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0. 11:52ㆍlecture
주택대출 갚는 데 월급 쏟는 빚쟁이 나라 | |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3부:정책을 말하다-경제 ① 덫에 빠진 한국 경제- 부채의 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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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15일 세계 4대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보호 신청은 전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의 자본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금융위기는 곧바로 실물위기로 이어져 각국의 산업생산이 급감하고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기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막차를 탄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구체제의 복원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무분별한 세계화와 양극화의 병폐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성장 위주의 시장만능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 저금리와 고환율을 통한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이 바로 그 증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는 교훈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에 <한겨레>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에 따른 경제 상황과 구조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진보적 경제정책과 과제를 찾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직장생활 12년째인 김정수(가명·42)씨는 대출금 상환에만 한달에 210만원이 들어간다. 홑벌이이긴 하지만 월평균 봉급이 600만원으로 적지 않은데도 가계 수지는 늘 빠듯하다. 수입의 30%를 빚 갚는 데 쓰고, 두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빼고 나면 저축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김씨는 이게 모두 아파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2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 용인의 아파트 한 채를 ‘질러버린’ 것이다. 처음 1년 동안은 집값이 올라서 행복했다. 가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대출금 상환이 버거워졌다.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이제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그는 지금 공포감에 빠져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는 가계수지가 더 악화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조사를 보면, 2009년 6월 말 현재 전국 주택소유가구 가운데 연간 소득 대비 부채가 3배 이상인 가구가 19.6%에 이른다. 월평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40%가 넘는 가구가 15.8%로, 7가구 가운데 1가구꼴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해 3분기 전국 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6.1% 증가에 그친 반면에 이자 지급액은 17.3%나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런 빚쟁이 나라가 되었을까? 먼저 경기 부양을 위한 ‘부채에 의존한 성장 정책’이 원흉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성장둔화 현상을 유동성으로 극복하려고 ‘화폐 살포 정책’을 펼쳤다. 금융규제를 완화하자, 은행들은 개인을 상대로 대출경쟁을 벌였다. 대기업은 현금유보율을 늘리면서 대출 비중을 줄였고,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들이 꺼리는 상황에서, 대출의 물꼬가 개인 쪽으로 터졌다. 2003년의 카드 사태와 신용불량자 양산은 그 한 단면이었다. 대출로 풀린 유동성은 자산 거품을 자극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펀드 열풍이 불었다. 개인들은 미친듯이 펀드에 가입했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된서리를 맞았다. 경제교육 전문회사인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는 “개인에게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결과”라며 “심리적으로 저축을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시장에 대해 정부가 적절한 개입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품을 양산하는 정책을 폈다”고 비판했다.
가계부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금융과 부동산의 곪은 상처를 공유하면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며 지난해 9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부동산 경기의 연착륙을 유도한답시고 돈 꿔서 집 사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며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가계는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온 나라가 건설업체한테 포로로 잡혀 있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
외국인에 휘둘리는 경제, 허약성 가속화 | |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3부 정책을 말하다-경제 ① 덫에 걸린 한국경제-세계화의 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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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뒤 시장개방 전면화 해외자본 영향력 더 커져 수출의 고용효과는 감소 FTA, 또다른 뇌관 될수도
1997년 말에 터진 외환위기는 세계화를 전면에 내건 ‘문민정부’가 맞닥뜨린 첫번째 시련이자, 동시에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질적으로 뒤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특히 외환위기의 해법으로 진행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속성상 국민경제의 울타리를 허물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들어선 금융자본 주도의 경제체제는 두고두고 우리 경제에 깊은 생채기를 남길 싹을 키우고 말았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사실상 사라졌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역시 금융시장에 완전히 내맡겨진 채 금융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펼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말 그대로, ‘세계화’란 이름 아래 국민경제가 사실상 무장해제당한 셈이다.
