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8. 09:30ㆍlecture
블루, 화이트도 아닌 4차 산업혁명 新인재 ‘뉴칼라’
- 노승욱 기자
“오늘날 IBM에 취직하는 데는 대학 학위가 필수는 아니다. 미국 내 우리 센터 중 일부에서는 3분의 1이 4년 미만 학위를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기술이다. 이는 때로는 직업 훈련을 통해 얻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사이버 보안, 데이터 과학, 인공지능(AI), 인지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역할인 ‘뉴칼라(New Collar, 잠깐용어 참조)’ 일자리를 창출, 고용하고 있다.”
2016년 11월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낸 공개 서한 중 일부다. 여기서 그가 처음 언급한 뉴칼라는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올랐다. 뉴칼라란 육체 노동직을 뜻하는 ‘블루칼라(Blue Collar)’나 전문 사무직을 뜻하는 ‘화이트칼라(White Collar)’가 아닌 새로운 직업 계층을 의미한다. IT 보안,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프로그램 개발자나 관련 기술자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삼성, 포스코, 교원, 우아한형제들 등이 뉴칼라 인재 선발과 양성 제도를 전격 도입하는 등 인재 확보전에 발벗고 나섰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인류로 주목받는 뉴칼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학력·전공보다 기술·실무 역량 중요
뉴칼라 인재, 고등학생 때부터 입도선매
지난 2018년 서울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서 열린 ‘뉴칼라 페스티벌’에서 학생·교사 참가자들이 IBM의 인공지능 ‘왓슨’ 기술을 활용해 미니로봇을 제작해보고 있다. <한국IBM 제공>
“전 세계 7세 아이들 중 65%는 지금 없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지난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언한 다보스포럼이 ‘미래 일자리 보고서’를 통해 밝힌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향후 5년 내 사무직 등 일자리 710만개가 줄어들고 대신 데이터 분석 등 컴퓨터 분야 일자리 210만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년이 흐른 지금, 예상은 적중한 듯한 분위기다. 전 사회적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개념의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 채용을 선호하지 않는다. SK, 현대차, LG, KT 등 일부 대기업에서 시작된 대졸 신입 공채 폐지, 경력직 수시 채용 도입 움직임은 이제 전방위로 확산되며 ‘채용의 뉴노멀’로 자리매김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53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조사한 결과, 수시채용을 선택한 기업은 41.4%, 공채를 선택한 기업은 39.6%를 기록했다. 수시채용 비율이 공채 비율을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년 일정한 인력을 일단 뽑아서 교육하기보다, 꼭 필요한 인재만 꼭 필요할 때 뽑겠다는 얘기다.
다보스포럼이 예견한 신규 일자리, 그리고 최근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바로 ‘뉴칼라’다. 업종을 막론하고 오프라인 지점 축소, 온라인 서비스 확대가 일반화되며 IT 기술을 잘 다루는 인공지능·클라우드 컴퓨팅·사이버 보안·UI 디자이너·응용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등이 핵심 인재로 떠올랐다. 금융권에 특별채용된 30대 후반의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A씨는 “과거에는 신입 직원을 뽑아서 교육했지만, 요즘은 가르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이 나와버린다. 기업으로서는 채용 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사 평가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포스코는 직원들의 데이터 분석과 코딩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뉴칼라 레벨 인증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양병호 포스코 인사문화실장은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IT 역량이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정 직원을 전문가로 육성하는 활동 못지않게 전 직원이 각자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대학들이 길러내지 못한다는 것. A전문가는 “ ‘빅데이터 시각화’ 기술의 경우 솔루션 프로그램이 고가인 데다, 관련 프로젝트도 여러 번 수행해봐야 숙달할 수 있어 대학에서는 사실상 배우기 힘들다. 나도 학원을 다니면서 따로 공부하고 이전 직장에서 업무를 통해 겨우 배웠다. 신입 지원자는 넘치지만 쓸모가 적고, 경력자는 몸값이 천정부지여서 일자리 미스매칭이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들은 아예 고등학교와 제휴, 기업에서 필요한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식으로 ‘뉴칼라 인재 입도선매’에 나서는 분위기다.
