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통제의 줄타기' 공정성을 넘는다

2010. 6. 9. 20:15lecture

 

 

‘개방과 통제의 줄타기’ 공정성으로 넘는다
인터넷에 개방 물결 거세져
서울시·문화부도 동참 흐름
‘플랫폼통제’ 애플 성공 대조
사용자 존중 새 접근법 필요
한겨레 구본권 기자기자블로그

 

» 지난 5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CCK)가 ‘개방이 주는 사회적 혁신’을 주제로 연 국제콘퍼런스에서 시시엘 운동의 창시자인 로렌스 레식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IT시대 혁신 어떻게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계에 ‘개방’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여전히 특정 계층이나 돈을 낸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울타리 안의 정보가 많기는 하지만, 소중한 정보가 개방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울타리’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질서인 사적 소유의 상징이지만, 정보의 공유를 통해 혁신과 가치가 늘어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개방을 통해 혁신과 가치를 키운 대표적 기업들이다.

지난 5일과 6일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CCK)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방이 주는 사회적 혁신’을 주제로 연 국제콘퍼런스에서는 개방과 혁신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와 접근법이 소개됐다.

 

■ 대세로 자리잡은 ‘개방’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저작권 개방 사례가 소개됐다. 아랍권 방송으로 유명한 알자지라방송은 지난해부터 누구나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저장공간(cc.aljazeera.net)을 만들어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해오고 있다. 알자지라가 적용한 사용 조건은 원저작물을 변경하거나 2차 저작물을 만들지 않고, 저작자를 표시하는 비상업적 용도로 한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통계청과 공공정보 데이터센터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들을 모두 개방했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 있는 모리미술관은 작가와의 협의를 거쳐 누구나 전시물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누리집 방문자가 크게 늘어나는 등 홍보효과가 크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서울시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공공정보와 콘텐츠에 대해 시시엘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서울시가 만든 지도와 데이터베이스, 디자인, 사진, 웹페이지 등을 별도의 허가 없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한 고교생이 만든 아이폰용 응용프로그램 ‘서울버스’가 서울시와 경기도 누리집의 버스 출발·도착시각 정보를 ‘허락없이’ 이용했다는 이유로 차단당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저작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문화부는 공공기관 저작물을 수집, 생산할 때 권리처리를 분명하게 하고 민간 개방절차와 시시엘 부착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만들어 7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 ‘개방’과 ‘통제’를 넘어서 이번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로렌스 레식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개방과 혁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개방이냐 아니냐’는 누군가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를 몰아내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보급하기 위해 플랫폼 차원에서 통제를 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인터넷에서의 혁신은 리눅스, 파이어폭스, 구글 등 개방을 내건 업체들에 의해 주도됐다. 새로 등장한 이들 플랫폼은 콘텐츠를 통제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통제가 적을수록 더 과감하고 활발한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최근의 페이스북, 트위터, 애플 등은 다시금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플랫폼과 개발도구를 외부에 제공해서 이에 기반한 개발과 혁신이 일어나게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플랫폼 제공자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있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은 애플리케이션의 등록과 퇴출에 대해 전권을 갖고 있다. 레식 교수는 “자유와 개방이 혁신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새로운 흐름은 ‘통제되는 개방’이며, 경제활동 역시 이윤추구와 공유경제가 뒤섞인 ‘혼합형’(하이브리드)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정한 이용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며 “상업적인 것이 공정하다면 번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공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개방’이냐 ‘통제’냐의 문제보다는 궁극적 권한을 사용자가 행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 CCL이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CL)는 인터넷시대에 창작문화를 북돋우기 위해 2001년 로렌스 레식 교수에 의해 도입돼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저작물 사용 허락 방식을 말한다. 시시엘(CCL)은 원칙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을 허락하되, 저작권자의 뜻에 따라 ‘내용변경 허용, 상업적 이용 금지’ 등 일정한 조건을 달 수 있다.

 

기사등록 : 2010-06-07 오후 1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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