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3. 14:05ㆍtheory & science
“문제는 서구 중심 근대성에 숨은 식민성이다” | |
서울대·부산대 초청 특강 월터 미뇰로 교수 |
서구에서 넘어온 자본주의가 위기라는데, 유라시아 대륙의 변두리에서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쳐왔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구의 학자들이 말하는 위기가 우리가 겪고 있는 바로 그 위기일까? 그들이 역설하는 대안이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바로 그 대안일까? 서구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식민성’의 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월터 미뇰로 듀크대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났다. 미뇰로는 이번에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공동초청으로 방한해, 각각 ‘인식적 불복종과 탈식민적 선택’, ‘세계시민주의적 로컬리즘’이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펼쳤다.
문명화·근대화·세계화로 이어진 지배의 틀
“소수 이익 위해 인간과 생태 죽이는 체제”
공존 중시 ‘세계시민주의적 지역주의’ 제안
인터뷰 첫머리에 미뇰로는 영화 <아바타> 이야기를 꺼냈다. ‘문화 제국’인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고 그에 걸맞게 백인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속에 그려지는 외계 어느 별 원주민 종족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좀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꺼낸 열쇳말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기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지키고 복원하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생인 그는 아니발 키하노, 엔리케 두셀 등 다른 남미 출신 학자들과 함께 그룹을 이뤄 오랫동안 ‘탈식민’을 연구 주제로 삼아왔다. 서구 제국주의가 전지구적으로 퍼뜨린 ‘근대성’ 뒤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식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기독교·문명화·근대화·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포장은 늘 바뀌지만 식민지배를 위한 권력 체계는 늘 변함이 없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 유럽의 경험만을 가지고 전세계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 드는 서구 중심의 인식과 사유는 그러한 권력 체계를 유지시켜주는 틀이라 본다.
이 때문에 미뇰로는 근대성이 아닌 식민성을 극복 대상으로 보고, 서구 중심의 인식과 사유로부터 탈출하는 ‘탈식민적 전환’을 강조했다. 근대성은 식민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유럽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식민적 경험과 상처를 겪고, 이를 통해 서구 중심주의가 근대성 뒤에 숨겨두려 했던 식민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부터 서구 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인식적 불복종’이 나타나고, 이를 통해 탈식민적 사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아프로-아메리칸으로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썼던 프란츠 파농은 근대성과 식민성을 통찰한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사상가라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는 근대성·식민성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미뇰로는 자본주의에 대해 “소수의 이익을 위한 끊임없는 재투자로 인간의 삶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무차별한 자원 개발로 생태와 자연을 죽이는 체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작동 원리로 삼은 근대 세계체제가 18세기에야 정착됐다고 보는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달리, 그는 제국주의적 팽창 자체가 자본주의와 같은 뿌리를 가진 것으로 본다.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결국 탈식민주의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 속 외계 원주민들의 투쟁이 반자본주의와 탈식민주의 성격을 함께 내비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최근 주목받는 중남미의 각종 사회운동들을 탈식민주의의 모델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델 따위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어떤 모델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단 하나의 보편주의만을 바라보는 서구 중심적 사유라는 것이다. 그리스·로마·서유럽·미국이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생성된 서구 중심주의와 다르게, 탈식민적 사유는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등 식민적 상처가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서건 저마다의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때문에 탈식민적 사유는 기본적으로 다원적이고 ‘복수 보편적’(Pluri-versatility)이다. 식민지배를 거부하기 때문에 ‘지역주의’(Localism)이면서 공존을 중시한다.
미뇰로는 볼리비아나 에콰도르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원주민주의 정책 운동과 헌법을 다시 만들기 위한 움직임 등을 탈식민적 전환의 사례로 든다. 서구 중심적인 사유에 기대지 않고,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서구적 사유에 억눌려 있던 지역의 사유들이 부활하고, 계보를 형성해나가고 있다”고 봤다. 또 ‘세계시민주의적 지역주의’(Cosmopolitan Localism)란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류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을 끌어와, 세계화를 앞세운 서구 중심적 지배에 맞서 다양한 지역주의들이 서로 연대한다는 개념이다.
미뇰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탈서구화’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볼 때 탈서구화는, 탈식민화와 마찬가지로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 체제에 대한 성찰은 결여된 기획이다. 곧 동아시아에서 탈식민적 선택을 하려면,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믿음과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를 가르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도움말이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사등록 : 2010-06-02 오후 08:5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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