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0. 20:42ㆍinterview
“독감형 팬데믹, 30년에 한 번꼴… 다음은 더 치명적”
조선일보 창간 101주년 특별 인터뷰
입력 2021.03.08 03:00 | 수정 2021.03.08 03:00
美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이 인터뷰를 읽을 한국 부모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수십 년 내로 멸종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아이들의 수명이다.”
제러미 리프킨
76세의 노(老)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말로 삶의 방식(playbook)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야생 공간의 소멸과 기후 변화로 더 많은 전염병 대유행이 올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며 “(수많은 전염병은) 지구가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존의 경제·산업 구조를 시급히 바꿔 신재생에너지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결합된 새로운 시대의 성장 전략인 ‘그린 뉴딜’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으로 기후 변화가 왔고, 거기서 코로나가 잉태됐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20세기 초만 해도 지구의 88%는 과거 수십억년 동안 그랬듯 황무지였다. 불과 100여년 사이 자연이 사라졌다. 지금 지구의 23%만 야생으로 남아있고 나머지는 인간의 개발하에 있다. 또 지난 200여년간 인간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문명을 세우면서 기후변화가 왔다. 지금은 식품조차도 석유화학 제품인 비료와 농약으로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해서 온실효과가 나타나고 물순환주기가 변했다. 지구 전역에서 홍수, 가뭄, 산불, 거대 허리케인, 폭설과 혹한이 발생하는 건 그 때문이다.”
눈에 파묻힌 타임스스퀘어 - 지난달 1일(현지 시각) 60㎝에 달하는 폭설이 내린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인근 도로에서 한 시민이 스키를 타고 목적지로 가고 있다. 본지와 인터뷰한 미래학자들은 지구의 기후변화 진행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면 더 많은 전염병이 인류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는 “생태계가 (인간이 초래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붕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도시 가까이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들도 거기 붙어 이동했고, 바이러스들도 개발로 갈 곳을 잃은 ‘기후 난민'이 되어 인간 근처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반복되는 전염병 대유행을 통해) 지구가 스스로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여년 혹은 이전부터 인간은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자연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여기서 배워야 한다”며 “이것은 하나의 경종”이라고 했다. 그는 “마침내 지금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지구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재,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회복력 있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창조할 새 길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길을 “그린 뉴딜”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 유럽과 중국에서는 통신 인터넷이 디지털 전력망과 연결·통합되고 있다. 앞으로 태양광과 풍력으로 일반 주택, 상점, 농가, 대기업 가릴 것 없이 수천만명이 각자 위치에서 발전을 하고, 뉴스를 공유하는 것처럼 녹색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또 연료전지나 태양광 자동차 등으로 구성된 이동·운송 인터넷과 결합되고 빅데이터로 관리될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사물인터넷과 결합되면 자연환경 어디에나 센서를 두게 될 것이고, 2030년쯤이면 우리는 GPS 위성으로 연결된 센서들을 세계 전역에 두고 지구 전체를 실시간 파악하는 인류를 위한 뇌(brain)와 신경망을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가 되면 “모든 건축물이 하나의 교점(node)이 되고 모두의 집과 사무실이 연결돼 각각 데이터 센터가 되면서, 모든 사람이 전기 충전소를 갖고 남는 에너지를 다시 전체 구조로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제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그럴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전력의 약 68%를 (석탄·가스를 이용한) 화석연료로 생산하고, 그 연료의 98%를 수입하는 세계 7위의 탄소배출국”이라며 “동시에 한국에는 SK나 삼성처럼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회사들이 있어 회복력 있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무것도 없는 농업국가에서 10대 경제대국이 됐다”면서 “한국이 생사(life and death)가 걸린 이 문제를 왜 해결하지 못하겠느냐. 한국은 그럴 만한 자산이 있다”고 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의 제러미 리프킨(76)은 세계적 미래학자다. ‘엔트로피’(1980), ‘노동의 종말’(1995), ‘소유의 종말’(2000), ‘3차 산업혁명’(2011), ‘글로벌 그린 뉴딜(2020)’ 등의 저서를 통해 인류사의 변화를 분석·예고해 왔다. 20년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고문을 지내며 신성장 장기 계획의 청사진을 그렸고, 리커창 중국 총리도 그의 영향을 받아 저탄소 녹색 성장을 강조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英 미래학자 마크 스티븐슨
“독감 형태의 팬데믹이 지구상에서 최근 300년 사이 아홉 차례 발생했다는 걸 아세요? 생각보다 자주 발생했습니다. 다음 팬데믹은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10년 전부터 인류가 새로운 전염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해온 미래학자가 있다. 강연자·저술가로 주가를 올리는 영국의 마크 스티븐슨(50·사진)이다. 그는 2011년 첫 저서 ‘낙관주의자의 미래 여행’을 펴낼 무렵부터 전염병 대비를 강조해왔다. 미래의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해선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인간의 행동 패턴을 바꾸고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두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아 인터뷰했다.
