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바르 칼손 전 총리-최연혁 교수 대담

2012. 7. 12. 17:08interview

 

 

사회적 갈등 치유의 수단으로 복지만큼 좋은 게 없다”

등록 : 2012.07.11 20:47 수정 : 2012.07.11 20:47

2012 스톡홀름 포럼
잉바르 칼손 전 총리
최연혁 교수 대담

잉바르 칼손(77) 전 스웨덴 총리는 정통 사회민주주의자다. 그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와 함께 마련한 ‘2012년 스톡홀름포럼’에서 ‘스웨덴 복지 모델의 기원과 희망, 꿈’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펼쳤다. 1980~90년대 두번의 총리를 역임한 노정객은 이 연설에서 여전히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강조하며, 복지국가에 대한 희망과 꿈을 역설했다. 칼손 전 총리는 ‘복지한국의 창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의 정부와 신뢰의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를 지난 2일(현지시각) 스웨덴 정치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인 고틀란드 섬에서 최연혁 쇠데르퇴른대 교수와 함께 만났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재정 위기가 유럽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비교적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스웨덴이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스웨덴의 재정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1990년대 초 스웨덴이 재정위기를 미리 겪은 데 따른 면역력도 있지만 1990년대 이래 건전재정을 이룬 면이 크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정부 예산안 책정 때 국내외의 재정상황을 감안한 예산안의 기조를 짜고, 예산안 상승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켰다. 이렇게 해 세수 규모 이상으로 예산안을 편성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기조는 현재 보수우익 정부 아래서도 이어졌다. 국내총생산의 30% 정도 선에서 국가채무를 통제해 국가신인도도 매우 높다. 이런 펀더멘털은 스웨덴의 경제를 매우 안정적인 상황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부의 충격이 와도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사민당 정권의 덕으로 현 보수 정권이 안정적 경제발전은 물론 남유럽발 재정위기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얘긴가?

“전적으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재정흑자 기조는 내가 총리를 할 때인 1994년부터 정착됐다. 그리고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실질적 임금 상승을 이끌었고, 탄탄한 경제성장도 가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스웨덴의 한 민간은행이 라트비아 등 해외투자에서 큰 적자를 봤을 때 국가가 발빠르게 채무를 인수해 보전해 주었다. 이로 인해 (재정위기 상황이)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적절하고 신속한 정책 대응은 경제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현 정부도 이런 면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국가 신인도의 상승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이룬 사민당의 흑자기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잉바르 칼손(77) 전 스웨덴 총리
낙오자 없도록 재기돕는 교육과
국가의 적극적인 고용정책으로
기업은 질좋은 노동력 공급받고
개인은 빈부격차 줄일 수 있어…

남유럽 재정위기 근본 해결책은
‘신뢰의 회복, 신뢰의 정치’ 우선

-남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은 뭔가?

“신뢰회복이 우선이다. 신뢰만큼 중요한 국제경쟁력이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재정자금을 중장기 투자성 기금으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실업자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공하고, 학교제도의 정비를 통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면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연구에도 과감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안 약간의 여유자금으로 연구투자를 이끌어내면 산업생산성을 가져오기 때문에 단기적, 중기적 위기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스웨덴은 높은 세금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국가의 효율적 운용이라고 본다. 스웨덴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덜 부패하고 능력있는 정부다. 국민들의 정치제도에 대한 믿음도 강하다. 그리고 사회세력 간의 연대의식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세금을 많이 내지만 기업지원 프로그램도 적잖다. 예컨대 (실업자 재교육프로그램 등)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기업이 따로 신규고용 창출을 위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으며, 신규채용을 위해 큰 투자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질 좋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회사들은 기업활동에만 치중하면 되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다. 또한 스웨덴은 장기투자를 많이 한다.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비싼 것 같지만 질 좋은 노동력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차원에서, 또한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란 점에서 오히려 효과적이며 유용하다. 열린 교육은 구조조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를 재교육시킬 수 있고, 실업기금과 함께 운용되기 때문에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 안정에도 기여한다. 낙오되는 사람이 없이 누구나 다시 재기하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게 스웨덴의 가장 큰 강점이다.”

