명성’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자”라고 평가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내부고발, 즉 ‘내부고발 2.0’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세기의 대표적 내부고발 사례로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논란에 기름을 부은 1971년 펜타곤페이퍼 유출사건, 1974년 닉슨 대통령에게 미국 역사상 첫 임기 중 사임이라는 결과를 안겨준 워터게이트 사건을 들 수 있다. 위키리크스, 인터넷 통해 방대한 비밀정보 퍼뜨려 펜타곤페이퍼·워터게이트 사건과 다른 내부고발 언론공조로 효과 극대화…비밀유지법 등 도전받아
1945년부터 1967년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룬 펜타곤페이퍼는 1967년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책임 아래 작성된 1급기밀문서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랜드연구소 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가 ‘잘못된 (베트남)전쟁’을 막겠다는 일념에서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유출한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의 권력남용 스캔들로, 추문마다 따라다니는 ‘게이트’라는 명칭과 내부제보자의 또다른 명칭인 ‘딥스로트’라는 용어를 낳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들 사건과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의 가장 큰 차이는 엘즈버그가 지난 7월 위키리크스의 아프간전 문건 공개 당시 지적했듯이 “펜타곤페이퍼에 비해 규모가 훨씬 방대하고, 인터넷 덕분에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는 점이다.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전세계인이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됐다. 지난 7월 아프간전 관련 국방부 비밀문건 9만여건, 10월 이라크전 비밀문건 40만여건,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 등 문서로만 따지면 한 트럭 분량이 넘는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이들 문서는 손가락 크기의 조그마한 메모리스틱 하나로 빼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또다른 차이는 이른바 딥스로트로 불리는 내부제보자가 언론을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됐다. ‘정보 투명성 근본주의 단체’인 위키리크스가 그 몫을 대행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를 넘겨받는 순간 내부제보자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을 모두 지우는 제보자 보호방침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뉴욕 타임스>와 <가디언> 등 선택받은 세계 유수 언론들이 위키리크스와 사전협의와 공조 속에 위키리크스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도 폭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정보공개가 이뤄지는 똑같은 인터넷 공간에선 언론·출판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열띤 논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또 정보 공개의 1차적 피해를 입은 미국 정부 등이 강력한 처벌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간첩죄, 비밀유지에 관한 법률 등 지난 세기의 규제법들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됐다.
위키리크스는 3일 트위터를 통해 서버 차단 등 조여오는 탄압과 관련해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 운동은 세계 최초의 전지구적인 사미즈다트 운동”이라고 말했다. 사미즈다트 운동은 스탈린 사후 소련 및 동유럽에서 공산정권의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왔던 공산권 반체제문학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자가출판을 뜻하는 사미즈다트는 한번에 4~5부의 복사본을 만들어 배포하면 동지나 동호인들이 각각 4~5부씩 만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이다. 금서였던 솔제니친의 <암병동>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위키리크스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던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 사설에서 “어산지는 미국의 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미국 정부는 너무 많은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부는 비밀을 더욱 줄이고 더욱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대응이 혁신적 정보기술로 무장한 위키리크스식의 ‘사미즈다트 운동’을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
열린 사회를 꿈꾸는 인터넷시대의 ‘톰 소여’ | |
10대 때부터 컴퓨터 해킹 “자유 정보가 시장에 도움” 조직내부 불투명성 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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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인가, 박해받는 혁명가인가?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39)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의 한 보좌관은 “그는 살해돼야 한다”는 극언을 쏟아냈고, 어산지의 변호인인 마크 스티븐스는 지난 2일 영국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미국 외교 전문 공개 이후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지난달 30일 어산지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그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어산지는 1971년 ‘책임감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년 시절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올해 초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톰 소여 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14살이 될 때까지 37번 이사를 다녔다. 16살 때 어머니가 사준 코모도어64 컴퓨터에 모뎀을 붙여 ‘네트워크의 세상’에 눈을 뜬 그는 10대 때부터 컴퓨터 해킹을 시작했다.
<가디언>은 최근 그가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던 2006년 시절의 블로그 글들을 인용하며 ‘이상주의적이고 로맨틱하며 지적인 해커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산지의 글에는 볼테르, 갈릴레오에서 바쿠닌, 프루동,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어산지 스스로는 지난달 미국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특정한 철학이나 경제학파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리버테리언’(libertarian)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했다. 그는 정보 공개가 시장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중고차 시장의 레몬(불량품을 뜻하는 은어)’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구매자들이 레몬을 구별해 낼 수 없다면 판매자들은 좋은 차를 갖고 있는데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자유 시장은 자유 정보를 전제로 한다.”
경제학에선 시장 참여자들 사이의 이런 정보 격차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면 궁극적으로 기업과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위키리크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난해 중국을 강타한 멜라민 분유 파동의 예를 들었다. “당신이 좋은 기업가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다른 회사에선 분유에 우유의 비중을 줄이고 멜라민을 채우고 있다. 그럼 그 회사는 이윤을 보게 되고, 당신은 파산한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일은 비윤리적인 회사에 ‘나쁜 평판’이라는 (사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산지는 권력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1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는 세계를 좀더 시민적으로 만들려는 조직”이라며 “법이란 힘있는 사람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는 누리집에 “더 나은 감시는 정부는 물론 회사 등 모든 사회조직에서 부패를 줄이고 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든다”고 선언하고 있다. 어산지는 “나는 규제를 좋아하지 않지만 권력 남용은 규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위키리크스 자체가 자신이 비판하는 불투명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고, 어산지의 독재적 스타일에 대해 반발해 위키리크스 멤버 가운데 몇명은 최근 독립해 새로운 폭로 사이트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위키리크스의 구성과 의사결정 과정은 불투명하고 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검증도 불가능하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위키리크스는 기성 언론이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공개하는 게 공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자신이 판단하듯 그들도 스스로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과학협회에서 정부 기밀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티븐 애프터굿은 “위키리크스는 단순히 비밀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어산지를 깎아내렸다. “만약 위키리크스가 내부자 고발을 하려는 것이라면 부패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고,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라면 검증 가능한 팩트의 발견을 강조해야 한다”며 “위키리스크는 단순히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공개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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