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0돌 국제학술대회] 신자유주의 대안 광주항쟁에서 찾아야

2010. 5. 27. 13:17theory & science

 

 

“신자유주의 대안 광주항쟁에서 찾아야”
5·18 30돌 국제학술대회
한겨레 최원형 기자기자블로그

 

» 왼쪽부터 박해광 전남대 교수, 조지 카치아피카스, 헤라르도 레니케, 클라우디오 알베르타니, 베벌리 실버.

 

자본주의, 특히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던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끝났는가? 대통령이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고 장담하는 우리나라에선 국가 부도에 내몰린 그리스와 그곳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먼 나라 얘기’일 뿐일까? 세계 곳곳의 진보 지식인들이 광주항쟁 30돌을 맞아 광주를 찾았다. 전남대 5·18연구소 등 6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해 26~28일 여는 ‘5·18 30년,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색’이란 이름의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국가주도 발전 ‘가난·불평등’ 안겨
‘광주’는 대중의 자발적 자치 실현
실버 등 국외학자 ‘국제 연대’ 제안

 

25일 광주 시내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4명의 국외 학자들은 “지난 역사를 기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늘의 대안을 찾기 위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출신 국가도 공부한 내용도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광주에서 찾고자 하는 대안은 두 가지로 모인다. ‘민주주의’와 ‘국제 연대’다.

 

먼저 베벌리 실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정세 분석으로 논의의 물꼬를 텄다. 세계체제 분석을 통해 자본의 세계화와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움직임을 연구해온 그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발전모델이 수명을 다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적인 저수요와 이에 따른 수급 불균형은 1930년대 대공황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지금의 위기는 한층 근원적이라는 진단이다.

 

“1930년대에는 부를 틀어쥔 소수의 나라들이 대량 생산·소비 체제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불황의 해소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헤게모니를 주축으로 한 그 체제 자체의 한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실버 교수는 자본에서 노동으로의 대대적인 소득 재분배가 이뤄져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기존 발전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삶의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모델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은 헤라르도 레니케 뉴욕시립대 교수가 받아서 답을 이어갔다. 페루인인 그는 “이미 남미에서는 제국주의 국가에만 부를 가져다주던 광산의 문을 닫아 버리는 투쟁, 브라질의 대규모 기업형 농장을 소규모의 자족적 유기농 농장으로 바꾸는 투쟁 등 새로운 삶을 위한 운동이 널리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투쟁은, 16세기부터 근대화를 앞세워 국가 주도로 이뤄진 ‘발전’이 대중들에게는 되레 가난과 불평등만 안겼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곧 제국주의적 근대화와 자본주의적 발전모델을 거부하기 위해, 이를 충실히 이행해 온 ‘국가’에 더는 기대지 않으려 하는 대중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멕시코 시다드 아우토노마 대학의 클라우디오 알베르타니 교수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무장 봉기와 오악사카의 민중 봉기를 예로 들었다. 그는 “두 운동은 밀림과 도시라는 각각의 배경에 서 알 수 있듯 성격이 크게 다르지만, ‘스스로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는 맥락에서는 동일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맞아 각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늘려 복지를 강화하고 시장을 제어하는 등 국가의 구실이 커져가고 있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근원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세 학자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이들은 되레 국가에 저항하는 ‘자치’, 곧 대중의 자발적 움직임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이 광주를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전남대 교환교수는 “항쟁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광주의 역사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라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첫머리에 벌어졌던 한국의 광주항쟁은 중남미의 민중 봉기, 최근 국가 부도를 맞은 그리스의 노동자 총파업 등과 서로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외 학자들은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한 세계 곳곳의 노력을 공유하는, 운동 연대차원의 ‘국제주의’를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특히 실버는 “미국의 세계 지배가 깨어져 가고 있는 마당이라, 국제 연대를 통해 ‘반전과 평화’ 구축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가능성은 잊은 채 지나치게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 실버는 “국가와 시장의 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공동체 등에서 대중의 자치를 이루지 못하면 위기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레니케는 새로운 모델을 찾는 것을 “어두운 방 속에서 창문을 여는 것”에 비유했다. 창문을 연 뒤 무엇을 접할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열지 않으면 그 방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전체 28개 세션이 마련돼 국외 학자 20여명과 국내 학자 80여명이 참석한다. 광주항쟁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짚는 자리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현주소 점검과 대안 마련을 논의하는 자리, 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현황을 공유하는 자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광주/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기사등록 : 2010-05-26 오후 0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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