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2. 10. 20. 15:18Book

 

 

 

홉스봄, 세상에 남긴 최후의 충고

등록 : 2012.10.19 20:25수정 : 2012.10.19 20:25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까치·2만3000원

 

“인류 역사상 가장 별스럽고 지독한 시기”(<미완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급진적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지켜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사진)이 지난 1일 세상을 떠났다. 홉스봄은 소련 몰락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막을 내리면서 용도 폐기된 듯 보였던 마르크스주의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이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해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했고 역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부박한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홉스봄의 마지막 저작으로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차를 두고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해 집필한 글들을 묶어서 출간한 논문 모음집”이다. 논문 모음집이라고 해서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홉스봄은 마지막 열정을 살라 자신의 이전 원고들을 추려서 늘리거나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새로 덧붙임으로써 세상에 남길 최후의 충고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홉스봄은 먼저 오늘날 카를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천착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혼동하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때아닌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지금 세계는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 초기 현상만으로 “영리 추구와 최대의 지속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의 규범”을 읽어낸 마르크스를, 자크 아탈리의 표현을 빌려 “정치적이자 경제적이고 과학적이자 철학적인 전체로서의 세계를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혁명을 외치는 불온한 사상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세밀하게 읽어낸 “보편적인 포괄성”을 지닌 사상인 것이다.

사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의 과거를 정리한 책이다. 홉스봄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치사상과 견해, 그 사상의 영향과 발전, 퇴조 등을 조목조목 살핀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의 이론가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중요성을 간파한 안토니오 그람시를 전면에 내세워, 유럽과 아메리카 일대로 퍼져나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을 추적한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실상 “20세기 사회혁명의 국제적 원리”가 되었다고 홉스봄은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홉스봄의 표현에 따르면 “국제적 정통성의 결합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가 영영 사라져야 하는, 간단한 사상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본질이자 핵심인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초기를 지나 그 폐해가 극에 이른 오늘, 아니 내일에 더 유효하기 때문이다. ‘마크르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과거지향적 부제와 달리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미래지향적 제목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들춰내 오늘과 내일을 비추자는 게 홉스봄의 생각인 것이다. 옮긴이는 이를 두고 “독자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홉스봄은 책 마지막 문장에 “다시 한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고 쓴다.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무제한적이고 갈수록 기술집약적인 경제발전이 전반적인 부를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산, 노동, 자연자원 등 “불가결한 요소들을 희생한 것의 대가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결국 지금의 자본주의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지금도 해결할 수 없다면 먼 미래에는 작은 답조차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하자는 홉스봄의 주장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장동석/출판평론가,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