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4부 1) 정책으로 경쟁하라

2011. 2. 15. 11:03lecture

 

여권 “복지대세론 막자” 성장·안보 새카드 탐색
“복지 포퓰리즘” 비판 속
‘반복지’ 이미지는 경계

‘고용 없는 성장’에 딜레마
통일이슈로 미래찾기 확산
한겨레 안창현 기자기자블로그 이정애 기자기자블로그

 

 
»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서명운동과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보수진영의 고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바라보는 여권과 보수 진영의 눈길은 일단 인물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지율이 우뚝한 박근혜라는 후보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물이 대선 결과결정짓는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 보수 진영의 고민이 있다. 높은 지지율이 순식간에 허물어진 전례가 많으며, 복지를 정책적 고리로 정치적 연대전선을 다지고 있는 야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보수 진영도 잘 안다. 이런 측면에서 보수 진영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복지 논쟁이다.

■ “복지의 산을 넘어라” 보수 진영은 복지가 선거의 중심 쟁점이 되는 걸 거리는 분위기다. 복지는 진보적 가치라는 인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보수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대응 기류가 있다. 적극 대응론은 야권의 복지론에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어 강력히 공격한다. 무상급식 반대를 외치며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또다른 흐름은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데 치중할 경우 ‘보수=반복지’, ‘한나라당=반복지세력’이란 인식이 굳어지는 걸 경계한다. ‘한국형 복지’를 청사진으로 제시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를 대표한다. 야권의 보편복지론에 맞서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 등의 대안으로 야권의 예봉을 피하겠다는 전략이다. 안상수 대표 등이 ‘개혁적 중도보수’ 노선을 내세워 제시했던 ‘70% 복지론’도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야권이 선점한 복지 이슈 자체를 피해 여권이 새로운 이슈를 주도적으로 제기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찬성이든 반대든 야권이 만든 ‘복지 프레임’에 들어가 봤자 보수 진영에 득 될 게 없다는 논리다.

 

■ “새로운 성장 담론을 만들어라” 보수 진영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와 ‘능력’의 이미지로 손쉽게 승리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다음 대선에서도 선거 쟁점이 성장 쪽에 맞춰질 것을 원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비전위원회 위원장인 나성린 의원은 “경제는 아무래도 한나라당이 더 잘할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따라서 복지에서 경제로 쟁점을 이동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성장 담론의 위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게 보수 진영의 진짜 고민이다. 기업을 지원해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여력(트리클다운·적하효과)으로 복지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주장해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4년간 매출액이 50% 이상 늘었지만 고용 증가율은 9.9%에 불과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매출액이 10% 이상 늘었지만, 고용은 되레 줄었다. ‘고용 없는 성장’의 한 단면이다.

 

지난 대선에서 ‘선진화 전략’을 제시했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선성장론은 산업화 시대의 얘기”라며 “고용 친화적이고, 양극화를 줄이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고민이 묻어난다. 최근 장하준 교수의 국회 강연회를 열었던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다음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얘기를 하면 망하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보수 진영이 처한 상황을 좀더 심각하게 판단한다. 그는 “보수진영은 습관적으로 ‘선성장, 후복지’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양극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국민은 ‘성장 먼저’라는 말을 더는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패인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보수진영은 앞으로 모든 큰 선거에서 판판이 질 것”이라고도 했다.


■ 통일·안보 이슈로 승부? 보수 진영 안에서는 복지나 성장 이슈가 아니라, 통일·안보 이슈에 미래가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하는 흐름이다. 표면적으론 박세일 이사장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선진통일연합 발족식을 열고, “북한 체제의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복지보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가를 통일·안보 쪽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천암함, 연평도 사태 등을 겪으면서 남북 관계가 가진 폭발력이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다음 대선이 ‘반북’과 ‘반전’의 대회전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지사도 통일·안보 쪽 역량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의 측근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불안정으로 동북아의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지사 쪽은 그가 좌·우파의 경험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여긴다. 친박계 중진인 서병수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다음 대선에선 복지와 통일이 주요한 화두가 될 것은 분명한데, 무엇이 중심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외부 싱크탱크가 ‘맞춤정책’ 제공

 

정당 중심 한국과는 달라
보수·진보 막론 적극활용
정당별 청사진 반영·실현

외국선 ‘국정 밑그림’ 어떻게

 

미국과 영국에선 집권 이후 국정운영의 밑그림 작성을 정당 바깥 싱크탱크들이 주도한다. 정당이 제 색채에 맞는 건강한 정책을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할 때 정책과 인력, 정치적 동원력을 제공하며 정책 선거를 이끈 것도 주요 싱크탱크들이었다. 보수, 진보 마찬가지다.

