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들 '투표 무관심'--정치권 '대책 무관심'

2010. 4. 27. 11:30lecture

 

 

20대들 ‘투표 무관심’…정치권 ‘대책 무관심’

투표시간 연장안 한나라당서 반대
부재자투표소 기준 완화 논의 중단
선관위 “관리 곤란” 제도개선 발목

 

20대가 투표하면 세상이 바뀐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유권자단체·시민단체 등은 20대 투표율을 높일 방안을 도입하자고 입을 모으지만 정치권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주저한다.

 

 

 

선거에서 20대는 ‘힘’이 세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선거인 수는 3706만4282명이었다. 연령별 비율은 각각 19살 1.7%, 20대 20.3%, 30대 23.6%, 40대 22.6%, 50대 14.6%, 60살 이상 17.2%였다. 20대는 선거인 수로만 보면 50대나 60살 이상 선거인보다 많다.

 

20대는 현실에 대한 불만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10년 1/4분기 소비자 태도 조사를 보면, ‘고용상황 예상’ 질문에 46.2%가 “똑같을 것”이라고 답했고, 23.1%가 “조금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2.6%는 “많이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0대는 현실을 바꾸는 데 주어진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2006년 지방선거 때 20대 투표율은 33.9%로 꼴찌였다. 50대 투표율 68.2%나 60살 이상 투표율 70.9%에 한참 못 미쳤다. 처음 선거권을 가진 19살 투표율 37.9%보다도 낮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투표율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로 보면 20대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무관심하다.

 

그럼에도 20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사실이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때 당선자인 오세훈 시장과 강금실 후보의 득표 차이는 49만9883표였다. 당시 서울시의 20~29살 유권자 수는 약 165만명이었다. 20대가 60살 이상만큼만 투표한다면(115만5000명), 현실적으로 서울시장 당선을 좌우하는 ‘캐스팅보트’가 되는 힘이다.

 

시민단체, 정치권, 선관위 모두 20대의 투표율을 높이자는 데는 한목소리를 낸다. 먼저 나선 것은 20대다. 지난 19일 2030 정치주권 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어 △현행 2000명인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 기준을 500명으로 완화할 것 △관공서와 지하철 역내 투표소 설치 △전자투표 도입 등 20대 투표율을 높일 다섯가지 방안 도입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지난 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투표시간 연장과 부재자 투표소 설치 확대를 담은 정치관계법 의견 청원을 낸 바 있다.

 

20대와 시민단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투표시간 연장과 부재자 투표소 설치 확대다. 2030 정치주권 네트워크는 “투표일이 휴일인 것은 30대 직장인에게만 해당된다”며 “20대 대학생들은 투표일에도 아르바이트, 학원, 도서관을 전전하다 보면 이미 투표소 문이 닫혀 있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일본도 투표시간을 연장해 투표율이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런 제안에 부정적이다. 투표시간 연장과 관련해 선관위는 “개표가 늦어져 투개표 관리가 어렵고 예산이 더 든다”며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재보궐선거 때 투표시간을 연장했지만 투표율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다. 선관위는 또한 부재자 투표소 확대도 쉽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관위 관계자는 26일 “투표소 설치 기준인 2천명이 안 되더라도 지리적으로 고립된 대학 등에서 신청할 땐 설치해 줄 계획이며 그런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청 과정이 복잡하다. 선관위에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요청할 수 있는 주체는 법률상 총장이나 대학본부 등 ‘대학의 대표자’다. 이 때문인지 전국의 대학 중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된 곳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5곳,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때 3곳뿐이었다.

 

20대 투표율을 높이자는 방안들이 당장 6·2 지방선거에 도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 등 20명은 지난달 23일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 기준을 500명으로 완화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정치개특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특히 투표 마감 시한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연장하는 법안은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다. 정개특위의 활동 마감 시한은 27일이어서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법안이 지방선거 전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도 겉으론 20대 투표율이 낮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20대를 조직하고 ‘정치의 주체’로 대접하는 데는 소홀하다. <한겨레>가 각 정당에 20대 당원 숫자를 물었으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아직 통계 자료가 없어 찾아봐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각각 8171명과 2240명이라고 곧바로 정확한 수치를 댔다.

