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교수] ‘비핵공동체’ 전제돼야 ‘동아시아 공동체’ 가능

2009. 9. 18. 15:47interview

‘비핵공동체’ 전제돼야 ‘동아시아 공동체’ 가능
인터뷰/ 권태선 논설위원
사카모토 교수에 듣는 ‘하토야마’ 동아시아 외교
한겨레 김영희 기자 김종수 기자
»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오른쪽)가 17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하토야마 정권 출범을 계기로 일본의 외교정책과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등에 대해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건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 출범을 계기로 미-일 관계는 물론 동아시아의 외교지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서남재단의 ‘동아시아의 재발견’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일본의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로부터 이에 대한 전망과 새로운 동아시아공동체를 위한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내년 한-일 강제합병 100주년을 맞아 사카모토 교수는 “하토야마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담화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핵개발은 실제적 안보위기의식 때문
북핵·역사책임 등 고려해야 ‘납치문제’ 풀려
하토야마 ‘식민지배’ 관련 담화 가능할 것”

 

-일본 새 정권 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선 트라이앵글을 떠올려야 한다. 한 꼭짓점이 미국, 하나가 일본 국민이라면 마지막 하나는 일본의 정치인·관료·재계가 일체화된 이른바 정·관·재 공동체였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관료제에 손을 안 댔다. 이런 동맹관계의 결과, 대기업은 계속 돈을 벌고 정치가와 관료는 이를 매개로 유대를 형성해 일본을 움직여 왔다. 미국과 일본의 수출갈등에도 이 문제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동차를 수입하는 대신 쌀을 수출하려 하지만, 농촌에 기반한 자민당 정치인들은 그걸 바라지 않는다. 미-일의 무역갈등도 결국은 정·관·재 일체 시스템과 농촌의 갈등인 셈이다. 문제는 경제성장기엔 가능했던 이 시스템이 버블 붕괴기를 거치며 작동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고이즈미의 ‘자민당을 깨부수자’는 말에 국민이 환호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문제점을 알긴 했지만 풀지 못했다. 그는 민영화와 탈규제 등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격차만 더 벌려놨다. 절망한 국민들, 한계에 몰린 국민들은 민주당을 믿었다기보다 자민당으론 안 된다는 점을 믿은 거다.”


-선생께선 북한을 배제한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셨다. 그러나 하토야마가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에선 그런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대북정책의 변화 전망은?

“하토야마도 중요하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와도 관계 있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제재를 강화해 왔다. 결국 북한이 대화할 자세를 보였고 이때 오바마가 대화를 시작해 보자고 했다. 미국은 카드가 많아졌다. 물론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굉장히 복잡한 협상이 시작된 거다. 일본에선 아직도 납치 문제를 중시한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나라의 지도자가 납치 문제에 사과한 의미를 보지 않고 “납치 문제를 풀기 위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 건 잘못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선 납치 문제뿐 아니라 핵문제, 역사책임과 배상 문제, 국교정상화 문제도 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점을 하토야마 총리나 오카다 외상이 분명히 밝히길 기대한다. 그 속에서 납치 문제도 풀릴 수 있다. 하토야마는 그걸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이루려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선결조건이다. 선생께선 그것이 비핵공동체이자 부전(不戰)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데.

“북한의 핵개발은 단순히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카드가 아니라 실제적인 안보위기의식에서 나온다. 이 ‘두려움’을 없애는 것, 그것이 선결돼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수백년간 전쟁을 벌여 왔지만 유럽공동체를 만든 지금 그 어떤 독일인도 프랑스나 영국의 핵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더욱 미국과 일본의 변화도 필요하다. 그게 하토야마 정권에 의해 가능할까?

“문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이 뭐냐는 거다. 하토야마가 풀기 쉽지 않다. 오키나와의 일부 부대를 괌으로 옮기는데 그 가족 이전비용까지 일본이 다 대야 한다. 이 불평등은 바뀌어야 하는 문제지만 미국 군부가 강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협상과 토론을 통한 외교로 풀어간다면 상호불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내년은 한-일 강제합병 100주년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일왕의 방한을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일왕이 방한하고 새 한-일 관계를 이루려면 역사 문제가 풀려야 한다고 본다.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토야마가 식민지 지배나 동아시아와 관련해 어떤 담화를 내놓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무라야마 담화의 한계로 식민지배 무효화나 천황의 책임이 없었다는 점들이 지적된다. 좀 개인적인 얘기지만 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평가한다. 그는 가족들과 일본에서 가장 특별한 나흘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오키나와 전쟁이 끝난 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날, 그리고 8월15일이다. 이런 그의 태도도 적잖이 한-일 관계나 아시아 관계에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토야마 담화의 전제조건은 뭐가 돼야 할까?

“법적인 배상 등의 문제가 다시 나오지 않는 게 전제가 된다면 강제합병 무효화의 내용이 담길 수 있다. 또 하나는 독도 문제다. 개인적 견해지만 독도는 섬이 아니라 바위이고 한국은 이미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나. 만일 내가 한국인이라면 시마네현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않을 거다. 마지막으로 군대위안부 문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뭔가 우리가 더 해야 한다. ”

 

정리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 사카모토 교수는 누구

 

일 ‘평화주의 대부

대북지원 ‘휴머니티’ 접근 호소

 

사카모토 요시카즈(82)는 저명한 일본의 평화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이다. 1959년 일본에 유엔경찰군 주둔을 주장한 <중립 일본의 방위구상>이란 논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일본 ‘평화주의의 대부’이면서도 도덕적인 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에 기초한 학자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사카모토는 1980년대부터 휴머니티에 기반해 국제평화에 일본이 기여할 것을 주장하며, 이를 위해 미-일 안보조약은 물론 평화헌법 9조까지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펴 관심을 모았다.

 

휴머니티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서 보수파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본이 납치 문제로 들끓을 때도 그는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북한에 식량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외무성에 건의한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를 비판하며 “자신의 자식이 걱정된다면 식량이 부족한 북한 어린이들의 어려움을 가슴아파해 원조를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국가주의의 폐해와 과거사 청산, 시민사회 성장 문제 등에 대한 왕성한 관심은 여전하다. 그가 70~80년대부터 제기해온 오키나와 문제와 미-일 안보조약 개정 문제 및‘동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은 오랜 기간 일본에서 ‘이상주의’로 비쳤지만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실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김영희 기자

기사등록 : 2009-09-17 오후 07:17:18 기사수정 : 2009-09-17 오후 10: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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