 

미국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대표 에드윈 포일너는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1주일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1천쪽 분량의 정책자료집을 발송한다. <리더십에 관한 요구사항>으로 널리 알려진 이 책자는 보수파들이 주장해온 가치와 정책들을 청사진으로 묶어낸 것이었고 공화당 정권의 정책에 두루 반영됐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는 ‘기회08’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해 외교·국방·경제·환경 등 다양한 주제의 정책 보고서를 쏟아냈다. ‘미국진보센터(CAP)’는 ‘액션펀드’란 이름의 별도 조직을 두고 직접 정치활동을 벌이는 한편, 국내·외 정책을 담은 ‘미국을 위한 변화’라는 정책집을 버락 오바마 진영에 제안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직후엔 ‘44대 미국 대통령을 위한 진보적 청사진’을 제출했다. ‘커먼윌연구소’는 제 각각의 연구 주제에 골몰하고 있는 진보적 싱크탱크들을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한 데 모아, 미국 진보진영 전체의 통합적 정책 제안 틀을 모색했다.

 

훗날 백악관 대변인이 된 람 이매뉴얼은 이런 싱크탱크들의 활동이 “공화당 같은 정책을 내세우며 ‘중간층’ 표심 잡기에 골몰하던 민주당에 변화를 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환경산업을 키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미국진보센터의 ‘녹색 회복’(Green Recovery) 정책 제안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주요 정책으로 반영됐으며,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결정,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어린이를 위한 건강보험(SCHIP) 확대 법안 서명 등도 이런 진보 싱크탱크들이 적극 개입해 이뤄낸 성과들이다.

 

1997년,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18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데도 당 밖 싱크탱크가 큰 역할을 했다. ‘공공정책연구소’는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한 ‘사회정의위원회’를 꾸려 1년 동안 전국 11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일반 시민까지 참여하는 공개 포럼 등을 개최하고 400쪽이 넘는 ‘사회 정의: 국가 재건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결과물로 내놨다. 블레어 정부는 공평한 기회에 기초한 새로운 발전전략을 담은 이 보고서를 기초로 ‘제3의 길’ 의 밑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교육과 보건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시켰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한국에서도 정당 및 국책연구소 등의 대안적 정책 생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외부 싱크탱크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야권, 무상급식·보육 고리로 ‘복지동맹’ 기대
지역·정파 아닌 ‘가치’ 중심
선거연합·단일정당론 부상

민주당 좌클릭은 ‘긍정적’
다양한 세력 묶는게 관건
한겨레 이세영 기자 메일보내기
» 야권·진보진영 복지동맹 관련 발언들
진보진영 ‘복지’로 승부

 

총선과 대선이 1년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새로운 연합정치에 대한 야당과 시민사회의 모색이 활발하다. 여기엔 지역주의의 약화와 유권자 집단의 분화 등 최근 정치 지형의 변화를 고려할 때, 과거 디제이피(DJP) 연합 같은 지역연합은 성사시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성공한다 해도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이 깔려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가치연합론’이다. 지역이 아닌 가치와 정책을 매개로 정당과 세력을 묶어낸다면 연고주의에 기반한 후진적 정치 구조를 혁신하면서 집권의 안정적 토대까지 구축하는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온건 자유주의에서 급진 사회민주주의에 이르는 야권의 다양한 이념 지향을 아우를 공통의 가치를 어디서 찾아내느냐는 점이다.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부상한 ‘반이명박 연합론’은 지향하는 가치가 모호했다. 권력의 사유화와 권위주의화에 따른 민주주의 후퇴를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범민주 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정치적 당위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층 급진적인 시민사회 일각에선 ‘신자유주의 반대’를 고리로 범진보진영이 연대할 것을 제안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등장한 ‘반신자유주의 연합론’이다. 하지만 두 흐름 모두 ‘~에 대한 반대’에서 연대의 계기를 찾는다는 점에서 ‘네거티브 연대’의 한계가 뚜렷했다.