그는 “독감 형태의 팬데믹은 절망스럽게도 이미 흔한 현상”이라며 “1729년 러시아에서 시작해 유럽을 강타한 독감을 시작으로 1968년 홍콩 독감까지 300년간 9번 찾아왔다”고 했다. 통계적으로 보면 코로나 사태는 (홍콩 독감 이후) 인류에게 늦게 찾아온 측면마저 있다고 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팬데믹은 또 온다”고 했다. 지구가 더워지면 적도 지방에 갇혀 있던 질병이 훨씬 넓은 지역으로 확산돼 바이러스의 운동장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후변화가 인수(人獸) 공통 감염 바이러스를 가진 동물의 생태계를 깨뜨립니다. 이런 숙주 동물의 서식지 이동으로 예상치 못한 질병에 인류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어요. 특히 박쥐의 이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스티븐슨은 “기후와 전염병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이 역사에 나타났지만 인간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했다. 로마 시대 귀족들이 말라리아를 피하기 위해 여름에 언덕에 오르곤 했고, 1878년 미국 남부에서 엘니뇨(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현상) 영향으로 치명적인 황열병이 창궐했던 것을 전례로 들었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구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이라는 상호 의존성을 인식하고 인간이 더 겸손한 자세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마크 스티븐슨은 유능한 강연자로 정평이 나 있다. 팟캐스트로 대중과 소통하기를 즐긴다./위키피디아
스티븐슨은 “기후변화를 막기는 늦었지만 진행 속도는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생태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단기적인 사리사욕에서 지속 가능한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경제적 사고를 바꿔야 하며, 그것은 제도적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2009년부터 10년간 생활용품기업 유니레버를 이끈 최고경영자 폴 폴먼이 단기 실적에 연연해하지 않기 위해 분기 보고서 발간을 폐지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최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성공에 대한 과거의 평가 기준에서 탈피하려는 CEO들이 영국에서 늘어나고 있다”며, 비유적으로 “지금은 계기판을 보고 운전하고 있지만 이제는 앞 유리창 너머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스티븐슨은 정부 차원에서는 세제(稅制)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환경 친화적인 기업에 법인세를 감면해 기업가 정신과 기술 혁신이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富)의 재분배가 어느 정도 이뤄져서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 팬데믹을 대비하는 사회 시스템 정비가 가능하고, 팬데믹이 다시 와도 빨리 힘을 합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부자들이 탈세하는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주요국에서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은 다음 팬데믹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 체계의 수술도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제약사들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만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제약사들이 더 이상 결핵 치료에는 관심이 없어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의약 업계가 재빨리 움직인 이유는 부자들도 걸리는 질병이기 때문이죠.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에 무관심하면 팬데믹 예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스티븐슨은 오래전부터 질병 치료를 둘러싼 광범위한 정보 공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이런 작업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오픈 소스 드러그 디스커버리(Open Source Drug Discovery·2008년 인도에서 시작한 희소병 치료법 연구 모임으로 130여 국가 7000여 연구자가 참여)’나 ‘페이션츠 라이크 미(Patients Like Me·세계 80만명 이상이 투병 경험을 공유하며 치료법을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비슷한 플랫폼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세계 80만명 이상이 투병 경험을 공유하며 치료법을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페이션츠 라이크 미(Patients Like Me)'의 로고. 마크 스티븐슨은 이와 비슷한 의료 정보 공유 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페이션츠 라이크 미
국제 관계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스티븐슨은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수많은 미국인이 숨지면서 미국의 리더십과 권위가 손상됐다”며 “미국이든 어떤 선진국이든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경제와 지배 체제를 새로 구축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기후 난민(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이주한 사람)이 증가해 국가 간 불안 요소로 대두될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크 스티븐슨은]
마크 스티븐슨(50)은 영국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미래학자 중 한 명이다. 영국 국방부 기후변화 자문관을 맡고 있고 기업, NGO, 정부 기관에 두루 조언하거나 강연하고 있다. 기술과 인문학적 통찰을 접목시켜 인류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권의 저서 ‘낙관주의자의 미래 여행’(2011년)과 ‘우리는 다르게 일한다’(2017년)는 모두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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