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1. 동네빵집 생존해법은

2012. 6. 3. 16:31tech_coop_agri

 

 

‘99%의 경제’를 말하자

등록 : 2012.05.31 19:55 수정 : 2012.05.31 21:56

● 이윤 극대화, 승자독식→신뢰·협동의 경제로
대기업은 나날이 성장…국민삶은 갈수록 팍팍
협동조합·사회적기업서 행복한 경제 실마리 보여

재벌 대기업만 바로잡으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2010년 한국 2000대 기업(금융업 제외)의 매출을 모두 합하면 1711조원이었다. 2000년의 815조원에 견줘 110%가 늘었다. 그런데 일자리는 156만개에서 161만개로 5만개만 늘었다. 물건을 갑절 이상 더 팔았는데, 일자리는 2.8%만 늘린 셈이다. 그래서 돈은 기업에 고이고 가계로 가지 않는다. 산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06~2010년 기업 가처분소득은 연평균 19.1%가 늘었는데, 가계는 1.6%만 늘었다.

 

기업의 기능은 생산과 분배다. 기술혁신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매출을 일으키고, 임금 등을 통해 이를 사회에 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성장의 과실은, 그들이 쌓은 성 안에서만 맴돌며 나누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의 나라가 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영리기업의 이윤 극대화 논리가 중요한 원인이다.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도 주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일자리 창출 등의 사회적 책임은 부차적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개선할까? 재벌개혁과 경제력집중 완화 정책도 필요하다.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정적인 상장 제조기업이 고용하는 인원은 인구의 1% 남짓에 불과하다. 이 바깥에 있는 ‘99%의 경제’에서도 새로운 동력이 나와야 문제가 해결된다.

 

대한민국은 국가통제와 시장만능주의를 오가다가, 1990년대 이후 시장과 경쟁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신성시하는 체제가 됐다. 이 두 가지 길을 거쳐 글로벌 수출 대기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평균적 한국인이 짊어져야 할 위험은 커졌고, 계층 상승 기회는 낮아졌다. 양적 성장은 했지만, 행복한 경제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세번째 실험이 필요한 때가 됐다.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경제다.

협동조합은 대주주가 결정권을 독점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소비자 또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올해 말부터는 설립이 자유로워진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성과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다. 지역공동체 기반의 마을기업도 그 싹을 틔우고 있다. 이들이 사회적 경제의 주인공들이다. 사회적 경제는 탐욕 대신 협동, 신뢰, 명예 같은 동기로 움직인다. 고용, 민주주의, 환경 등의 성과를 재무성과보다 앞세운다.

 

1981년 미국의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저성장 시대의 고성장 기업’이라는 연설에서 주주지상주의와 일등주의를 답으로 내놓았다. 그 원리는 30여년 동안 자본주의를 이끌다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겨레>가 오늘부터 매주 금요일에 싣는 ‘99% 경제’는 이 동력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동네빵집, 파리바게뜨·뚜레주르 이길 비법 있다

등록 : 2012.05.31 19:55 수정 : 2012.06.01 10:23

[99%의 경제] 협동조합이 싹튼다
34년 역사 ‘이화당’ 주인 부부 “대기업과 겨루기 너무 힘들어”
프랜차이즈 가맹점 주인도 “본사만 살찌는 이상한 구조”
빵굼터 같은 공동브랜드 협동조합으로 진화 가능성

서울 이화여대 후문 건너의 동네 빵집 ‘이화당’은 올해를 넘기기가 숨이 차다. 1979년에 문을 연 이화당 34년의 주인, 박성은(74) 할아버지와 신연주(70)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 올해 초 파리바게뜨 매장이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선 뒤로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대기업이 황소개구리처럼 동네 빵집들을 다 삼키잖아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요. 그전보다 1시간 먼저 일어나고 1시간 늦게 문을 닫아요. 손님들한테 서비스도 더 많이 주지요. 그렇게 근근이 버티는데, 올 한해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파리바게뜨와) 겨루기가 벅차요. 그동안 아들이 일을 많이 도왔어요. 그런데 그 녀석까지 이제 애착을 보이지 않네요. 전망이 없으니까요.”

 

 

 

우리 이웃의 동네 빵집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2008년에 8153개였다가 지난해 5184개로 불과 3년 사이에 35.1% 격감했다. 같은 기간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은 3572개에서 5290개로 45.1%나 점포 수를 늘렸다. 올해 초 동네 빵집의 대명사인 서울 동교동의 리치몬드제과점(홍대점)이 문을 닫은 자리에도 롯데리아 매장이 들어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탐욕이 점령한 것은 동네 빵집만이 아니다. 커피점과 치킨점, 하다못해 김밥집까지도 싹쓸이했다. 서민들의 자영업은 이미 무참하게 무너졌다.

 

50대의 김아무개씨는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운영한다. 그는 본사의 보복을 우려해 인터뷰 요청에 불응하다가, 철저한 익명을 전제로 겨우 입을 뗐다. 김씨 역시 3년 전까지 25년 전통의 동네 빵집 주인이었다.