IBM의 혁신적 교육 모델 ‘P-TECH’가 대표 사례다. P-TECH는 현재 미국, 한국, 호주, 모로코, 대만, 싱가포르 등 28개국에서 241개 운영되며 수만 명의 학생들을 교육 중이다. 정보통신기술, 의료, 제조업, 에너지 분야의 600개 이상 기업들과 209개 대학이 파트너로 참여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서울 세명컴퓨터고에서 국내 첫 P-TECH 학교인 ‘서울뉴칼라스쿨’을 개교, 신입생 52명을 맞았다. 고교 3년, 전문대 2년의 5년제 통합 교육 과정으로 운영된다.
IBM은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전통적인 4년제 학위 체제에 맞추는 것보다, 고등학교부터 시작해 전문대 과정까지 통합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교원그룹은 에듀테크 인재 양성에 직접 나섰다. 미래산업과학고, 명지전문대와 손잡고 5년제 통합 교육 과정으로 운영하는 ‘한국뉴칼라스쿨’을 개교했다. 지난 3월 첫 신입생 원서 접수를 시작해 24명을 선발, 발명경영과 1개 반을 운영 중이다. 고교 졸업 후 무시험 전형으로 명지전문대 소프트웨어콘텐츠과에 진학할 수 있다. 전문학사 취득 후에는 교원그룹 채용 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혜택이 제공된다.
교육 내용은 철저하게 기술과 실무 능력 배양을 중심으로 한다.
서울뉴칼라스쿨의 경우 고등학교 1, 2학년에는 고등 정규 교과 과정과 함께 프로그래밍, 데이터베이스와 빅데이터 분석의 기초 전문 교과 과정을 이수한다. 3학년은 머신러닝, 프로그래밍과 빅데이터 분석 심화 과정 등 100% 전문 교과 과정 수업을 진행한다. 전문대 과정인 4, 5학년에는 실제 기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응용, 인공지능 설계가 포함된 전문 교과 과정과 산업체 현장 실습에 집중한다. IBM은 학교와 함께 전문 교과 과정 커리큘럼을 지원하고, 전문가 특강, 유급 인턴십 제도, 그리고 IBM 직원들의 업무 경험 공유, 전문 영역 코칭, 학생들의 커리어에 대한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
한국뉴칼라스쿨 1~3학년(고교 과정)은 프로그래밍, 컴퓨터 그래픽, 영상 제작, 애니메이션 콘텐츠 제작, 디자인, 게임 콘텐츠 제작 등을, 4~5학년(대학 과정)은 AI 기초, AI 알고리즘, 가상·증강현실 실무, 에듀테크 콘텐츠 개발 등을 배운다. 또 교원그룹 직원들이 멘토로 참여, 학생인 멘티의 진로 상담, 정서 지원, IT 정보 제공, 라포 형성 등의 멘토링을 해준다.
민간 교육 프로그램도 성황이다.
미국 코딩 학교 람다스쿨은 뉴칼라 인재를 꿈꾸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무료로 코딩 교육을 해주고 취업 후 수업료를 돌려받는 ‘소득 공유 모델(income share Agreement)’을 도입해 대박을 터뜨렸다. 일자리 미스매칭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대안 모델로 각광받으며 구글벤처스, 스페이스엑스로부터 수천억원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코드스테이츠가 같은 교육 모델을 도입, 현재까지 약 500여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중 졸업 후 평균 5주 이내에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96%, 취업자 평균 초봉은 연 3300만원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도 뉴칼라 인재 육성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1월 ‘디지털 뉴딜&뉴칼라 인재 육성 과제’를 주제로 한 ‘2020 서울 사회 공헌 혁신포럼’을 개최했다. 학력보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보안 등 정보기술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뉴칼라 인재상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서울시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달라진 만큼, 인력 개발(HRD) 관리, 나아가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혁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현희 한국IBM 인사총괄 전무는 “이제 전통적인 학위나 전공 개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변화와 신기술에 익숙한지가 중요하다. 트렌드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인재가 적재적소에 양성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은 수도권에 모든 교육 시스템이 편중돼 있는데, 지역을 연고로 하는 기업이 지역 사회에 뉴칼라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좋은 사회 공헌 활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뉴칼라(New Collar)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6년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개인의 교육 수준보다 실무에 적용 가능한 기술 수준이 중시된다. 일부 부족한 기술은 직업 훈련 등 새로운 형태의 교육 과정을 통해 익히게 된다. 인공지능·클라우드 컴퓨팅·사이버 보안·UI 디자이너·응용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등이 대표 직업이다.
[노승욱·강승태·나건웅·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87호 (2020.12.09~12.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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