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유니온, 노동실태 조사

2011. 6. 30. 18:38a survey of public opinion

 

 

“알바생에 화장실 갈 시간을 허하라”

등록 : 20110622 20:40 | 수정 : 20110623 12:10

 

청년유니온, 노동실태 조사

 


업주들 인건비 줄이면서 ‘나홀로 근무’ 많아져
볼일 참다가 건강 악화 몇시간씩 물 안마시기도
19% “최저임금도 못받아”

 

 
» 용산구 알바생 221명 조사 결과
아랫배가 묵직해지며 신호가 왔다. 김호진(가명·26)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주문이 들어왔다. “불고기버거 세트 두개요!” 24시간 문을 여는 패스트푸드점 주방에서 김씨는 밤새 홀로 일한다. 햄버거 패티를 불판에 올리며 배를 살살 문질렀다. 이날은 새벽 3시까지 한순간도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야간에는 점주가 알바생을 주방과 카운터에 각각 1명만 둬요. 알바생이 1명만 더 있어도 화장실은 갈 수 있을 텐데…. 쉬지 않고 8시간을 일하려니 너무 힘들어요.”

 

유명 카페 체인점에서 일하는 이우철(가명·27)씨에게도 휴게시간이 없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하는 이씨는 “밀려드는 손님에 넋이 나가도록 일을 하다 보면 너무 배가 고프고 힘들다”며 “사장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두고 알바생들이 자리를 비우거나 뭔가를 먹는 듯하면 바로 혼을 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조아무개(27)씨는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면 쏟아져 들어오는 ‘콜’을 일시로 막아두고 팀장에게 보고를 한 뒤 화장실에 가야 하는 ‘텔레마케터 알바생’이다. 근무 첫달 “화장실에 간다”는 말을 못해 참다 보니 생리불순이 찾아왔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데 휴게시간은 물론 점심시간도 없다. 매일 출근길에 빵을 사와 몇초 동안 콜을 막아놓고 재빨리 씹어 먹는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봉변’을 당한 경우도 있다. 피시방 알바생 강아무개(30)씨는 “용변이 급해 다녀와 보니 누군가 금고를 털어갔다”며 “당시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사장에게 변제를 한 뒤로는 화장실은 웬만하면 참는다”고 말했다. 화장실 갈 짬조차 내기 힘든 알바생들은 일하는 동안 아예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시급제 알바생들이 최소한의 휴게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현실은 설문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청년유니온이 지난 5월19일부터 한달 동안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편의점,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 166곳에서 일하는 알바생을 조사해 22일 공개한 내용을 보면, 221명의 응답자 가운데 91명(41.2%)이 ‘휴게시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종필 청년유니온 조직국장은 “거대 체인음식점이나 편의점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인건비를 아끼려고 알바생 수를 줄이면서 노동 환경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휴게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알바생도 상당수였다. 용산구의 166개 사업장 가운데 41곳(18.6%)은 최저임금(시급 4320원)조차 지키지 않았다. 47곳(21.2%)은 알바생에게 최저임금만큼만 지급했다. 청년유니온이 지난해 전국의 편의점 444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292곳(66%)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의 휴식도 없는 노동은 각종 사고나 건강 악화와 직결된다. 피자 배달부 이아무개(33)씨는 “몇시간 연속으로 쉴 새 없이 배달을 나가다가 운전중 멍해져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노동에 시달릴 경우 직접적으로는 방광에 영향을 미쳐 요실금 등의 증상이 일찍 나타날 수 있고 중풍, 심장질환에도 쉽게 걸리는 등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특히 쉬지 못한 채 일을 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각종 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고용부도 지자체도 ‘시간 없어서’?

“인력 부족” 등 핑계로 알바생들 노동환경 단속 뒷짐

알바생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현실적으로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22일 “고용부 홈페이지를 통해 최저임금 위반 등을 신고하면 관할 지역 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전달되고 조사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이 3디(D) 업종이라고 할 만큼 인력이 부족하고 업무강도가 높은 상태여서 최저임금, 휴게시간 등을 보장하는지 여부를 일일이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용산구청 관계자도 “구청 고용정책과의 최대 목표는 일자리 창출로, 세세한 노동환경 문제는 그동안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설혜영 용산구의원은 “청년유니온의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촉구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고용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설 의원은 “구청 차원에서도 사업주와 알바생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교육을 하고 음식점 등 상업시설 위생점검을 할 때 노동자의 노동환경도 감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중”이라고 덧붙였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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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2 20:40 | 수정 : 20110623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