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보안성 자료로 본 북한] (상) 北 주민의 실상
범죄가 그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인민보안성이 정리한 각종 수사기록인 ‘법투쟁부문 일군(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는 ‘북한 정부판 주민생활 실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수록된 721건의 사례는 심각한 경제·식량난, 체제에 대한 반발, 광범위한 남한 문화 침투, 미국 달러화 유통 등 그동안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북한 사회의 흔들리는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심각한 경제·식량난, 체제 반발=산업재해로 불구가 돼 공장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이만성은 동숙생인 한남호가 잠들었을 때 경비실의 도끼로 살해한 뒤 일부를 식용으로 먹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양고기로 속여 팔다 적발됐다. 100%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이 같은 내용이 실린 것 자체가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간장에 소금물을 섞어 속여 파는 등 생계형 범죄 사례도 많았다. 양곡 수송대 소속 운전사가 차에 실은 쌀 5t을 시장에 내다팔다 걸리거나 협동농장 소를 훔친 사례, 트랙터 공장 노동자가 부품을 빼돌려 협동농장에서 식량과 교환하는 등 군이나 공장, 사업소 등에서 식량을 얻기 위한 범죄도 다수 소개됐다.
식량난에는 중간 관리자의 비리도 일조했다. 한 식량공급소장은 주민 공급용 식량을 야간을 이용해 친척과 간부들에게 1∼2개월분을 공급하는 바람에 주민들에게는 5일치 식량도 주지 못해 사회적 물의가 일어났다고 명시했다.
종이가 없어 학습장을 찍어내지 못하거나 온실을 지으면서 유리가 없어 암시장에서 흰쌀 5t과 유리를 교환하는 사례 등 심각한 원자재난도 드러났다. 협동농장 작업반장이 군 연유사업소에 벼 2t을 주고 트랙터용 디젤유 3t을 받았다가 ‘자재비법처분죄’로 처벌받기도 했다. 여성 공장회계원은 추위 때문에 2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소형 전열기를 쓰다 적발돼 ‘전력사용질서위반죄’가 적용됐다.
집단 난동 사례도 있었다. 인민보안서 직원들이 시장 판매금지 품목을 집중 단속해 물건을 압수하자 20여명이 수매기관에 몰려가 책상을 뒤엎고 의자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시장 상인들이 “넌 술을 안 먹고 사는 놈인가”라며 단속 나온 공안기관원 얼굴에 술을 뿌린 경우도 소개됐다.
◇‘달러’면 다 통해=자료에 소개된 전체 형법 위반 사례 455건 가운데 21건에서 뇌물 등의 용도로 달러가 등장했다. ‘달러’만 있으면 신분증 위조는 물론 금속·마약 밀매, 재판장의 무죄 판결까지 불가능한 일이 없었다. ‘정당방위초과살인죄’로 기소된 피소자의 사건을 재판하면서 600달러를 받고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장은 ‘부당판결판정죄’나 ‘관리일꾼뇌물죄’에 해당된다는 사례가 있었다. 달러는 또 고위 간부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너나 할것 없이 주요 치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 도시경영관리부장은 국가 공공건물 13동과 살림집 1세대를 분양해주고 1만1810달러 등을 받았다가 적발됐다. 지역 전신전화소 직원이 전쟁 노병들의 가정에 전화를 우선 설치해야 하지만 평균 100∼200달러를 낸 가정에 전화를 설치해 줬다가 적발돼 처벌됐다는 내용도 있다.
한 무직자는 광산 주변 개인들에게 1600달러 등을 뿌리고 아연 등 금속 80t을 사들여 밀거래하다 적발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9일 “화폐개혁(2009년 11월 말) 이전에도 달러가 뇌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라면서 “고위층일수록 달러를 선호하며,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고액 상품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마약과 위조지폐 횡행=마약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건도 소개됐다. 약학대학 교원이 자기 집에 설비를 차려놓고 마약 생산 원료를 구입해 ‘빙두’ 혹은 ‘아이스’(일종의 필로폰)라는 마약 500g을 제조, 밀매하다 적발됐다. 특수기관 노동자가 8000달러를 주고 마약 1㎏을 구입한 뒤 북부 국경지대에 들어가 1만2000달러에 팔아 차익을 챙기기도 했다.