 

“파리바게뜨 가게로 바꾸라는 걸 처음에는 거부했죠. 그랬더니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 가게를 내겠다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우리 같은 가맹점주들은 대체로 4억~6억원 투자하는데, 제대로 이익 내는 사람 30%도 안 될 겁니다. 몇년 지나면 몇억 들여 가게 확장하고 인테리어 새로 하라고 해요. 그래야 본사 매출 늘릴 수 있잖아요. 하지 말고 버티라고요? 그냥 쫓겨납니다. 가게 물품은 모조리 본사에서 비싸게 구입해야 하고, 인테리어 비용은 터무니없는 바가지예요. 본사만 살찌고, 가맹점들은 모두 힘든 이상한 구조지요.” 김씨는 “명예퇴직자들이 물정 모르고 가맹점에 뛰어들었다가 코 꿰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처지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가맹점주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거래를 고발하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으며,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가맹점도 속출하고 있다. 동네 빵집과 가맹점주들 대다수가 어렵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홀로 승자독식하는 슈퍼스타 효과가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해법이 어렵다는 것이다. “동네 빵집 살리자”고 사회 전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말의 성찬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의 동네 빵집 점령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합의’는 재벌의 사업 포기 요구였다. 이부진 회장의 호텔신라는 ‘아티제 블랑제리’의 지분 19%를 홈플러스에 매각했고, 신격호 롯데 회장의 외손녀인 장윤선씨는 프랑스 식료품 ‘포숑’ 브랜드를 운영하는 블리스의 지분을 매일유업 등에 처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분매각으로 ‘동네 빵집’의 처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기업으로 주인이 바뀔 뿐이다.

 

1979년에 문을 연 서울 이화여대 후문 앞 동네 빵집 ‘이화당’의 주인 박성은(74)씨와 신연주(70)씨가 케이크를 팔고 있다. 올해 초 ‘파리바게뜨’ 매장이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선 뒤로 매상이 줄어 올 한해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주목할 만한 변화는 ‘협동조합’ 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빵집 사업에 대한 대기업 진출 제한과 함께 협동조합 방식의 해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대한제과협회를 중심으로 동네 빵집들이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공동구매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빵굼터 같은 공동 브랜드가 본격적인 협동조합기업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살아남은 동네 빵집끼리 공동 브랜드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협동조합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공동구매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미국의 버거킹과 덩킨도너츠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시장만능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협동조합 방식이 좋은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을 뒷받침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은 “동네 빵집 같은 ‘생활경제’에서는 대기업들이 노동절약적 혁신을 통해 오히려 일자리와 소득을 줄이는 사회적 역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대기업의 소매유통업 진출을 제한하거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방식의 사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12월 초부터 다양한 협동조합기업의 설립이 자유로워진다. 지금까지는 농협과 수협, 생협 등 8개 개별법에 정해진 협동조합 설립만 가능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빵집 협동조합 어떻게 세우나

 

동네 빵집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선, 각 지역별로 살아남은 빵집들이 의기투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 관악구의 동네 빵집 20곳이 공동출자로 ‘맛있는 관악’이라는 공동 브랜드의 협동조합기업을 세우는 것이다.

공동 브랜드의 협동조합을 세우면 지속가능한 공동구매 및 공동홍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여러 지역에서 빵집 협동조합이 결성된다면, 다같이 모여 협동조합연합회로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빵집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동지’인 생협이나 농협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다. 생협에서는 빵집을 홍보해주고 빵집에서는 생협 조합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빵집과 치킨집은 취급 품목이 단순하다. 따라서 공동구매의 비용절감 효과를 내기에 좋고, 협동조합 하기에 적합한 사업이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

아하! 협동조합

투자자몫 이윤 안떼는 만큼 가격 인하나 임금개선 가능

 

협동조합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른 기업’이다. 소비자에게는 값싸게 팔고, 농민들의 농산물을 비싸게 사주는 ‘이익 극소화’ 행동을 한다. 그렇게 하고도 시장경제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임원을 맡고 있는 수사네 베스트하우센을 만났다. 그에게 “값싸게 팔고도 어떻게 소비자협동조합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투자자가 없다는 것이 협동조합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그는 다른 모든 비용이 0이라고 가정해 설명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회사에서는 노동자 임금 75유로를 지불하고 100유로짜리 자전거를 생산해 판다. 25유로의 이익을 남기고, 그것을 투자자가 가져가는 구조인 것이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다른 점은 25유로를 가져갈 투자자가 없다는 점이다. 협동조합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힘 또한 바로 25유로의 행방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협동조합에서는 25유로를 자전거 가격 인하에 투입한다. 농민들의 생산자협동조합이라면, 25유로를 농산물 값을 더 쳐주는 쪽으로 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급여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재원으로 25유로를 돌릴 것이다.

파리바게뜨 가맹점들이 구매전담 협동조합을 세운다고 상상해 보자. 그동안 본사에서는 식재료 공급 과정에서 폭리를 취했다. 이제 협동조합에서는 가맹점에 공급하는 식재료를 구매 원가 그대로 공급한다. 가맹점의 식재료 구매 원가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 ‘이화당’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뜨 지점이 새로 입점했다(위). 대학로에서도 커피·제과 등의 업종에서 재벌은 ‘황소개구리’처럼 자영업자들을 몰아내며 지역경제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아래). 정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