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0. 16:01ㆍsensitivity
호메로스의 시적 연금술이 빚은 ‘영웅’들의 대결 | |
고전 오디세이 ③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아 전쟁’의 숨겨진 진실 |
파리스의 헬레네 유혹 사건인가
풍요를 탐한 그리스의 침략인가
진화된 형태의 해적질인가
서구인들 상상력의 모든 것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
‘아이네이스’ 탄생의 모태로
기원전 1200년경, 전쟁이 터졌다. 10만여명의 그리스인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1186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아 해안으로 진격했다. 저항의 동맹이 구성되어 이에 맞섰다.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쟁쟁한 영웅들이 격돌한 별들의 전쟁. 수많은 전사들이 죽어 새와 개들의 먹이로 쓰러져 갔다. 그렇게 10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그리스 연합군 쪽의 목마 작전 한 방으로 끝났다. 트로이아는 불에 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 배에 올랐고,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겠다며 고향을 떠났다. 반면 승리를 거둔 그리스 연합군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겨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바로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다.
10년이 지나 돌아온 용사들을 맞이한 고향 땅에선 환영과 위로의 축제가 벌어졌겠다. 그들은 푸근하고 얼큰한 분위기에 취해 몸과 맘에 짙게 새겨진 전흔을 무용담으로 펼쳐내었을 터.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들었겠다. 시간이 지나 역전의 용사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전설로, 신화로 뭉게뭉게 피어나 꾸준히 전해졌다. 그렇게 400여년. 마침내 기원전 8세기경, 전설의 완결편이 나타났다. 호메로스는 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춘 후, 전쟁 전체를 엮어 <일리아스>를 썼고, 전쟁이 끝난 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 오뒤세우스의 모험을 <오뒤세이아>에 담았다. 두 작품은 대단하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뒤세이아>다.” 두 작품 안에는 서구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다는 말. 이런 말도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시작하며 점차 어른으로 자라날 때 곁에 서 있고, 우리가 활짝 피어날 때, 함께 피어난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 결코 그를 싫증내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곁에서 치워두자마자 곧바로 그를 향한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갖는 한계만큼이 우리 삶의 한계라고.”
대체 트로이아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가, 그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하여 도주하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아가멤논과 그리스 연합군을 구성하여 트로이아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트로이아 사람들이 온통 파리스다. “트로이아인들과 멋진 경갑을 찬 아카이아인들이 저런 여인을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해도 비난할 게 없소. 정말 놀랍지 않소?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니, 죽음을 모르는 여신을 닮았소이다.” 성채로 올라오는 헬레네를 보고 트로이아의 원로들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어이없다. 한갓 애송이의 사랑놀음이 나라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다니! 트로이아의 최고 영웅 헥토르는 파리스를 엄하게 꾸짖는다. “못난 녀석, 겉모습만 잘났지, 계집에 정신 나간 사기꾼 같으니! 넌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죽었다면 좋았다! 힘도 없고, 폐부 속에 투지도 없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네놈이 믿음직한 전우들을 다 모아,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전함들을 타고 대양을 건너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창잡이 용사들의 며느리를 머나먼 땅에서부터 이리로 데려왔단 말이냐? 아버지에게, 이 도성에, 모든 백성에게 크나큰 고통을, 그리고 악의를 품은 원수들에게는 기쁨을, 너 자신에게는 치욕을 가져온 것이란 말이냐?” 호메로스는 이 전쟁을 사랑에 빠져 신의를 저버리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 얼간이와 죄악을 벌하려는 당당한 용사의 맞짱 대결로 그려놓았다. 메넬라오스는 이렇게 외친다. “수호신 제우스여, 저에게 먼저 못된 짓 한 자에 대한 앙갚음을 허락하소서! 지체 높은 파리스를 제 두 손으로 쓰러뜨리게 하시고, 나중에 태어날 사람들 중 그 누구라도,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여 우의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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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헤로도토스도 비슷한 어조로 말한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자, 그리스인들은 사절단을 보내 헬레네를 돌려주고 납치에 대한 적절한 보상금을 지불한 다음 사태를 수습하라고 요구했다. 파리스는 거부했다. 곧바로 그리스인들은 군사적으로 대응했다. 과잉반응일까? “여인들의 납치는 물론 부당한 행위지만, 그 때문에 야단법석을 떨며 이미 납치된 여인들을 위해 복수한다는 것은 생각 없는 짓이고, 납치 사건을 덮어두는 것은 지혜로운 처사라고 페르시아인들은 생각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 이전에도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서로 여인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장군 멍군 식으로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시아 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인들이 납치된 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는데, 헬라스인(=그리스인)들은 스파르타 출신의 여인 때문에 대군을 일으켜 아시아로 쳐들어와 프리아모스의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페르시아인들은 말한다.”이 말을 뒤집어보면, 좀 오버는 했지만, 그리스인들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뉘앙스다.
과연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는 진실을 말했을까? 파리스가 신의를 저버리고 왕비를 납치했고, 정당한 응징을 위해 대규모의 그리스 연합군이 조직되었으며, 트로이아는 죗값을 치르며 완전히 파멸한 것일까? 좀, 그렇다. 왕비의 납치사건이라는 범죄행위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은 궁색한 명분이고, 진실은 다른 것일 수 있다. 아니 납치 사건 같은 것은 아예 없었으며, 전혀 다른 이유만이 전부였을지 모른다. 트로이아의 풍요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탐욕! 이런 의혹과 추정을 뒷받침할 정보를 투퀴디데스가 살짝 전해준다. “옛날에 연안이나 섬에 살던 헬라스인이나 이방인들은 배를 이용한 왕래가 활발하게 되자, 해적이 되었다. 가장 강한 용사의 지휘에 따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연약한 식솔들을 부양하기 위해 방벽이 없고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사는 도시들을 골라 침략하고 약탈하였으며, 이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삼았다. 이런 행동에 대해 그들은 부끄러움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영광으로 삼았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나 메넬라오스는 투퀴디데스가 말한 해적질과 인근지역의 침략을 통해 힘과 부를 축적했을 수 있다. 싸잡아 말하자면 트로이아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대부분이 해적의 왕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들이 벌이는 전쟁 자체가 진화된 형태의 해적 활동이며,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는 해적의 미화된 변형일 뿐이다. 투퀴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트로이아 전쟁은 호메로스의 현란한 시어로 과장되었으며, 그 규모는 해적들의 원정 활동보다 좀 더 큰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어쩌면 전쟁이 1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도 사실은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에서 10년간 간헐적으로 저지른 일련의 해적활동을 확대해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적질에 참여했던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의 행동을 그럴듯하게 꾸미려고 허풍을 떨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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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해적의 두목이 왕과 영웅이 되며, 폭력적인 해적질이 정당한 명분을 갖는 전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탐욕스런 노략질을 정의로운 응징으로 꾸며줄 마법의 수사(修辭)와 신화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교묘한 언어의 연금술이 필요했으리라. 혹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두 작품 속의 영웅들은 시인들이 노래할 만한 진정한 영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원래는 해적이었을지 몰라도, 일단 시인이 영웅으로 만들면 그대로 영웅이 되고, 그들을 그린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전혀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의 연금술은 교활한 미화의 도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빚어내는 신비로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또 하나. 트로이아 전쟁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아의 후예들이 먼 훗날 그리스를 정복한 되,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맞닥뜨리고는, 분노하고 질시하며, 모방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가 바로 그것이다.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기사등록 : 2010-04-09 오후 07:48: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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