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 물류혁신 박차…‘남북평화’도 실어나른다

2012. 5. 15. 19:54lecture

 

 

아시아~유럽 물류혁신 박차…‘남북평화’도 실어나른다

등록 : 2012.05.14 20:46 수정 : 2012.05.15 15:31

시베리아 횡단철도 르포
푸틴 재집권으로 ‘극동 프로젝트’ 가속도
시민들 “한국·일본 물류 철도로 돌아올 것”
남북교류 늘면 경제이익·안정에 한몫 기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름 앞둔 지난달 23일,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의 키릴공원은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연륙교의 야경을 즐기려고 나온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공원에서 만난 시민 아나스타샤는 “어둡고 침침했던 블라디보스토크가 2년 새 확 달라졌다”고 자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푸틴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극동 프로젝트’의 핵심도시다.

푸틴의 재집권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극동 프로젝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중심에 놓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개발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극동의 천연자원을 개발해 낙후된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아시아·태평양지역 시장에 진출해 중국을 견제하며 러시아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는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유치해 극동 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3년 동안 100억달러를 들여 회의장인 루스키섬을 잇는 연륙교를 만들었다.

러시아의 극동 프로젝트는 북한의 경제 활성화, 남한의 한반도 종단철도(TKR·Trans-Korean Railway)를 통한 대륙 진출과 맞물려 있다. 건설회사인 시브베르미쿨리트의 유코 겐나디비치 회장은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물류기지 개발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계해 궁극적으로 동시베리아 석유와 천연가스를 국외에 팔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할린과 연해주의 가스·원유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러시아가 두만강 근처인 하산까지 가스관을 연결한 데 이어 남한까지 수송관을 공급하는 방안을 구상중인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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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쪽으로 180㎞ 떨어진 보스토치니항. 외국에서 실려온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운송되는 기점이다. 18년 전 한국 기업들이 전용 공단과 항만을 건설하려다 실패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5~6년 전 철도 운송료가 크게 오르면서 많은 물류가 해상운송으로 돌아서긴 했으나, 극동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이곳 사람들도 크게 고무돼 있는 듯했다. 아르촘 나홋카-보스토치니역 부역장은 “극동 개발 효과로 한국·일본의 물류가 철도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컨테이너들은 항구 맞은편 나홋카-보스토치니역에서 9288㎞ 떨어진 종착역 모스크바로 간다. 보스토치니역에서는 하루 250개 컨테이너와 137량(1량=67~70t)의 벌크화물을 실은 5개 열차편이 출발한다.

극동 개발과 함께 러시아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으로 2010년부터 시작된 ‘국가물류시스템 현대화 계획’이 꼽힌다. 이 계획의 거점도시는 중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다. 러시아 중앙에 위치해 동·서 러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다. 지난달 26일 자정께 도착한 노보시비르스크 중앙역 주변은 한밤중인데도 불을 밝혔고 시내 중심가는 자동차와 젊은이들로 붐볐다.

물류현대화 계획은 2030년까지 4400억달러를 들여 철도 등 물류 인프라를 현대화함으로써, 아시아~유럽 물류의 20%를 러시아로 유치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운송수익을 현재 연간 1000만달러 수준에서 2억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모스크바철도대학의 니콜라이 예브게니예비치 교수(물류교통시스템학)는 “극동의 자원 수송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주요 통로”라며 “정부가 이 철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시도했으나 물량이 크게 늘지 않자 국가물류시스템 개혁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러시아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는 데 다른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시베리아철도대학 총장을 지낸 콘스탄틴 코마로프 박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낙후된 인프라와 통관 절차 등으로 경쟁력을 잃어 연간 450만개로 추정되는 극동발 유럽행 컨테이너 가운데 1%가량만 운송하는 비효율이 지속돼왔다”며 “철도는 해상보다 운송 거리가 짧고 시간도 줄일 수 있어 기대효과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6개 물류역에는 보스토치니를 떠나 보름 동안 여정을 마친 컨테이너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벨라루스공화국의 브레스트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러시아는 한반도가 중앙아시아와 유럽 등 대륙으로 진출하는 육상통로”라며 “러시아 극동 자원 개발과 물류시스템 개혁은 남과 북에 물류 교류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구축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극동개발은 대륙진출 기회…한·러 파트너십 강화할 때

등록 : 2012.05.14 20:42 수정 : 2012.05.14 20:42

지난달 23일 밤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이 키릴공원에서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가 열리는 루스키섬과 연결된 연륙교의 야경을 즐기고 있다.

