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 스웨덴의 길]④ 노후가 든든한 사회(연금)

2011. 5. 20. 17:58discourse & issue

 

은퇴한 철강노동자 “월 350만원 연금 타”
[보편적 복지 스웨덴의 길]④ 노후가 든든한 사회(연금)
65살부터 누구나 받아…최저 월 134만원
최저보장연금에 소득비례연금 ‘2층 구조’
1998년 제도개혁으로 기존 문제점 보완
한겨레 김소연 기자 메일보내기

 

 
» 철강회사에서 은퇴한 베르틸 옌손은 연금 덕분에 큰 걱정 없이 노후를 지내고 있다. 40년 동안 연금보험료를 낸 그는 65살부터 매달 2만크로나(350만원)를 받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40분가량 떨어진 나카코문에서 만난 베르틸 옌손(74)은 노후를 큰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주변을 산책하고,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한 번은 근처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노인들을 상대로 자원봉사를 한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 얘기도 나누고, 여자친구와 여행도 즐긴다. 몸이 건강하니 하는 일도 많다.

 

그는 40년 동안 철강기업에서 일했다. 꼬박꼬박 연금보험료를 낸 덕분에 65살부터 매달 2만크로나(350만원)를 받고 있다. 그는 “의료비가 사실상 공짜이고, 노인들에겐 교통비, 박물관 입장료, 여행비용까지 할인해주기 때문에 연금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료품 따위를 사고 아파트 임대료(월 4000크로나)를 내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옌손이 누리는 평안한 노후생활은 스웨덴에선 일부 선택받은 이들의 특권이 아니다. 경제적 격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연금제도와 의료서비스 등 든든한 복지정책 덕택에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즐긴다. 스웨덴은 세계 3위 안에 드는 초고령사회다. 지난 2008년 기준으로 65살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다. 2050년에는 그 비율이 2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 보수진영에서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례로 내세우는 것이 연금제도다. 1998년 이뤄진 연금개혁 때문이다. 스웨덴의 연금제도는 98년 전인 1913년에 시작했다. 연금개혁은 1980년대 후반 논의를 시작해 10년 만인 1998년 합의에 이르렀다.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과연 보편적 복지 기조에서 벗어난 것일까?

 

스웨덴의 연금제도는 노인 누구에게나 주는 기초연금을 1층으로 하고, 소득에 비례하는 연금을 2층으로 하는 구조였다. 연금개혁은 기초연금을 없애는 대신 최저보장연금을 도입하고, 소득비례연금의 내용을 바꿨다. 소득비례연금은 개혁 전에는 노동기간 가운데 소득이 가장 높았던 15년 동안의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30년 가입기간에 한해 수급권을 보장했다. 이는 임금 변동이 별로 없이 40~50년 동안 일한 저소득층보다 15년 동안 높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구조여서 장기노동의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국립연금청 아르네 파울손 분석가는 “고령화경제불황이 겹치면서 연금 재정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기존 연금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도 개혁의 이유”라고 말했다.

 

새로운 소득비례연금은 일하는 동안 낸 보험료 총액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임금 수준이 비슷하다면 15년 일한 사람보다 20년 일한 사람이 보험료 총액이 많은 만큼 연금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연금보험료는 소득의 18.5%(우리나라의 경우 9%)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내는 우리와 달리 스웨덴에선 고용주가 11.5%, 노동자가 7%를 낸다. 이 가운데 2.5%는 노동자가 직접 선택한 주식에 투자한다. 소득비례연금은 일반적으로 65살부터 받는다. 61살부터도 가능하지만 연금 액수가 내려간다. 젊은 시절 일을 제대로 못해 65살이 됐을 때 소득비례연금이 최저보장연금보다 적거나, 연금을 전혀 내지 않았을 경우엔 최저보장연금을 받는다. 누구나 적어도 최저보장연금은 받는다는 얘기다.