 

-스웨덴 모델의 본질을 한마디로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게 해 주는 교육정책,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한 고용정책, 정치의 상생노력, 정치인의 희생, 노사의 탄탄한 협조구조와 노조의 책임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이런 것들이다. 스웨덴 모델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경쟁력 있고, 모든 사람이 믿고 세금을 내며, 정부도 단 한푼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국민의 세금을 낭비 않으려는 정치적 노력은 깨어 있는 비판적 시민이 있기에 가능하다. 국민의 높은 정치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복지에 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회적 갈등 치유의 수단으로 복지만큼 좋은 것이 없다. 중장기적으로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해 주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공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최소화된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의 회복이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사회,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복지가 성공할 수 없다. 복지 이전에 신뢰의 정부, 신뢰의 정치가 우선이다. 스웨덴이 복지국가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정당들의 상생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있어 가능했고, 정책개발을 위해 애쓰는 의원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정치의 생산성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복지민주주의는 이 점에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고틀란드/글·사진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잉바르 칼손 스웨덴 전 총리는

잉바르 칼손은 1986~91년, 이어 94~96년에 스웨덴의 총리를 지냈다. 1986년 올로프 팔메 당시 총리가 의문의 암살로 갑작스레 숨지면서 ‘대타’로 등장했지만, 일찍부터 팔메에 필적하는 정치적 능력을 평가받은 인물이었다. 1965년 30대 초의 나이에 의원에 당선돼 교육부 장관(1969~73), 주택부 장관(1973~76), 부총리(1982~86) 등을 두루 거쳤다. 사민당의 청년조직인 스웨덴 사회민주청년동맹(SSU)의 지도자로 일찍이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총리 재임 때에는 부동산 가격 폭락 등 금융위기(1990년)의 여파로 91년 총선에서 보수연합 세력에 정권을 넘겨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94년 선거에서 재기해 총리 2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총리 2기 시절에는 사민당 정부로서 초긴축적 거시경제정책을 집행해 마침내 98년 스웨덴이 재정흑자 상태로 전환하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96년에 당 지도자 및 총리 직을 예란 페르손에게 넘겨주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올 스톡홀름 포럼은

새 복지모델 모색 100여명 머리맞대

스톡홀름포럼은 해마다 7월 초에 스웨덴 최대 휴양지인 고틀란드 섬에서 열리는 국제 토론회다. 지난 1~3일 열린 ‘2012년 스톡홀름포럼’은 네번째 치러지는 행사다. 올해는 특히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 설립 1돌을 기념해 이 연구소와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소장 최연혁)가 공동으로 마련했다. 이번 주제는 ‘스웨덴 복지 모델의 위기와 기회, 그리고 새로운 비전’이었다. 본 행사는 각기 ‘북유럽 복지 모델의 지속을 위한 조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방 정부의 역할’, ‘복지개혁의 딜레마: 세금, 여론 그리고 경제성장’ 등을 주제로 총 3부로 나뉘어 펼쳐졌다. 잉바르 칼손 전 스웨덴 총리와 예란 테르보른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의 기조강연도 있었다.

100여명에 이르는 참가자 가운데 스웨덴 쪽에서는 스벤 호르트 쇠데르퇴른대 교수, 레나르트 에릭손 스톡홀름대 교수, 자유당 및 환경당 국회의원과 도의회 의장 등이 참여했고, 한국 쪽에서는 김용익 민주당 의원, 고재득(성동구)·김성환(노원구)·유덕열(동대문구) 청장, 나소열 서천군수, 김윤식 시흥시장, 정선수 광주광역시 광산구 부구청장 등 6명의 자치단체장급 인사와 김형기 경주경실련 대표, 변광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고문, 임성규 서울복지재단 대표이사, 정혜주(고려대)·박선영(계명대) 교수,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장 등 모두 46명이 참여했다.

고틀란드/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