러, 낙후된 동쪽 개발과 중국견제 의지 강해
외자유치 위한 민영화…인프라 현대화도 속도
자원 풍부한 극동지역에 기업 투자 고려해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활용한 푸틴의 러시아 극동 개발 계획은 한국에도 대륙 진출의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한국과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남과 북을 잇는 한반도 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에 연결되면 남북 경제 협력과 교류를 넘어 우리나라가 대륙을 거쳐 유럽으로 진출하는 지렛대 구실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정부가 최근 관련 부처에 회람한 극동 개발에 관한 연방법률안을 보면, 개발 주체는 ‘동시베리아·극동개발공사’로 돼 있다. 이 공사는 연방정부를 대신해 러시아 영토의 60%인 16개 주의 지하자원, 삼림, 토지, 도시계획, 노동 등을 직접 관할하고 자원 허가권도 갖는다. 필요한 자원 사용권은 입찰 없이 획득해 투자 회사에 줄 수 있고, 수익세·토지세·재산세 등은 내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이어서 감사원 말고는 연방기관이 공사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 유력한 사장 후보는 이고르 슈발로프 제1부총리다.

푸틴 정부의 극동 개발 의지는 동·서 러시아 간 개발·소득 불균형이 깊어지면서 더 굳어졌다. 낙후된 동러시아의 인구와 경제 공동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진을 견제하고 극동지역과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의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도 개발에 나선 이유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동북3성과 시베리아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200개의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2007년부터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에 224㏊ 규모의 중국 업체 전용 경제통상협력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2018년까지 신발·의류 등 200여개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중국은 최근 북한 접경지역인 위화도, 황금평과 나진항에도 진출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외 투자자본을 유치하려고 공기업 700개를 민영화하기로 하고, 현재 대표 물류업체인 트랜스컨테이너 등 200개 기업의 민영화를 진행중이다. 연방 산하 공화국들의 외국자본 유치 활동도 허용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포함한 국가물류인프라 현대화 계획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송하는 인프라 수준을 높이려는 게 복안이다. 철도 전문가들은 자원개발, 전용공단 건설과 함께 물류인프라 현대화가 이뤄지면 러시아 동·서간 물류 불균형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회송 컨테이너 활용률을 높이면 운임을 낮출 수 있어 한국 물류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활용도를 높이고 활발한 투자를 이끄는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소영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블라디보스토크 무역관장은 “기업이 투입비용, 이익률, 경쟁사 등을 정교하게 따져 민영화 대상 공기업들에 투자하고, 동시에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글·사진 송인걸 기자

 

유럽은 ‘친환경 철도수송’이 대세
한국도 ‘남북러 연결시대’ 대비를

등록 : 2012.05.14 20:41 수정 : 2012.05.14 20:41

유럽연합은 환경운송 프로그램인 ‘마르코폴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도로로 운송하던 물류를 철도, 해운, 파이프, 내륙수운 등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바꾸면 보조금을 주는 친환경 물류수송 유도 재정지원 제도다.

이 프로그램은 도로 운송이 증가하면서 주요 도시의 교통 막힘이 심해지고, 대기환경도 악화되자 이를 개선하려고 마련됐다.

유럽연합은 2003년부터 4년 동안 1차 프로그램에 7370만유로를 투입해 전환 물동량 478억t·㎞(톤 킬로미터, 화물 톤수에 그 화물의 수송거리를 곱해 수송량을 산출하는 단위), 환경이익 10억1400만유로의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2013년까지 4억5000만유로를 투입하는 2차 프로그램을 통해, 2000억t·㎞의 도로운송 물동량을 전환해 120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 2004년 도로 중심 수송을 철도·해운 중심의 대량·장거리 수송체계로 전환하는 국가물류체계 개선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철도의 화물 수송 분담률은 6%대에 머물러 있다. 여객열차 중심의 서비스 개선에 주력했고, 지난해부터 도로운송을 철도로 전환할 때 주는 정부 보조금도 2년간 30억원으로 많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지리적 한계도 있다. 철도운송은 운송거리가 250~300㎞는 돼야 경제성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평균 운송거리가 90~100㎞에 불과해 운임이 도로운송보다 비싸다고 한국철도물류학회는 분석했다. 이 때문에 간선 물류 운송을 철도가 맡는 일관물류체계 도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을 2단 적재하거나 컨테이너 2개를 싣는 ‘장축 화물열차’를 도입해 화물열차 한 편성당 운송량을 갑절로 늘리면 운송비를 40%까지 낮출 수 있다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교통공학)는 “한반도철도가 연결되면 운송거리가 길어져 철도운송비가 해상운송보다도 싸질 것”이라며 “중국·유럽연합과의 물류운송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 환경 운송을 강화하고 남북철도 연결을 앞당기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송인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