 

스웨덴의 올해 최저보장연금은 1인 기준(40년 거주) 7597크로나(134만원)다. 최저생계비(4832크로나)보다 1.6배가량 많다. 파울손 분석가는 “사회제도는 인구 변화와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시대에 맞게 조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스웨덴 연금제도는 여전히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글·사진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궁금합니다 : 스웨덴의 연금제도 개혁은 보편적 복지의 기조에서 벗어난 것인가요?

우리나라 보수진영에서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례로 내세우는 것이 지난 1998년 이뤄진 연금제도 개혁이다. 1998년 연금 개혁으로 기초연금을 없애는 대신 최저보장연금이 새로 도입됐고, 소득비례연금의 내용도 바뀌었다. 고령화와 경제불황이 겹치면서 연금 재정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기존 연금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립연금청 아르네 파울손 분석가는 “인구 변화와 경제상황 등을 반영해 시대에 맞게 사회제도를 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스웨덴 연금제도는 여전히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개혁이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기조를 깨뜨렸다는 주장은 왜곡이라는 것이다.

“스웨덴선 자식에게 손벌릴 필요 없어”
어린이집 운영뒤 은퇴한 교민
한겨레 김소연 기자 메일보내기
“돈 빌려달라는 노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웨덴에서 50년째 살고 있는 교민 천순옥(75·여)씨가 스웨덴의 노후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자식이나 친구에게 돈을 빌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그는 65살부터 노령연금으로 매달 1만2000크로나(260만원)를 받고 있다.

스웨덴에선 98년 전부터 노령연금제도가 시행돼 대부분의 노인들이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 노인들의 경우 병원을 자주 가게 되는데 진료비와 약값을 합해 1년에 50만원 이상 내지 않는다. 주택 임대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이 나온다. 천씨는 “75살이 넘으면 전화 한 통으로 코문(지방자치단체)에서 커튼이나 전구 교체 등 집안에 불편한 상황까지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천씨는 요즘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수영과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등지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천씨는 “스웨덴이 한국에 비하면 생활하는 데 지루한 면은 있지만, 교육까지 공짜이다 보니 부모한테 손 벌리는 자식도 없어 크게 욕심만 내지 않으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천씨도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스웨덴 사람들처럼 30% 가까운 세금을 냈다. 천씨는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먼저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30%씩 내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김소연 기자


기초노령연금 9만원으로 버티는 한국 노인들
2명중 1명은 생계곤란 ‘빈곤층’
103만명, 정부혜택 사각지대
한겨레 김소연 기자 메일보내기
서울 용산에서 혼자 사는 이미숙(83·가명) 할머니는 요즘 “죽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평생을 청소일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는 노후마저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의 노후는 복지란 단어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은 기초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다. 자녀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도 되지 못했다. 팔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줍는다. 할머니는 “예전에는 밤새도록 폐지를 주웠는데 지금은 몸이 아파 몇 시간밖에 일을 못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처럼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데도 정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103만명이나 된다. 전국민 대상으로 국민연금이 시행된 지 이제 12년밖에 안 된데다, 노인복지가 아주 미흡하기 때문이다. 65살 이상 노인의 70%까지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한 달에 겨우 9만원이다. 노인들의 삶을 부축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3%)의 3배가 넘는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올 1월 기준으로 지역가입자 863만명 가운데 507만명(59%)이 실직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연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펴낸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의 33.1%만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국민연금은 최소 10년간 보험료를 내야 노후(60살 이후)에 연금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노후에 연금을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선 노인빈곤은 후대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65살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에 들어섰다. 2018년에는 고령사회(14% 이상)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찬성하고 있으나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액수를 올리고, 지급 대상을 전체 노인의 80~90%까지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다. 기초노령연금으로 1층을 만들고, 국민연금으로 2층을 쌓는 구조로 연금제도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개설된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가 이런 내용을 포함해 연금개혁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김소연 김지훈 기자 dandy@hani.co.kr

 

 

기사등록 : 2011-05-17 오후 09:02:58 기사수정 : 2011-05-17 오후 0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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