위조지폐 유통도 지능화·조직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직자 2명이 인쇄 설비를 갖추고 4년간 5000원권 2400장과 휘발유표(교환권) 490장(7350㎏ 분량) 등 대량의 위폐와 가짜 유가증권 등을 만들어 5명의 불법 업자들을 통해 주요 도시와 군에 유통시켰다. 컴퓨터 전문가와 출판 종사자가 공모해 북한 최고 화폐 단위인 5000원권 20장을 찍어 유통시키다 적발되거나, 미술원이 1000원권 화폐 100장을 그려 날이 어두워지면 시장에 유통시킨 사건도 있었다.
◇남한과 서구문화 침투 사례=해안도시 거주자가 CD를 팔다 단속에 적발됐는데, 조사 결과 남한과 다른 국가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들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를 확인해보니 CD는 무직자 함경호가 화교로부터 구입해 자신의 집에 복사 설비를 갖춰놓고 유통시킨 것이었다. 최명달이라는 사람은 해안 유원지에서 한 여성에게 남한과 미국 영화가 들어 있는 CD 3개를 사서 몰래 본 뒤 다시 내다 팔다 당국에 적발됐다.
대북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처벌된 경우도 소개됐다. 마영길이라는 학생은 산에서 소형 라디오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몰래 밤마다 남한 방송을 청취했으며,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다 적발됐다. 남한이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내고 있는 라디오가 어떻게 이용됐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인민보안부에서 2000년대 말까지 근무했던 탈북자 K씨는 “지금까지 북한에 남한 측 콘텐츠가 담긴 CD가 3000만장 정도 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내가 근무할 당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30만장 정도를 한꺼번에 적발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나래 이성규 이도경 기자
인민보안성 내부 자료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 드는 엽기적인 사건·사고가 적지 않다.
종합식당책임자 최우선은 정신병에 사람의 뇌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부하 직원 박우선에게 현금 50만원을 줬지만 사람이 아닌 개의 뇌수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안 급양관리소 노동자 송선만은 최씨에게 “보안기관에 신고하겠다”며 50만원을 뜯어냈다. 인민보안부는 이들 3명에게 ‘국가재산속여가진죄’ 등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비를 피해 관 속에 들어간 노인 때문에 어린이들이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기술돼 있다. 공장 노동자가 이동작업 중 사망해 트럭에 관을 싣고 현장으로 이동하며 한 노인을 적재함에 태워줬고, 비가 내리자 노인은 관 속으로 들어갔다. 빗속을 걷던 소년단원(14세 이하 어린이) 3명과 여선생도 동승했다. 이때 노인이 비가 멎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 속에서 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겁에 질린 소년단원 2명이 차 밖으로 뛰어내려 1명이 사망했다.
