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스톡홀름 포럼
잉바르 칼손 전 총리
최연혁 교수 대담
잉바르 칼손(77) 전 스웨덴 총리는 정통 사회민주주의자다. 그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와 함께 마련한 ‘2012년 스톡홀름포럼’에서 ‘스웨덴 복지 모델의 기원과 희망, 꿈’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펼쳤다. 1980~90년대 두번의 총리를 역임한 노정객은 이 연설에서 여전히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강조하며, 복지국가에 대한 희망과 꿈을 역설했다. 칼손 전 총리는 ‘복지한국의 창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의 정부와 신뢰의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를 지난 2일(현지시각) 스웨덴 정치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인 고틀란드 섬에서 최연혁 쇠데르퇴른대 교수와 함께 만났다.
-사민당 정권의 덕으로 현 보수 정권이 안정적 경제발전은 물론 남유럽발 재정위기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얘긴가? “전적으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재정흑자 기조는 내가 총리를 할 때인 1994년부터 정착됐다. 그리고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실질적 임금 상승을 이끌었고, 탄탄한 경제성장도 가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스웨덴의 한 민간은행이 라트비아 등 해외투자에서 큰 적자를 봤을 때 국가가 발빠르게 채무를 인수해 보전해 주었다. 이로 인해 (재정위기 상황이)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적절하고 신속한 정책 대응은 경제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현 정부도 이런 면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국가 신인도의 상승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이룬 사민당의 흑자기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잉바르 칼손(77) 전 스웨덴 총리 |
국가의 적극적인 고용정책으로
기업은 질좋은 노동력 공급받고
개인은 빈부격차 줄일 수 있어… 남유럽 재정위기 근본 해결책은
‘신뢰의 회복, 신뢰의 정치’ 우선 -남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은 뭔가? “신뢰회복이 우선이다. 신뢰만큼 중요한 국제경쟁력이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재정자금을 중장기 투자성 기금으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실업자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공하고, 학교제도의 정비를 통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면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연구에도 과감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안 약간의 여유자금으로 연구투자를 이끌어내면 산업생산성을 가져오기 때문에 단기적, 중기적 위기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스웨덴은 높은 세금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국가의 효율적 운용이라고 본다. 스웨덴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덜 부패하고 능력있는 정부다. 국민들의 정치제도에 대한 믿음도 강하다. 그리고 사회세력 간의 연대의식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세금을 많이 내지만 기업지원 프로그램도 적잖다. 예컨대 (실업자 재교육프로그램 등)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기업이 따로 신규고용 창출을 위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으며, 신규채용을 위해 큰 투자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질 좋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회사들은 기업활동에만 치중하면 되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다. 또한 스웨덴은 장기투자를 많이 한다.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비싼 것 같지만 질 좋은 노동력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차원에서, 또한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란 점에서 오히려 효과적이며 유용하다. 열린 교육은 구조조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를 재교육시킬 수 있고, 실업기금과 함께 운용되기 때문에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 안정에도 기여한다. 낙오되는 사람이 없이 누구나 다시 재기하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게 스웨덴의 가장 큰 강점이다.”
-스웨덴 모델의 본질을 한마디로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게 해 주는 교육정책,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한 고용정책, 정치의 상생노력, 정치인의 희생, 노사의 탄탄한 협조구조와 노조의 책임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이런 것들이다. 스웨덴 모델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경쟁력 있고, 모든 사람이 믿고 세금을 내며, 정부도 단 한푼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국민의 세금을 낭비 않으려는 정치적 노력은 깨어 있는 비판적 시민이 있기에 가능하다. 국민의 높은 정치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복지에 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회적 갈등 치유의 수단으로 복지만큼 좋은 것이 없다. 중장기적으로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해 주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공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최소화된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의 회복이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사회,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복지가 성공할 수 없다. 복지 이전에 신뢰의 정부, 신뢰의 정치가 우선이다. 스웨덴이 복지국가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정당들의 상생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있어 가능했고, 정책개발을 위해 애쓰는 의원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정치의 생산성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복지민주주의는 이 점에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고틀란드/글·사진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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