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6% 인상 등 비판대상 “성장도, 분배도 망쳤다” 동네북 통계 보면 1분위 소득 증가 뚜렷 계층 상승 확률도 5%p 상승 효과
‘소득주도성장이 성장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소득분배도 망쳤다’는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일 것 같다. 이 정책은 ‘소주성’이라고 불리면서 동네북처럼 비판받는 정책이 됐다. 언론에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분배 격차마저 더 벌려 놓았으며 계층 이동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물론 진보적인 전문가와 언론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 많다. 특히 집권 첫해인 2017년 결정해 2018년부터 집행된 최저임금 16% 인상이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됐다.
소주성이 ‘발목 잡았다’는 비판
이 정책 탓에 자영업자가 더 어려워졌다거나,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가장 뼈아픈 대목은 소득분배 정책의 핵심 목표인 분배마저 악화했다는 지적일 것이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이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심각했다. 사실이라면 그 정책은 실패임이 분명하다.그런데 정말로 소득분배가 악화되었을까? 우선 문제는 실증 데이터가 있느냐다. 현재 가장 신뢰할 만한 가구 소득 및 자산 조사는 가계금융복지조사다. 이 조사는 전국 2만여가구를 대상으로 해마다 하는데, 설문 응답자의 답변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세청 자료 등으로 소득 수치 등 일부 데이터를 보완한다. 소득 자료 중에서는 국세청 자료가 가장 정확하나 별도로 공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가장 정확한 소득 데이터를 제공한다.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지니계수다.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크다는 뜻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와 지니계수로 살펴보면, 소득불평등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그대로, 가구균등화(가구원 수를 고려해 표준화)한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를 사용하면 그렇다. 소득불평등도는 박근혜 정부 초기 낮아지다가, 후기에 약간 높아지거나 정체되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본격적인 하강 추세로 접어들었다. 기초연금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정책의 결과로 소득불평등도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초연금 등 복지제도가 강화됐고, 최저임금도 문재인 정부 때와 비슷하게 연평균 7%가량 상승했다. 그럼에도 비판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지니계수는 개선됐지만 소득 최하 계층은 근로소득이 줄었다’는 내용이다. 그다음부터는 추론과 상상이 이어진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었고, 따라서 저소득층은 복지에만 의존해 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언론이 이런 이야기를 반복했다. 정치인들도 종종 같은 논리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단 하나의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었다.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 하위 20%(1분위)에 속한 가구의 근로소득 데이터다. 이 계층의 근로소득이 감소했다는 자료를 출발점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분배에도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근로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에 해당 가구가 의존적으로 변화했다는 풀이도 이어졌다. 그리고 저소득층이 계층 상승의 희망을 접게 되었다는 절망적 진단으로 귀결된다.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소득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은 매년 바뀐다. 순위를 해당 연도의 소득을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저소득층이 특정한 정책의 영향을 받아 소득이 높아져 이듬해에는 1분위를 벗어나 계층 상승을 이룬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2017년에는 다른 사람들, 즉 2분위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1분위로 새로 편입된다. 따라서 소득분배 정책이 저소득층에 끼친 영향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2016년의 1분위 가구 소득 평균과 2017년의 1분위 가구 소득 평균을 비교하면 곤란하다. 서로 다른 가구끼리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1분위 가구를 모두 추려낸 뒤, 이들의 소득이 그 뒤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이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을 더 낮추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2016년에 소득 1분위에 속한 가구의 소득이 그 뒤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봐야 한다. 다행히 통계청에서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1년여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고 있어 이런 분석을 해볼 수 있다. 살펴본 결과는 통념을 뒤집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에 소득 하위 20%(1분위)였던 가구의 소득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가구의 전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상소득이나 복지수당 등의 공적부조만이 아니었다. 근로소득마저도 5년 동안 급격하게 올랐다. 이들 가구의 평균 경상소득은 연간 1000만원이었던 것이 두 배까지 늘어났다. 오히려 1분위 가구는 최저임금 인상 덕에 근로소득이 늘었고, 각종 복지급여와 국민연금 수령액이 커지면서 공적부조와 연금소득도 늘어났으며, 이들과 다른 소득을 합산한 경상소득이 급격하게 커진 것이다.
