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9. 17:40ㆍ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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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행정부의 고립·봉쇄에 북한은 핵실험 응수
94년 제네바합의 ‘일괄타결’ 방식 여전히 유효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북한 쪽 ‘특사 조의방문단’이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북쪽 조문단은 조문 목적 이외에도 특사 자격으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려고 왔다. 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상호 최고 당국자 간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또 듣고 감으로써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간접 정상회담이 성립됐다고 보고 싶다. 특사 교환은 대부분 간접 정상회담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래서 최고 당국자의 입장을 서로 정확히 교환하고 따라서 이해를 증진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 적정한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북쪽으로선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국면전환을 시도해보겠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의 해빙 계기로 만들어보겠다는 입장을 갖고 왔고, 그런 의미에서도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도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며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원한다면 우리쪽 특사도 평양에 보내서 최고 당국자 간에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럴 때 특사를 북쪽에 보내 우리쪽 의사도 정확히 전달하고, 저쪽의 의사도 확인해서 이 대통령이 원하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북쪽의 특사 조문단 파견과 청와대 방문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 그런 평가와 정부가 보이고 있는 태도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은데 특사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점차 얼음이 더 녹아야 할 것이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 포용정책의 핵심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해결의 병행론인데, 이 정부는 선핵폐기 또는 연계론을 고수하고 있는데 남북이 접점을 찾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
“비핵화냐, 남북관계 개선이냐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상호 연관성과 상호 의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며 미국을 도와 핵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며 핵을 포기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북핵은 미국의 핵 위협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만, 한-미의 연합 재래식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즉 핵과 재래식 전력의 위협, 이 두가지가 북핵개발의 원인이 됐기 때문에 안보환경을 조성하면서 풀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병행 전략을 취해야 한다. 전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선 핵폐기 후 관계정상화’를 주장하면서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네오콘은 북한이 핵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등 근본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대담한 접근을 취하겠다고 하는데, 초대강국의 상당히 오만한 입장에서 나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네오콘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비핵·개방·3000 구상을 대북 정책의 기초로 삼았다. 물론 전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꾀한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을 변경하기가 어렵고 또 변경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180도 ‘뒤로 돌아가’ 했지만 이 대통령은 그게 힘들 것 같다. 이명박 정부도 과거 10년 동안 병행전략을 취한 과거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연계전략을 써왔지만 점차 완화하는 단계에 있지 않은가. 또 그렇게 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관계정상화와 남북경협을 할 수 있다는 초기 입장에 비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비핵화에 대한 ‘결심’을 보여준다면 평화구상을 추진할 수 있다며 조건을 완화했다. 이런 조건이 앞으로 좀더 완화돼 남북관계 개선과 핵문제 해결을 병행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 북쪽이 특사를 수용할 것으로 보는가?
“조문단이 방문했을 때 김대중평화센터에서 주최한 만찬·조찬 등에서 여러가지 자유롭게 대화가 이뤄졌다. 민간 차원에서 한 것인데, 이 가운데 남북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리쪽 발언에 대해 조문단은 ‘시기가 무르익으면 할 수 있지 않겠냐, 해야 되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북도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 북쪽의 움직임을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전술적 유화공세라며 부정적으로 대하는 시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8월의 공세’라고 하고 북은 ‘최고영도자의 결단’이라고 하는데,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에 큰 기대를 걸고 이른 시일 안에 대타협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4월의 인공위성 발사, 거기에 따른 미국의 강경 대응이 맞물리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 냉각기와 조정기를 거쳐 북-미 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공위성 발사를 미사일로 단정하고 제재를 추진한 것이 실책이라면 북한이 6자회담을 탈퇴하고 2차 핵실험까지 간 것은 잘못된 과잉반응이었다. 북이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은 4월 이전으로 돌아가 오바마 정부와의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에 특사 조문단이 ‘지금 조선(북한)은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크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남북경제협력을 촉진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본다. 또 북의 ‘평화 공세’는 이 대통령이 모든 남북합의를 이행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여러번 했고, 선핵폐기 주장도 완화한 데 대해 유의하며 남쪽의 정책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게 아닌가라고 본다.”
- 그럼에도 미국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고 하고 북은 핵무장력 강화와 대화로 맞섬으로써 일종의 교착상태에 있는 것 아닌가?
