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본사 고문과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서론이 길지 않았다. 곧 바로 글로벌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사공일=세계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단기·중장기 전망이 궁금하다.
▶에드먼드 펠프스=글로벌 경제 상황이 복잡하다. 10여 년 전보다는 글로벌 경제가 좋아졌다. 그렇게 본다면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다만 더 나빠질 가능성이 걱정된다.
▶사공=한국 속한 아시아 경제는 어떤가.
▶펠프스=아시아 경제는 아주 많은 것을 이뤄냈다. 단기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잘될 것으로 보인다.
▶사공=유럽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
▶펠프스=내가 걱정하는 곳이 바로 유럽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러시아 상황이 유럽 상황을 더욱 나쁘게 하고 있다. (이슬람국가 테러 등) 중동 상황도 유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사공=미국·영국 은 그나마 나아 보인다.
▶펠프스=미 경제가 지금까지 탄탄하게 움직이고 있어 다행이다. 미국은 최근 4~5년 새 경제를 잘 관리했다. 영국도 잘한 나라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뉴욕과 런던이 위기 상황에서 아주 잘 벗어났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사공=어떤 면에서는 전화위복(blessing in disguise)인 것 같다. (미국과 영국이) 위기 순간 기업과 금융 부문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여러 논문과 강연에서 코퍼러티즘(Corporatism·조합주의)을 유럽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유럽의 위기가 코퍼러티즘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코퍼러티즘은 국가가 경영단체, 노동조합 등과 협조체제를 구축해 경쟁을 제한하고 고용과 성장이라는 경제 목표를 추구한다. 경쟁력이 떨어진 좀비기업이 연명하고, 정부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펠프스=조합주의가 위기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국과 영국이 금융위기를 일으켰다. 다만 유럽의 정책적 특징, 조합주의적 정책이 유럽 경제를 금융위기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남유럽 국가는) 위험한 재정정책을 쓰기도 했다. 국민 저축 등으로 조성된 자본을 배분하는 데 부주의했다. 이런 나라들이 금융위기에 의해 큰 충격을 받았다는 점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이다.
▶사공=요즘 그리스 때문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는 부채의 추가 탕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채권자인 트로이카(EU·ECB·IMF)는 반대다.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리스 편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평소 펠프스 교수는 긴축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 진행 중인 그리스-트로이카의 논쟁을 어떻게 보는가. (대담 직후인 지난주 말 양쪽은 기존 구제금융 기한을 2월 말부터 넉 달 동안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23일 그리스가 경제개혁안을 제출하면 24일 트로이카가 심사해 남은 구제금융 72억 유로를 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펠프스=현재 경제 형태로 그리스는 빚을 모두 갚을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재정적자를 늘리는 쪽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세계 금융시장의 어느 누구도 그리스 국채를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등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웃음).
▶사공= 그리스가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펠프스= 그리스 경제는 부패했고 경직돼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창업을 가로막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보다 서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보호가 지나치다. 정실주의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사공=상당수 학자는 채권자도 채무국만큼이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펠프스=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독일은 인도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 그리스에 많은 돈을 빌려줬다. 독일도 책임을 져야 했다. 단 그리스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경제를 경쟁체제로 바꾸는 개혁이다. 개인이 창업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필요하면 직원을 손쉽게 정리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공=이제 중국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중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엔 외국 전문가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우의상(Friendship Award)’을 받기도 했다. 요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당신이 주창한 ‘대중 창업운동(Mass Entrepreneurship)’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요즘 중국 비관론자들은 (부채 거품을 일으킨) 그림자 금융과 중복 과잉 투자 등으로 중국 경제가 곧 경착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펠프스=(분양·임대되지 않아) 텅 빈 빌딩들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몇몇 은행이 (미분양 사태를 겪는) 건설회사 등에 돈을 빌려주기는 했다. 하지만 중국 시중은행은 잘 굴러가고 있다. 중국이 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공=나도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확률은 낮다고 본다. 그림자 금융도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보다 덜 복잡하고 잘 관리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에 대한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펠프스=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혁신과 창업을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혁신을 제대로 추진하기만 한다면 4~5년 안에 많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본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기업들이 창업을 위한 플랫폼으로 역할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수월하게 비즈니스하게 해주고 있다.
▶사공=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유럽의 혁신을 가로막는 조합주의와 비슷하지 않는가.
▶펠프스=최근까지 중국은 카피캣(Copy Cat·모방자)이었다. 시장 상황을 그저 좇아가고 (최신 상품을) 베끼는 데 능했다는 게 서글픈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중국은 창의적인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관심은 중국인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에 둬야 한다. 비교해보면 유럽은 최근까지 거의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 미국도 최근 30~40년 사이 전체 혁신 사례는 줄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혁신을 이뤄낼 것으로 장담할 수가 없다. 이런 미국과 견줘볼 때 중국은 희망적이다. 이제 중국의 차례다. 내가 참여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혁신이 생산성 증가에 기여한 정도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과 같은 수준이다. 해마다 경제성장률 1%포인트 정도가 혁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생산성에 대한 혁신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중국 사람들은 타고난 장사꾼 기질을 가졌다고 본다.
▶사공=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서 당신은 예외적으로 지극히 단순화된 신고전학파적 경제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고전학파의 모델에는 오직 자본과 노동만 있고 기업가 등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고전학파가 도외시하는 문화적 요소를 당신은 강조하고 있다. 사실 나도 문화적 요소가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지만 올바른 시장 인센티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질 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막스 베버는 유교 때문에 중국의 근대화가 어렵다고 말한 반면에 1960년대 한국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경제성장에 성공하자 또 다른 학자들은 유교적 전통이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주제를 바꿔 한국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박성용 전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제자라고 말했는데, 한국 재벌을 어떻게 보는가.
▶펠프스=(껄껄 웃으며) 박성용의 논문을 지도했다. 내가 한국 경제 상황을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삼성 내부의 능력이 아주 놀랍다. (포켓에서 삼성 휴대전화를 꺼내 보이면서) 애플과 견줘 말하면 애플은 모든 일을 제대로 한 듯하다. 하지만 삼성은 잘 못한 것이 있다고 본다. 한국 경제는 성공 스토리다. 야구 용어로 말하자면 한국은 아직도 경기 초반 이닝을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한국의 교육 수준은 아주 좋다. 큰 장점이다.
▶사공=최근 들어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가 세계적으로 사회·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펠프스=미국 경제가 과거보다 덜 혁신적이어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부호들이 과거보다 적게 탄생하고 있다. 또 요즘 부호들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훨씬 커 보인다. 그들은 주나 연방 정부를 움직여 자신의 부를 지키거나 몇 곱절 불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사공=지나친 소득 불평등은 사회·정치적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경제 성장과 역동성 자체를 저해한다는 주장에 유의해야 한다. 피케티의 분석과 정책 제시가 잘못된 부분은 있지만 소득 불평등 문제에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피케티의 기여로 볼 수 있다.
▶펠프스=나는 심각한 소득 격차보다는 임금 격차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또 기업들은 비숙련공 등에 취업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비숙련공들은 정부의 실업 수당을 받아 연명하고 있다. 정부는 비숙련공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일하면서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업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먼드 펠프스
1933년생
애머스트대 경제학 학사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컬럼비아대 정치경제학 석좌교수 겸 자본주의와 사회 센터 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경제 자문
미국 재무부 경제 자문
유럽부흥개발은행 경제 자문
200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고용과 인플레 관계 재조명)
2014년 중국 정부 Friendship Award (우의상) 수상
대담 = 사공일 본사 고문
정리=강남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