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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프트 리뷰 4
볼프강 슈트렉·마이클 데닝·베노 테슈케 외 지음,
김한성·정대훈·정병선·진태원·하남석·홍기빈 외 옮김
길·2만5000원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격월간 <뉴레프트 리뷰> 기사들을 선별하고 번역해서 연간 한 차례씩 단행본으로 엮어내는 한글판 <뉴레프트 리뷰> 제4집이 나왔다. 예상을 깨고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현대 진보사상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에 관한 논쟁을 특집으로 엮고, 아랍 민주화혁명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의 각 지역 쟁점들, 사상과 예술, 가타리와 들뢰즈·에릭 홉스봄에 대한 인상적인 서평 등을 담았다.
수록된 19편의 글 가운데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파올로 플로레스 다르카이스 <미크로메가> 편집장의 ‘베를루스코니주의 해부’다. 얼마 전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 집권 5년을 ‘이명박주의’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치있게 정리한 다르카이스의 베를루스코니 체제 분석을 읽노라면 그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젠 두 사람 다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베를루스코니가 남긴 유산이 지리멸렬한 지금의 이탈리아 현실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것이라면, 집권당 교체조차 이루지 못한 ‘이명박 이후’ 한국의 지금과 앞날을 살피고 짐작하는 데도 이 글은 유효할 수 있겠다.
다르카이스는 베를루스코니주의가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은 아니라고 말한다. 폭력이 난무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 이탈리아에는 복수의 정당과 신문, 노조가 존재하며, 국회의원은 보통·직접·비밀투표로 선출되고 대학의 독립성도 보장돼 있다. 치안판사는 선발시험을 통해 선출되고 법의 지배만을 받는다. 헌법도 건재해 외견상 이탈리아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 중의 하나다. 하지만 알맹이는 딴판이다. 그가 퇴임하기 전 상황이지만, 이탈리아인들의 90%가 정보 출처로 삼는 텔레비전 방송의 거의 모두를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했고, 오직 10%의 지식층만 본다는 신문과 인쇄매체 역시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법 앞의 평등은 형식뿐, 기득권층은 모든 부패사건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저항한 법관들은 도태되거나 암살당했고, ‘빨갱이’로 몰렸다.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적 불법 사찰 등 정치활동 관여 사실이 들통난 이탈리아 정보국 요원들이 형사책임을 면한 것은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 문화유산 관리직조차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 등을 쫓아내고 친정부 기업 최고경영자 등을 앉힌 문화의 정치화·획일화·상업화도 닮았고, 보수교회와 권력의 유착, 보수단체 동원, 텔레비전 독점을 ‘자유시장의 승리’라고 하고 권력의 전횡을 고발하는 법조인들을 오히려 ‘정치화된 법조인’으로 규정하는 조지 오웰 식의 뒤집힌 조어법까지 닮았다. 이에 제대로 대적하지 못하는 진보세력의 무능과 분열까지도 닮았다.
“강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계급적 정의는 이제 권력의 관행이 아니라 법적 명령이 되어버렸”으며, “세금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원칙이 베를루스코니에겐 공산주의 교설과 동의어가 됐다고 다르카이스는 개탄했다.
그는 범죄집단화한 베를루스코니 체제의 지향점이 러시아 푸틴 체제라며, 파시즘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했다. 그는 그게 옛 파시즘은 아니지만 “파시즘의 기능적이고 포스트모던한 버전”이라고 했다. 이 버전은 그것을 신봉하고 적극 동조하는 사람들에게만 복지 시혜를 베푼다. 최근 인플레정책을 쓰면서 소비 촉진용 노동자 임금 인상을 촉구한 아베 신조의 반동적 일본 자민당 정권도 포스트모던 파시즘 버전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