불법으로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면서 4층 방에 모래와 시멘트 3t을 쌓아뒀다가 붕괴 사고가 일어나 아파트 18세대 중 12세대가 무너지며 13명이 사망한 사건도 소개됐다. 몰래 온수난방관을 중간에 빼돌려 목욕탕을 운영하다 적발되거나 식당 음식물찌꺼기에 강냉이를 섞어 밀주를 만든 사례 등도 북한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우리 법체계와는 동떨어진 케이스도 있다. 딸만 셋 가진 여성이 네 번째도 장애를 가진 딸을 낳자 젖을 먹이지 않고 방치해 굶겨 죽였다. 그러나 불순한 목적이 없는 영아살인은 사회성 위험성이 없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인민보안부는 설명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사회 혼란 방증… ‘법’ 내세워 3대세습 안착에 활용
- [2011.06.19 21:35]
인민보안성이 2009년 6월 ‘법투쟁부문 일군(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를 처음 펴낸 것은 각종 범죄와 사건들로 북한 사회가 그만큼 혼란스러워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자료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물건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와 더불어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나 기업소 지배인 등 중간 간부급 인사들의 횡령 사건도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북한의 사회주의 질서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이 같은 범죄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처리 기준을 만들 필요성이 커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자료는 형법의 적용, 특히 범죄와의 투쟁을 강조하면서 “범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여야 형법 각칙에 예견된 범죄 현상에 대해 옳게 해석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북한법 전문가는 19일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고 이에 따라 일선에서 (사법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선 돈과 백이 있으면 비법자(범죄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와 말씀, 당의 방침을 앞세웠던 북한 당국이 이렇듯 ‘법’을 강조하고 나선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북한에서 ‘법’은 형식상 존재할 뿐 실제 기능은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1992년 헌법 개정 당시 ‘국가는 사회주의 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한다’는 조항을 신설, 사회주의 법치주의를 도입한 뒤 줄곧 법치를 강화하는 정책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04년에는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중용 법전을 발간했고 이후 각종 개별법을 쏟아내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법치’ 강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5년에는 “당의 영도 밑에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사상’을 제시했다. 물론 이 역시 북한이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번 자료가 발간된 시점은 2009년 6월로 김 위원장 위중설이 유포되는 등 북한 내부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었다. 따라서 3대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고 ‘김정은 후계구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최초로 남측에 공개된 인민보안성 내부 자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①공개처형 왜 없나=류경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부부장이 지난 1월 숙청되면서 고위층이 보는 가운데 99발 총탄을 맞고 공개처형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일상화돼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번 자료에는 국방기밀에 해당하는 T-20 전차 설계도면을 잃어버렸거나 월경(越境)을 돕는 등 중죄를 저질러도 최대 무기노동교화형(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법 전문가인 신영호 고려대 교수는 19일 “이는 인민보안부가 처리한 사례로, 체제안전 등 민감한 부분은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개처형을 요하는 범죄는 주로 보위부나 보위사령부(우리의 기무사령부) 등이 주로 다룬다는 것이다.
②사건 일시가 적시되지 않은 이유=이 자료에 나온 721건의 사례 가운데 날짜와 시간이 적시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반면 소속과 직책 이름, 상세한 수치가 적시돼 있다. 또 각각 사례에 대한 처리 지침을 밝힐 때 ‘2007년 10월 1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지시 제162호∼’와 같이 일시를 정확히 밝힌 점에 비춰 대조적이다. 이는 이 자료의 목적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쉽게 설명하기 위한 용도인데, 꼭 일시를 특정해 넣을 필요성이 없지 않았느냐는 해석이다.
③민감한 부분 숨겼다?=문화재 절도 사례 중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인 정몽주 유적인 개성의 ‘숭양서원’ 출입문 절도 사건이 나온다. 그런데 정몽주를 ‘정몽준’으로 썼다. 국가대표 탁구 감독 뇌물 사건을 소개하면서 박두성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실제로 뇌물 사건에 연루된 인사는 박무성일 가능성이 있다. 박씨는 1979년 탁구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를 논의했을 당시 참여했던 북한 체육인이다. 국제 구호물자를 빼돌린 운전수 사례를 소개하면서 사건 장소를 ‘ㅊ항’으로 소개했다. 국제 구호물자가 주로 청진항을 통해 반입된다.
이성규 이도경 기자 zhibago@kmib.co.kr
[키워드] 인민보안성
우리나라의 경찰에 해당하는 북한의 핵심 공안기관이다. 국방위원회 직할 조직으로 지난해 4월 인민보안성에서 인민보안부로 개칭된 사실이 북한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조직은 중앙에 본부가 있고, 행정구역 단위별로 지부가 있어 우리 경찰과 흡사하다. 인민보안부장은 지난 4월부터 이명수 국방위 행정국장이 맡고 있다.