저소득층 계층 상승 확률도 ↑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 중에는 계층 이동성에 대한 비판도 컸다. 경제전문가들은 소득계층 사이에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사회를 더 공정한 사회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하위 계층의 근로소득을 줄이고 복지에 의존하게 만드는 바람에 계층 이동성은 낮아졌을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그러나 소득 하위 20% 가구의 계층 상승 확률은 5년 전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2012~2015년 사이 하위 20% 가구가 이듬해 계층 상승을 할 확률은 17%대였다. 그러나 2017~2020년 해당 계층의 상승 확률은 22%에 이르렀다. 물론 상승한 만큼 하락한 가구도 있을 것이고, 이들의 상태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대통령 선거’라는 전시를 지나 우리는 평시로 돌아왔다. 정치의 계절에는 정책의 언어조차도 한마디 한마디가 무기였다.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와 쟁기를 들어 언어를 벼릴 때다. 이긴 편이든 진 편이든, 진실을 기반으로 다시 한 걸음씩 디뎌야 한다. 이미 데이터 안에 답은 나와 있다.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에게는 날개였다.
소득주도성장 실패…잠재성장률 하락·고용 참사
김진희 기자purple@segye.com
입력 2022-03-14 14:03:09수정 2022-03-15 08:43:56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김진희 기자]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 한국 경제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되면서, 산업계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증가는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의 연쇄 타격으로 이어졌고, 경제 성장은 더디며 안정의 부재가 지속되는 등 불안을 키웠다.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차기 정부에서 소득 주도 성장(이하 소주성)은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소주성은 주류 경제 이론을 뒤엎은 내용으로 정권 초기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정책이다. 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임금 인상 등 ‘낙수효과’와는 반대로, 소주성은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면 성장이 따라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주성의 핵심 구조는 ▲최저임금 인상 ▲소득 증대▲경제 활성화 ▲일자리 확대 등으로 구성된다. 이에 맞춰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을 올해 9160원까지 올렸다. 인상률은 무려 41.6%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문제로 지적된 것은 들쑥날쑥한 인상률이다. 현 정부 임기 내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만 보면 7.2%로, 박근혜 정부 4년간 7.4%와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고·최저 인상률 폭이 크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에 달했으며, 이듬해는 10.9%로 다시 한 번 대폭 뛰었다. 그러나 2018년 국내 고용 지표가 악화되자 정부는 한발 물러서 2019년 2.9%(2020년 적용)를 올리는 데 그쳤고, 2020년 의결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1.5%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급격하면서도 불안정한 최저임금 인상 피해는 저임금 금로자, 영세 중소기업에 전가됐다. 비정규직 형태의 단시간 근로자가 크게 늘면서 고용의 질이 낮아진 것이다. 실제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총 806만6000명으로 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57만8000명 대비 150만명 이상 늘었다. 비정규직 비중 역시 지난해 38%로 통계 집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과 국가채무도 사정은 좋지 않다. 문 정부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2.2%로 과거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2.9%보다 저조하다. 국가채무도 연평균 10%나 늘어난 상태다. 지속적인 나랏돈 풀기 정책으로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지난해 12월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제성장률을 3.1%로 전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글로벌 위기가 더해짐에 따라 사실상 2%대 성장이 유력시되고 있다. 국가채무에 대해서도 재정수지 적자 만성화 우려가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중장기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팽창한 재정 지출과 수지 불균형 만성화에 따른 재정적자를 방치하면 다음 5년 동안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약 20%p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지난해 1·2차 추가경정예산 때처럼 6%대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치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4%로 줄었다. 김 교수는 “국가채무비율이 이처럼 높아지면 그동안 비축한 재정 여력이 급속히 소진돼 건전 재정의 기반이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purp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