 

최근 야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복지동맹론은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와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구체적인 복지 정책들을 매개로 정치 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연합론과는 차이가 뚜렷하다. 담론을 주도하는 주체가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 쪽 정치인들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가치연합으로서 복지동맹이 필요하다”며 ‘역동적 복지국가’를 민주당의 정책좌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앞에서 열린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인영 최고위원이나 천정배 최고위원은 한걸음 더 나가 복지동맹에 기초한 범야권 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과감한 ‘좌클릭’을 통해 복지정당, 중도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면 진보정당과도 당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김기식 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빅텐트론’이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의 ‘복지국가 단일정당론’과 흐름을 같이한다. 최근엔 ‘정파등록제’나 ‘독자 원내교섭단체 허용’ 등 소수파 보호를 위한 각종 방안들이 연합정당의 운영규칙으로 제안되고 있다.

 

민주당이 복지동맹의 중심적 추진세력으로 부상한 데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야5당이 정책연대를 통해 합의한 무상급식 공약이 선거판 전체를 흔들만큼, 복지 이슈의 파괴력이 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이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등 ‘무상복지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은 것도 이런 정치적 판단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소수정당들은 민주당발 복지정책의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무상시리즈에 대한 관료출신 의원들의 반발이나, 감정대립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증세논쟁을 보면 민주당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 이상으로 복지를 고민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복지동맹에 관한 민주당의 논의는 지나치게 ‘집권을 위한 전략’ 차원에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우리는 복지를 위해 연합을 하는 게 아니라, 야권연합을 하다보니 복지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경우”라며 “그러다보니 국가 비전 차원에서 복지를 생각하기보다, 몇가지 정책들의 조합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복지동맹을 지탱할 ‘사회적 세력’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서구의 성공한 복지동맹은 정당간의 정치연합 뿐 아니라, 다양한 계급·계층의 견고한 사회적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철희 전략기획부본부장 등이 “정책을 뒷받침해줄 세력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지 고민이 함께 가야한다”며 노동부문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층을 ‘친복지세력’으로 묶어낼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일자리 문제를 포괄하는 거시적 시각을 주문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복지는 항상 경제정책, 일자리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복지수요와 재정능력의 격차를 키워 지속가능성 문제에 반드시 부딪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신자유주의 폐해 막을 비전도 연대도 없었다

 

‘복지 확충’ 문제의식 부족
진보 진영과 소통도 안돼

참여정부의 ‘복지’ 반성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복지 정책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과감한 분배정책을 쓰지 못했다. 복지지출을 되도록 넉넉히 하라는 방침만 주고 관련 부처가 계획을 세우기를 기다렸다. 목표를 정해 지시하고 공무원들을 재촉하는 식으로 무식하게 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후회는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하지 못한 원인을 놓고는 ‘철학 부재론’에서부터 ‘상황 불가피론’까지 상당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가장 통절한 반성은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이 하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지했다. 2008년 미국의 월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고 무릎을 쳤다.

천정배 최고위원도 “김대중 노무현의 당선으로, 국민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뿐만 아니라, 내 삶의 물질적 복지가 증진될 것이라는 암묵적 기대가 있었을 터인데 우리가 그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정책은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당은 그 정책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복지 실패의 한 원인으로 ‘당정분리’를 들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복지 확충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었으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청와대가 끌고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노 대통령이 당과 청와대를 분리하면서 당을 방치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직접 노무현 대통령을 보필했던 사람들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조기숙 전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내걸고 당선된 분이기에, 복지라는 과제까지 과감하게 밀고 갈 힘은 없었다”며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실시하려면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복지를 위한 기초 통계자료도 충실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복지를 확대하기 전 통계청의 규모를 2배 늘리는 것부터 했다. 사회 전체적인 수준이 그 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도 “참여정부 초기 카드 대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탄핵 등의 정치적 격랑에 휘말렸고, 2004년 총선 이후에는 4대 입법 등 정치적 과제 중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중반기 넘어가면서 ‘비전 2030’ 등 중장기 재정계획을 마련해나갔으나, 그때는 늦은 감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 진영과의 연대, 소통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서도 참여정부 인사들은 성찰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열린우리당이 145석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152석이 되는 바람에 민노당이 소중한지를 전혀 몰랐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 시절이 대단히 중요했던 때인데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간 잘못이 있다. 약자의 연대라고 하는 것이 얼마만큼 겸허하게 했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기숙 전 홍보수석은 “노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과의 소연정보다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지역구도를 허물어뜨리고 한국 정치판을 이념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노동문제를 둘러싸고 민노당 등과 갈등을 빚으면서 진보진영에 실망한 것도 소연정에 소극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기사등록 : 2011-02-13 오후 08:17:58 기사수정 : 2011-02-13 오후 09: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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