[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막강한 軍신분… 호위국 사칭해 여성 12명과 약혼
북한에도 병역기피가 적지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인 신분을 가장한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료소 의사가 복통 환자에게 ‘아편대’를 삶아먹으라고 처방하는 등 열악한 의료 환경도 북한 인민보안성 ‘법투쟁부문 일군(꾼)들을 위한 참고서’에 적시된 범죄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800달러에 신검결과 조작=병원의사 강대영은 800달러를 받고 대학입학을 위해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5명의 신체검사표를 조작했다가 적발됐다. 군사동원부의 호출을 받은 허영성이 시력이 나쁜 것처럼 꾀병을 부려 신검에서 불합격을 받은 이후 취업 과정에서 꾀병이 들통 난 사례도 있었다.
소형버스를 타고 해수욕을 하러 나선 청춘남녀가 우회도로를 이용하라는 인민군 병사를 구타해 한 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게 했다거나, 노동적위대(우리의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 악기공장 노동자가 열차간에서 졸다가 소총을 잃어버리는 등 세계 최고의 ‘병영국가’답지 못한 사건도 발생했다.
직장이 없는 이철(24)이 조선인민군 군관(중위)복으로 자신을 호위국(청와대 경호처) 소속이라 속이며 12명의 처녀와 약혼식을 치르는 등 북한 사회에서 군 위상이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건설노동을 하다 다리불구가 된 한 남성은 삼촌의 영예군인(상이군인) 메달을 달고 6명의 여성과 약혼 또는 결혼을 해 2명의 아이를 낳았다가 ‘칭호참용죄’로 처벌되기도 했다.
◇불법 민간치료 부작용 많아=‘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완전한 무상치료의 혜택을 준다’(인민보건법 제 9조)’는 선전과 달리 인민보안성 내부 자료에 나타난 의료 관련 사건·사고는 북한이 의료후진국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진료소(보건소) 의사들은 시아버지 생일에 가야 한다고 왕진을 거부해 환자를 사망케 하거나, 퇴근할 때 길에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식중독이라며 아편대를 달여 먹이라는 황당한 처방을 했다. 아편대 처방을 한 의사는 근무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거부죄’가 될 수 없다는 판단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료소보다 상급치료기관인 병원 내과의사 최치석은 급성폐렴 환자에게 유행성 감기 진단을 내려 환자를 사망케 했다가 ‘의료사고죄’로 처벌을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 민간치료가 만연하고 있다. 한 여성은 자궁에 바람을 넣으면 유산이 된다는 산부인과 의사 말을 듣고, 자전거 튜브 펌프를 이용해 불법 시술을 하다가 사망사고를 냈다.
엽기적 사건도 나와 있다. 간암 등을 고친다는 소문을 낸 뒤 찾아온 환자들에게 수은을 섞은 가짜의약품을 사용했다가 사망케 해 인민보안기관에 단속된 사례도 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뻣뻣한 특권층에 ‘백두산 3대 장군’ 우상화로 군기
- [2011.06.20 22:18]
[인민보안성 자료로 본 북한] (중) 법 위의 우상화
인민보안성 내부 자료 ‘법투쟁부문 일군(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는 고(故)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숙(김 위원장 생모) 등의 우상화를 통해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서 앞부분에 집중 등장하는 백두산 3대 장군(김 주석·김 위원장·김정숙)의 교시와 일화는 ‘우리도 특권의식을 버렸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수사기관 종사자나 당 간부 등이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각별히 단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권의식 팽배, 경고 담겨=일화 25개에는 3대 장군이 서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특권의식을 타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 주석의 부관이 규정량을 초과한 양의 부식을 김 주석에게 공급했다가 해임된 일, 잡곡밥과 강냉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식량을 더 공급받지 않은 일 등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경우 연유공급소(주유소)에서 줄서서 기다린 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꼬박꼬박 제 날짜에 반납한 일 등이 소개됐다. 김정숙은 자가용과 운전사를 거부하고 걸어 다녔다. 거의 모든 사례에서 이 3인의 친서민적 풍모가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인민 위에 군림해 온 수사기관 종사자 등 특권계층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로 북한 사회 최고 규범인 ‘최고지도자의 교시’가 활용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북한 사회에서 소위 힘 있는 자들 사이에서 특권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어려운 시기, 허리띠 조여야=우상화 부분에서 두 번째로 강조되는 부분은 지도자 3인의 검소하고 소박한 삶이다. 특히 가장 권위 있는 김 주석 사례에 집중된 점이 눈길을 끈다. 현지지도 나갈 때 입는 양복이 낡자 “색갈(색깔)이 좀 난(바랜) 것은 다시 뒤집어 손질해 입으면 되오”라고 옷 수리를 맡긴 일화, 구두 안이 닳자 가죽을 대 계속 신었던 일, 허름한 집무실을 고집했던 일화 등이 기술돼 있다.