 

“88만원 세대는 88%의 투표율로 기억되고자 한다. 선관위와 정당, 단체는 청년들의 요구를 흘려듣지 말고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30 정치주권 네트워크의 기자회견문이다. 이 질문에 정당, 시민단체, 선관위는 각자 다른 답을 내놨다. 결과는 37일 뒤 나온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니가 투표 안하면 ‘애가타’…기권하면 개고생 ‘쿡~해’
영화·개그 등 패러디…톡톡튀는 독려 캠페인
청년연대기구 만들어 ‘20대 위한 정책’ 제시도
한겨레 황춘화 기자 김민경 기자기자블로그
» 20대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 카페와 트위터 등에는 20대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다양한 패러디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출처 88프로세대운동본부(cafe.daum.net/88vote)

20대, 투표율높이기 ‘펀펀펀’

 

‘경고! 투표 않고 놀러가면 엄한 놈이 당선된다.’(88프로세대운동본부 구호)

 

6·2 지방선거를 소리 없이 뒤흔들고 있는 것은 단연 20대들의 유권자 활동이다. 그동안 선거 무관심층으로 여겨졌던 20대들은 이번 선거를 맞아 우후죽순처럼 단체를 만들고, ‘우리를 위한 공약을 만들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대의 젊은 감성에 맞게 독특한 구호와 패러디로 무장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점도 눈에 띈다.

 

손한민 ‘2010 대학생유권자연대 이유(2U)’ 상임대표는 “선거철이면 후보들이 노인정에 찾아 인사하지만, 아무도 학교에 와서 인사를 하거나 공약을 내걸지 않는다”며 “이는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 스스로도 변하지 않으면 88만원 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 3760만명 가운데 20대는 19.3%인 725만여명이지만, 투표율이 낮고 표가 분산돼 정책적인 혜택에서는 늘 소외돼 왔다는 게 손 대표의 생각이다.

 

지난 25일 ‘2010 청년유권자행동’과 ‘이유(2U)’는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20대들의 희망을 담은 ‘10대 정책·공약 요구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청년의무고용제 △반값등록금취업학자금 상환제 자격요건 삭제 △공공기금을 통한 반값 기숙사 실현 등이다. 오늘을 사는 20대들이 직면한 팍팍한 현실을 반영한 내용들이다.


박희진 청년유권자행동 운영위원은 “그동안 20대들이 겪고 있는 등록금과 일자리 문제들은 너무 많이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20대들을 불안하게 하는 현실을 개선할 정책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만간 10대 요구안의 세부 내용을 확정해 각 정당과 후보에게 공약 채택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투표율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이 28.1%까지 떨어졌다. ‘88만원 세대’를 대표해 20대들이 모여 만든 ‘88프로세대운동본부’는 “나의 한 표가 88만원 세대를 880만원 세대로 만들 수 있다”는 구호 등을 내걸고 온·오프라인에서 투표 독려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20%까지 떨어진 20대들의 투표율을 88%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기존 시민단체들이 모여 만든 2010 유권자희망연대도 △투표 마감시간 밤 9시로 연장 △트위터·인터넷 글쓰기 규제 대폭 완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톡톡 튀는’ 패러디물은 20대들의 가장 큰 무기다. 한 이동통신 광고를 흉내낸 ‘6월2일 기권하면 개고생, 투표소에서 쿡~해’, 영화 <아바타> 포스터를 패러디한 ‘니가 자꾸 투표 안하고 그러믄 애가타’ 등과 같은 사진들에는 벌써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선거 구호도 ‘노 보트, 노 키스’(no vote, no kiss: 투표하지 않으면 키스도 없어)라거나 ‘됐고, 투표!’ ‘묻지 말고, 일단 투표’ 등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이유’(2U)는 온라인에 ‘나는 ○○한 이유로 투표를 하겠다’는 30만 온라인 댓글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오는 30일 5000여명이 참여하는 대학생 정치참여 권리선언이 준비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전날이자 선거를 열흘쯤 앞둔 5월22일에는 대학생 민주주의 문화제가 열릴 계획이며, △동아리방 펼침막 달기 △대학생 유권자 파티(홍대 인디밴드 공연) 등도 예정돼 있다. 손 상임대표는 “과거 대학에서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눠 활동했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색깔을 떠나 연대해야 한다”며 “앞으로 모든 20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생활 유권자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김민경 기자 sflower@hani.co.kr

 

기사등록 : 2010-04-26 오후 10: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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