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

2012. 12. 10. 11:39Book

 

 

사회는 인간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세상

등록 : 2012.12.07 20:03수정 : 2012.12.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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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사회>(전 2권)니클라스 루만 지음, 장춘익 옮김/새물결·8만9000원

<사회의 사회>(전 2권)
니클라스 루만 지음, 장춘익 옮김/새물결·8만9000원

거시 사회이론 평생 고찰한 루만
휴머니즘·지역주의 전통 탈피해
‘새로운 체계’ 1300쪽으로 집대성

현대 사회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98·사진)의 주저인 <사회의 사회>가 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의 번역에 힘입어 드디어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1960년부터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던 루만은 미국의 이론사회학자 탤컷 파슨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회를 체계로서 파악하는 ‘사회체계이론’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30여년 동안 정치학, 매체과학, 법학, 철학, 언어학, 심리학, 환경·생태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70여권의 저서를 쏟아냈다. <사회의 사회>는 루만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97년 출간된 책으로, 1300쪽이라는 엄청난 분량에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집대성해 쏟아넣은 대작이다.

루만은 근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사회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를 인식하는 자신이 그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역설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1장에서 루만은 “기존의 휴머니즘적인 개념 전통과 지역주의적 개념 전통이 사회를 인식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비판한다. ‘사회는 인간으로 구성된다’거나 ‘브라질과 미국이 서로 다른 사회인 것처럼 사회는 지역적·영토적으로 제한된 단위다’와 같은 기존의 관점들은 관찰자를 주체로, 사회를 외부에 있는 객체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관찰자 역시 인식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루만은 “반휴머니즘적이며 반지역주의적인, 그리고 구성주의적인” 사회이론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사회를 체계로서 파악하는 새로운 차원의 이론을 펼친다. 일반적으로 체계는 어떤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작동’에 의해 스스로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살아 있는 유기체가 작동하는 것은 생명 체계, 인간의 의식이 작동하는 것은 심리 체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체계는? 루만은 사회적 체계는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는 체계라고 본다. 사회는 인간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들의 연관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체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체계를 둘러싼 환경과의 차이에 따라 자신을 재생산하는 재귀적인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체계와 환경의 차이인데, 이 차이로부터 ‘자기 생산’과 ‘자기 관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회적 체계에 비춰보면,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작동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이 관찰은 다시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루만의 이런 접근법은 한없이 복잡하게 분화된 근대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자체를 추적하는 것과 함께 사회에 대한 이해와 발언 등 자기 관찰에 따른 ‘자기 기술’들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사회의 사회>란 제목도 이런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98)
루만의 이론이 갖는 독특한 의미는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론과 견줘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 하버마스 역시 ‘체계’ ‘커뮤니케이션’ 등의 개념을 썼는데, 그 맥락은 루만의 것과 전혀 다르게 풀이된다. 하버마스는 경제·정치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체계’와 사적 영역, 문화, 공론장 등이 위치할 수 있는 ‘생활세계’가 대립한다고 봤다. 또 생활세계 속에 있는 개별 인간들이 펴는 의사소통적 행위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일컫고, 이는 체계 안에서의 전략적·성공지향적 행위와 맞선다고 봤다. 때문에 그의 이론은 의견 일치, 사회적 합의와 같은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근대적 주체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비판적 사회학’으로서 그의 학문적 여정과도 맞물린다.

그런데 루만은 아예 인간이나 근대적 주체의 개념을 사회 파악을 위한 기본 범주로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사회라는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선 갖가지 커뮤니케이션들로 작동하는 사회적 체계들을 서로 비교하고 그 차이를 읽어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비판이나 이념, 도덕마저도 사회를 파악하는 관점이 아니라 사회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옮긴이인 장춘익 교수는 “루만은 하버마스나 탈근대론자들이 ‘정확한 사회이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낡은 이론을 재활용하거나 방향성 없이 모든 혼돈을 긍정하려 했다고 봤다”며 “루만의 사회이론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회이론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정교하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학계에서 루만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루만은 계몽적 기획을 추구하는 하버마스의 반대편에 선 ‘완고한 기능주의자’ 정도로 협소하게 받아들여지곤 했는데, 주저인 <사회의 사회> 출간은 이런 선입견을 넘어 “흥미진진한 루만 사회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계기”가 될 거란 기대를 보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새물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