남한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등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지도층에 ‘허리띠를 조이라’는 암시로 읽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서민들은 경제난에 시달리지만 지도층은 호화생활을 계속해온 데 따른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후계체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다잡기 차원으로도 풀이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김정은 주변 세력에 일종의 가이드라인?=3대 세습 정당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이른바 김정은 권력 세습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백두 혈통’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할아버지 김 주석의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숙의 경우 우상화에 등장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데 김정숙까지 등장한 것은 김정은 세습체제 지원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3대를 넘어 김일성의 조부인 김보현과 할머니 이보익의 서민적 풍모를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후계자 시절 김 주석을 예우하는 사례가 등장한다. 1981년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방문했을 때 덧신(신발 위에 신는 일종의 천)을 착용한 일화다. 전람관에 들어가려면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국가수반이 아니면 모두 신도록 김 위원장이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평양에는 태양이 두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했지만 아버지를 배려해 덧신을 신은 것이다. 이를 두고 김정은 주변 세력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메릴린 먼로, 공산주의 관심 이유 정보기관(CIA)에 암살 당했다”?
- [2011.06.21 07:14]
인민보안성의 내부 자료는 미국,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를 사회악과 범죄가 넘치는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자료 중간 중간 ‘법과 관련한 일화와 상식’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미국 등의 역사적 사건과 일화 65건을 실었는데, 상당수가 자본주의는 한심하고 공산주의는 우월하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의 유명 여배우 ‘메릴린 먼로’(자료는 매를린 몬로로 표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적은 부분이다.
이 자료는 “일련의 증거들은 이 여배우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음모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1952년 미국에서 중요한 군사 정치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그해 많은 사람들이 매를린 몬로를 ‘적색분자’로 간주했다”고 전했다. 당시 공산주의 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던 먼로가 정보기관에 의해 암살됐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사건을 묘사한 대목도 있다. 자료는 “서방 부르주아국가 정치가들은 쏘크라테스의 ‘법 정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쏘크라테스는 절대 다수 피압박 근로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몇몇 귀족상층이 정한 반동적인 법률을 지켜 어리석게도 목숨을 던졌던 것”이라고 평가 절하하고 있다.
미국인 데니스 호프가 1980년 달 소유권을 주장하며 ‘달도시 건설용’으로 땅을 3만평 넘게 팔았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이 내용을 소개하면서 “(달을 산 사람 중에는) 미국 대통령 레간(레이건)까지 있다”며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자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정신을 이렇게 기형화시키고 있다”고 적고 있다.
‘가택연금’은 자본주의 사회가 날로 늘어나는 범죄자를 수용하기 위해 내놓은 재치 있는 ‘발명’이며 ‘정말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 자료는 “사회가 통째로 범죄 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그 숱한 죄인을 가둬 넣을 감옥을 짓겠는가”라며 “온 나라가 감옥화된 사회,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진모습”이라고 기록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