그 파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은 단연 금융시장이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투자 빗장이 활짝 열림에 따라, 환율 등 금융시장의 주요 가격변수들은 실물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보다는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는 금융자본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종속변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극도로 높아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0.6%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전체 채권 발행잔액 대비 외국인 보유 비중은 지난해 말엔 6.8%까지 높아졌다. 김일구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지나친 외화 유입은 급작스런 시장 변동 가능성을 키울뿐더러, 결국엔 싼값에 외국으로부터 ‘거품‘이 밀려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통화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등 정책 무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생산비 경쟁에서 우위를 갖추고 무역장벽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로벌 아웃소싱이 확산되면서 수출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더라도 정작 그 열매가 국민경제에 고루 스며들지 못하는 악순환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수출의 고용효과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점이다. 수출액 10억원당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는지를 나타내는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지난 2000년 15.3명에서 2007년엔 9.4명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명박 정부가 적극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자칫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당분간 세계화의 양상이 지금까지와는 크게 다른 모습을 띨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서원 엘지(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선진국들은 각종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개도국들은 관세장벽을 높이려는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등 그간 진행됐던 세계화의 방향이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면밀한 준비 없이 밀어붙이는 주요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자칫 우리 경제의 돌파구로 작용하기보다는 되레 방향을 잃게 만드는 쪽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
‘환란의 유산’ 시장개방·구조조정에 양극화 시름 | |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3부 정책을 말하다-경제 ① 덫에 걸린 한국경제-자유화의 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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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재벌경영·관치 손질했지만 분배 미흡한채 부작용 양산 비정규직·대외 변동성 키워
외환위기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던 1997년 12월22일 김기환 대외협력특별대사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아이엠에프와 맺은 협약에도 담겨 있지 않았던 것들을 요구하는 미국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신인도 회복을 위해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노동유연화를 비롯해 외환·자본·금융 자유화와 주요 기간산업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처럼 자칭 ‘진보개혁 정권’은 외환위기를 마치 천형처럼 안고 태어났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국민의 정부), ‘성장과 분배의 조화’(참여정부)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외세에 의해 강요된 ‘자유화의 덫’은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 급속한 자유화 국민의 정부는 기업·금융·공공·노동 등 이른바 4대부문 구조개혁과 대외개방을 단행했다. 참여정부도 민영화 유보 등 다른 조처들이 있었지만 큰 얼개는 이를 따랐다. 이런 처방은 외환위기의 한 요인이었던 재벌의 문어발식 과잉투자를 일부 해소하는 한편, 투명성 강화와 수익 중시 경영이 자리잡는 데는 기여했다.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원리가 정착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식 성장시스템을 급격하게 해체시킨 반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정립하지 못하면서 성장 잠재력 약화와 대외 변동성 확대,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두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내수 중심 경제를 이끌려 했으나, 수출·대기업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양극화 심화는 진보정권의 정체성을 흔든 아킬레스건이었다. 참여정부 시절엔 환율방어와 저금리 정책의 조합으로 수출·내수산업간 격차 심화,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같은 부작용이 노출되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배율(전국가구 기준)은 1996년 4.79배에서 2006년 6.96배로 10년 새 2.17배 확대됐고, 하위 20%의 소득점유율은 같은 기간 7.9%에서 5.7%로 줄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근로계층간 양극화의 핵심 기제였다. 정부의 정리해고제 수용과 근로자파견법 도입이 실제 비정규직 증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미국식 구조조정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기업들은 ‘명퇴’(명예퇴직)를 통해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고용노동부 집계 기준으로 2001년 364만명에서 2007년 571만명으로 급증했다.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자영업으로 몰려들면서 자영업은 포화상태에 빠졌다.
외환·자본·금융시장 자유화는 소국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 경제의 대외 변동성을 크게 확대시켰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은행을 인수하고, 외국인들이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금융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우리 경제의 대외 변수에 대한 취약성을 키웠다.
이런 문제들로 두 정부의 ‘진보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두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중상주의적 개발독재, 구자유주의, 복지주의, 시장만능주의가 혼재돼 있다”며 “이는 점진적으로 진행돼온 서구의 발전 단계를 압축적으로 밟은데다 경제위기와 경기침체를 타개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두 정권은 지향성 면에선 개혁·진보정권”이라면서도 “정책 실행에서는 개혁이 불철저하고 진보성도 강하게 드러내지 못했으며,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취해지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 더딘 안정화 “‘좌파정부’ ‘분배정부’라고 비난만 잔뜩 받았지, 과감한 분배정책을 쓰지 못했다.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 … 목표를 정해 지시하고 공무원들을 재촉하는 식으로 무식하게 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하고 말았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분배에 신경을 많이 썼다.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4대 사회보험 확대 시행 등으로 시장경제의 부작용과 폐해를 보완하고자 했다. 그러나 방대한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참여정부는 복지에 대한 재원 확대를 통해 사각지대를 줄이려 했고, 복지·의료·교육 등 사회서비스 부문을 강화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2000년 4.8%에서 2007년 7.5% 증가했다. 그러나 시장의 광폭함을 완화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두 정부는 재정을 통한 분배 이전에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미흡했다. 시기를 놓치거나 방치한 경우도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2006년에야 통과돼 2007년부터 본격 시행됐고, 영세 자영업자 대책은 청와대에서 아이디어를 한번 제출해 본 이후 아무것도 없었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만 해도 전체 2400만 취업자에서 1500만에 이른다”며 “서민에 대해서는 비정규직과 자영업 문제에 대한 대응이 1순위 과제여야 했고, 중산층에서는 교육과 주거서비스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답을 제공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
기사등록 : 2011-01-10 오전 08:3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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