“미국은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재처리 등을 중단하라는 것이고, 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철회하고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서로 후퇴·철회해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 압박과 제재를 풀고 대화하겠다면 북한도 핵활동을 중지하고 6자회담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 선 핵폐기 주장 완화 ‘긍정적 변화’
북쪽 ‘관계개선’ 의지… 특사 수용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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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가 어떤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지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대화를 앞둔 조정단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 북한이 6자회담은 파탄이 났다며 북-미 양자회담을 요규하고 있고 한-미는 6자회담을 강조하고 있는데?
“북한은 아마도 북-미 대화를 개시해 6자회담으로 나아가려는 접근 방법을 쓰고, 미국은 6자회담에 먼저 나와서 북-미 직접 협상을 하는 틀을 유지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조정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6자회담이나 북-미 회담의 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본질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핵없는 세상을 핵심 과제로 내걸었고, 그런 목표를 위해 미-러 전략핵무기 감축 협상이 진행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3월 워싱턴에서 세계 핵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내년 5월엔 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회의가 있는데 미국은 이 두가지 행사 이전에 북핵 문제와 관련된 북-미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급박한 사정이 있다. 그래서 미국도 이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이 동조를 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아직 새정부가 구성이 안 된 상태이고 그 이전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좀더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제 북-미 협상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정상화’가 아니라,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북핵 문제는 지난 20년 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압박과 제제, 고립과 봉쇄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외교적 협상과 타결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지난 1994년의 제네바 합의도 핵포기와 관계정상화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이는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도 다시 확인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결국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냐.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다. 압박과 봉쇄가 역효과를 낳고 실패한 것이다. 북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단계이다. 핵실험을 두번 했지만, 필요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인도·파키스탄 등은 6~8번 핵실험했다. 북이 핵실험을 두번밖에 못했다는 것은 효율적인 핵폭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실험을 여러번 더 해야 할 것이다. 또 미사일에 탑재하려면 소형화와 경량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핵무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핵물질 생산단계에서 중지시켰어야 했는데, 핵실험까지 왔다. 앞으로는 더 이상 핵실험을 못하게 하고, 핵무기를 못만들게 빨리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압박과 제재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의 핵무장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결국 북의 협상 능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핵실험까지 했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다. 이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서둘러야 한다.
또 과거의 방식은 비핵화를 하면 관계개선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러기엔 사태가 너무 급박하고 북한의 핵무장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 즉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 다시 말해 평화협정도 체결하고 외교관계도 수립하고 경제협력도 제공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핵 폐기를 실현하는 일괄타결 방식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내 주장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운동 당시, 그리고 집권 초기에 오바마 정권 인수팀에서 나왔던 얘기들이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분단 60년이 다 됐는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갈 것인가.”
-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농축우라늄 시험을 언급하고 있는데?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는데, 앞서 6월13일 외무성 성명은 경수로 건설이 결정된 데 따라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 기술개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저농축 우라늄 단계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걸 제대로 알기 때문에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2002년에 부시 행정부가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할 때 미국의 정보평가가 미 의회에서 보고됐다. 그 내용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건설 중에 있으며, 2004년 말부터는 연간 2~4개의 고농축 핵무기를 양산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이게 얼마나 과장되고 왜곡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우라늄 농축은 이렇게 구분해서 봐야 한다.”
- 한-미-일이 계속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면 북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는가?.
“압박과 제재를 계속한다면 북한은 제3차 핵실험 할 것이다. 북한은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압박과 제재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압박과 제재는 안 되며, 핵연계전략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병행전략으로 가야 하며 비핵화를 통한 관계정상화에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로 전환할 때가 됐으며 포괄적으로 일괄타결해야 한다. 그래도 완전한 핵무기의 폐기까지는 5~10년 걸릴 것이다.”
- 공동대표를 맡게 된 한반도평화포럼이 나아갈 방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단됐는데 이것을 재개해 냉전을 끝내고 분단고착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지상과제이다. 그러나 최근 평화의 담론이 식어가고, 평화 문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포럼을 발족한 것이다.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토론과 공동 연구로 정책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정리 이용인 기자 kankan1@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사등록 : 2009-09-08 오후 08: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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