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5. 17:13ㆍlecture
침몰하는 ‘신자유주의’…경합하는 새 모델들 | |
[열려라 경제] 흔들리는 세계경제 패러다임 진단&전망 금융위기→재정위기 번져…미국식 모델 ‘파산’ ‘고용·복지·생태’ 등 중시하는 모형 대안 떠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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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직접적 충격은 많은 부분 해소됐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가령 각국 정부의 능동적인 대응에 힘입어 민간 부실은 상당히 정리됐다고는 해도, 최근 그리스 사태에서 확인되듯이 위기의 후유증은 공공 부문의 부실, 즉 재정위기로 번지면서 새로운 위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아가 새천년 세계경제의 ‘게임 룰’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즉, 그동안 세계경제를 진두지휘해 온 패러다임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일고 있다. 일단 세간의 관심은 민영화나 규제완화, 그리고 효율적 시장이나 합리적 기대, 또 이에 기반한 각종 계량 모델에 맞춰진다. 하지만 진짜 쟁점은 그 이상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부활 과정에서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한 새케인스주의, 그리고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새로운 판본인 신자유주의까지 도마에 오른다.
오늘날 미국이 주도한 세계경제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다. 이것이 항간에서 이해되는 것처럼 시장 맹신론은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1970~80년대 시장원리주의적인 보수주의의 부상, 즉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과 같은 신보수주의 사조의 부흥에 대응한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신이다. 다시 말해 대공황의 교훈에 입각한 근대적 자유주의, 곧 (신)케인스주의의 한계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도전을 흡수한 결과다. 케인스의 얼굴을 띠면서도 통화주의나 신고전파의 문제제기를 적극 흡수한 새케인스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 강령이라고 할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에 케인스주의 성향이 강한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에서 만든 것이다. 단, 근대적 자유주의가 강조한 정부의 능동적 역할은 중앙은행의 시장친화적 미세조정으로 재편됐고, 보수주의의 본령 ‘고도금융’(high finance)은 투자은행이나 유니버설뱅크로 흡수됐다. 이러한 신고전파와 새케인스파 간 동맹의 축은 리플레이션(reflation·유동성 팽창)이었다. 1990년대 이후 금융시장에서 거품 붕괴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된 것은 이 때문이었고, 2000년대 증시거품 붕괴에 맞선 주택거품 부양(이른바 ‘맞불 작전’)은 그 절정이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자산가격 케인스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그린스펀 시절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비대칭적 통화정책 전략으로 비난받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 단적인 예다.
이번 위기로 신자유주의에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이제 다양한 대안 모델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베이징 컨센서스’다. 위기 중에도 의연한 행보를 이어왔던 중국의 위상을 반영해 세를 키우는 이 모델은 기본적으로 고용과 성장을 중시하는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성장 전략이다. 선진국형 모델로는 일본과 독일의 ‘생태지향적 모델’이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테마 아래 환경과 사회를 중시하는 축소지향적 성장 모델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녹색 뉴딜’도 같은 맥락이지만, 축소지향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 외에 북유럽의 금융위기 극복 경험에 주목해, 노동과 복지를 결합한 ‘노르딕(Nordic) 모델’도 관심을 끈다. 물론 이들에 대해 아직은 비판이 많다. 가령 베이징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의 중국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생태지향적 모델은 선진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가 하는 회의론이 강하며, 노르딕 모델은 노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이라는 맹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진화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들이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금융화와 세계화를 결합시킨 금융세계화에 대해서도 반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post) 금융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된다. 우선, 로버트 실러 교수가 주창한 ‘금융 민주주의’(financial democracy)는 단순히 금융기관의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진정 금융서비스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개인 삶에 적용된 리스크 관리”로서 금융의 위상을 재설정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이 큰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도 그 일환이다. 둘째, 오바마가 취임연설을 통해 공론화시킨 ‘공정무역’(fair trade)은 본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공정 교역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나, 점차 미국 등과 같이 부채에 의존한 소비 남용을 제어하려는 차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 외에 최근 회자되는 ‘토빈세’(Tobin tax)도 중요하다. 토빈세의 본래 취지인 핫머니 위주의 국경간 자본흐름에 대한 통제는 세계화의 공과를 분명히 가리자는 것이며, 최근 금융 과잉에 대한 규제 차원에서 쟁점화되는 은행세는 금융의 위상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에 기반한다.
장보형/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기사등록 : 2010-05-09 오후 10:4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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