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나의 삶

2010. 6. 19. 18:34sensitivity

 

 

나의 삶 / 고은
한겨레

 

 

» 고은 시인
※ 고은 시인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며 시 <나의 삶>을 <한겨레>에 보내왔습니다.
 

산마루시여 강물이랑이시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시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시여
할아버지의 아버지시여
맴돌아
할아버지시여
할머니시여

 

할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산에 어김없이 의지하고 살아오셨습니다
새벽 건기침소리 어리번쩍이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할머니의 강에 숨결 의지가지로
강물소리 조록조록 들으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던가
나의 산이 거꾸로 나를 의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밤중 산이 비슥차 울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강이 나를 의지가지로
비척비척 흘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삽날이 번뜩였습니다 쇠갈퀴 으르렁댔습니다

 

이제 산이 내려다볼
회도는 강물이 없어져 갑니다
강물이 올려다볼
저문 산의 애틋한 그리움 없어집니다

 

오늘도 강은 강대로 죽어가고 산도 산대로 마구 죽어갑니다

 

돌아보소서
이 꼬라지
이 꼬라지가
할아버지 할머니 후손의 막된 나의 삶입니다

 

돌아다보지 마소서
더이상 나는 당신들의 무엇이 아닙니다
한갖 이 문명 떨거지 생핏줄 끊긴 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