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2-2) 라이프찌히의 거리를 감상하며

2009. 9. 28. 17:05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12-2) 라이프찌히의 거리를 감상하며

 

라이프찌히의 예술을 감상하며

 

그라시 박물관(Grassi Museum)을 찾아갔다. 길을 물어봐도 잘 모르는 현지인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정말 많이 헤맸다. 걸어서 라이프찌히를 구경하자는 욕심에 몸만 무지막지하게 고생한게다. 그래 저래 터벅터벅 걸음으로 걸어 그라시박물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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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본 전경이 아름답다. 고전적이고 대칭적이고 뭔가 아늑한 느낌이 드는 외관을 지니고 있다. 1929년 완공되었다가 보수공사를 거쳐 2004년 다시 재개관되었다고 한다. 공예박물관, 민속박물관, 악기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저 외관과 데스크만 둘러보고 나왔다. 현재 전시하는 것이 볼 것이 별로 없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도 예쁜 건물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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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면에 보이는 조형물이 기괴하기도 하고 뭔가 색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 2명과 여자 2명의 전신상의 배치가 재미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방향도 흥미롭다. 남자들은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고 여자들은 각각 다른 남자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각가의 어떤 의도가 내포된 것일까? 작품마다 예술적 상상력과 가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런 내용이 본업이 아닌 관계로 내 스스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꼭 전문가의 눈과 입으로 전해진 내용만을 추종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마츄어의 눈으로 다양하게 생각하고 유추하는 재미도 쏠쏠하리란 생각이 든다.

 

동독시절의 아파트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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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박물관을 지나 나오는 길옆으로 큰 아파트가 보인다. 동독시절 아파트라고 한다. 서울 아파트처럼 똑 같은 모양의 집들이 그 안에 위치해있다. 뭔가 촌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공동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외관의 모습은 동일하다. 그런 면에서 ‘평등(?)’이라는 가치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안의 모습은 어떨까? 베를린의 동독박물관에서 본 것처럼 겉모습은 또 같지만 그 내부의 속살은 다양한 개인의 취향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규격화하고 표준화하려고 해도 그 강제를 전유하는 인민들의 삶은 일상에서 전개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정원을 가꾸는 방식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독특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규격화와 표준화의 갑갑한 일상을 바꿔보려고 각종 아이디어가 창궐(?)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적 요구인 진보에 대한 추구일 것이다.

 

사회주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지배의 전략을 전유했던 인민들의 삶이 바로 진보의 가치일 것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무한한 변용과 굴절을 만들어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과 시간과 사고의 영역을 만들고 싶어 했던 인민들의 삶의 창조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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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건물 맞은편에는 전쟁 습격을 받은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 서 있다. 창문 곳곳은 깨져나가서 널빤지를 대 놓았거나 비닐로 임시방편을 한 모습이 처량하다. 이런 모습은 물자부족의 사회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통일이 된 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을 보면 아직까지 통일의 혜택을 보지 못한 지역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이 건물도 조만간 공사를 해서 새로운 건물로 탈바꿈할 것이다. 번듯하게 리모델링 하고 페인트로 멋지게 도배되어서 말이다.

 

5년 전쯤으로 생각되는데, 북한 강원도 고성의 한 마을이 기억난다. 길가의 집들에서 유리창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온통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방치된 모습. 조금 여유가 있는 집들은 비닐로 막아져 있었던 모습. 길거리에 처량하게 앉아서 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4~5살로 보이는 어린이의 모습. 구부정한 허리로 잔뜩 땔감나무를 짊어지고 걸어가시던 할머니의 모습. 철도길 너머 잘 보이지 않는 곳의 쓰러져가는 집들. 기차도 다니지 않고 도로도 다니지 않는 곳에 삽과 각종 기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북한주민들의 모습. 온통 벌거숭이가 되어 있던 산들.

 

아무리 잘못된 체제로 인해 만들어진 모습이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아니 같은 인간으로서 그런 삶의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도 개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부끄럽기만 하다. 언제까지 이런 적대와 증오가 가득한 상태로 남겨져야 하는가. ‘기다리기 전략’도 좋고 협상의 버릇을 고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동안 고통 받고 사라져갈 북한주민들의 일상을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잡히지 않는 택시, 헤매는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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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Museum der bildenden Künste Leipzig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택시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빈 택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헤매기를 한 20분, 도대체 안 되겠는지 이희영 교수께서 꽃집 아가씨(?)에게 물어보신다. 아뿔싸, 이곳은 택시 잡기가 힘드니까 택시를 불러야 한단다. 자상한 아가씨가 전화로 택시를 불러주었다. 역시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최고다. 가장 빠르다. 얼마 후 택시가 왔다. 이제 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피곤이 가시는 듯하다. 그런데 택시기사도 우리가 가고 싶은 박물관을 잘 몰랐는지 또 헤매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가 봐도 보이지 않고 저속으로 가 봐도 보이지 않는다. 걸어서 헤매고 택시로 헤매고.

 

예술작품 감상의 길이 싶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헤매다가 30여분 만에 우리가 갈 곳을 발견했다. 그 넓지도 않은 라이프찌히 시내에서 30분을 헤매다니.... 하여간 얼마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가지 아닌 바가지를 썼다.

 

Museum der bildenden Künste Leip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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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니 이 박물관의 외관을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았다. 단 한 장 공사 중인 모습만 찍었다. 왜 그랬을까? 상당히 현대적인 건축모형을 하고 있는 박물관이며 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우리는 이제 각종 조형물과 미술품으로 가득 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입장료를 내고 말이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시대에 공공적 사용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모든 것이 사유화의 시대에 들어서 있다. 모든 것을 공유재로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재는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모색되었으면 한다. 모든 사람이 항공료와 경비를 들여서 그 공간을 찾아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박물관 내부의 모습은 다음 편에서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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