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30. 17:56ㆍBook
신대륙 첫 발견자는 콜럼버스가 아니다 | |
![]() |
![]() ![]() |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제임스 로웬 지음·남경태 옮김/휴머니스트·2만8000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은 미국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가르치는 미국사 교과서를 분석했다. 대표적인 교과서 18종을 대조하여 그 교과서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짚어내고 학교가 가르쳐 주지 않는 미국사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책이다.
미국판 역사교과서 왜곡 실태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책이지만, 거기 머물지 않는다. 교과서가 감춘 이야기를 넘어 ‘유럽의 산물이자 후예’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형성 과정과 이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논점들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미국사 입문서라 볼 수 있다. 사회학자인 지은이 제임스 로웬(68·미국가톨릭대 방문교수)은 20여년 동안 미국사 바로 알리기 활동에 나서 강연과 집필·연구활동을 해왔다.
미국사 교과서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비단 강 건너 불은 아닐 것이다. 미국 교과서가 가르치는 미국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 곧 미국 ‘주류’ 사회의 미국사 인식은 고스란히 한국인들에게도 옮겨지고 번안돼온 탓이다. 이는 곧 유럽(백인) 중심주의 역사다.
지은이 로웬이 이끄는 대로, 우선 헬렌 켈러(1880~1968)와 우드로 윌슨(1856~1924)의 사례를 보자. 교과서들은 켈러를 하나같이 장애를 극복해낸 소녀로 치켜세운다. 고등학교에서 이를 배운 대학생들은 대부분 켈러의 60년 남짓 성인 시절을 알지 못했다. 켈러가 급진적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혁명을 열렬히 환영하고 세계산업노동자동맹에 가입해 맹렬히 활동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 들어 있지 않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알파벳을 간소화하는 일에 나서던 켈러는 시각장애인이 하층계급에만 집중돼 있으며, 사회계급이 삶의 기회뿐 아니라 시력까지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사회주의자가 되자 당시 미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장애를 이겨낸 그의 용기와 지성을 찬양했던 언론들은 그 장애를 부각시켜 그의 활동을 폄하했다. 미국 교과서가 그려내는 28대 미국 대통령 윌슨의 모습은 여성참정권과 민족자결주의와 같은 진보적 대의를 이뤄낸 영웅이다. 대부분 교과서는 윌슨의 적극적인 라틴아메리카 침략정책이 ‘자결주의’의 미명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과 그가 견지했던 인종차별주의를 언급하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신화는 아메리카에 이미 수천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또한 그 이전의 ‘탐험가’들을 지워 버린다. 1492년 이전에도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아메리카를 탐험했고 1300년대 초 서아프리카 상인들은 대서양 무역 활동을 했다. 그 전에 바이킹이 아메리카에 정착촌을 건설했고, 더 이전에 고대 페니키아인은 서아프리카를 거쳐 멕시코 대서양 연안에 닿았다. 요컨대 항해술과 탐험은 ‘140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획기적으로 만든 것은 그가 ‘새로운’ 대륙에 갔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의 상황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본다. 그는 교과서가 누락한 유럽의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군사기술의 발전을 꼽는다. 유럽은 1400년께부터 대포를 제작해 선박에 장착했고, 끊임없는 유럽 내 전쟁은 무기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유럽의 다른 대륙 ‘진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군사력과 함께, 부를 쌓고 타인을 거느리는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신학이 유럽인들의 탐험시대를 열었다.
지은이는 질문한다. 무기가 유럽인의 ‘탐험’과 ‘지배’를 용이하게 해준 요인이라고 말하는 일이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면 이때 우리란 정확히 누구인가. 그 ‘우리’란 바로 ‘유럽인의 후예’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사 교과서는 유럽 중심주의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교과서가 유럽이 세계 정복에 나선 진정한 원인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더 똑똑하므로 더 부유하고 강력하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해안에 상륙했다는 교과서의 전통적인 설명은 그가 즉각 원주민 지배에 나섰다는 뜻이다. 화력(무기)을 앞세운 정복과 착취다. 그는 아이티 원주민의 인구 절반 이상이 절멸하여 노예노동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학살과 강간, 피비린내 나는 노예착취 제도를 선도적으로 신대륙에서 행한 인물이다. 대부분 교과서의 존경 어린 콜럼버스 묘사는 학생들에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를 무심결에 주입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책은 2001년 국내에 초판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 번역본은 지은이가 초판 뒤 새로 나온 교과서들까지 아울러 2007년 출간한 개정판을 옮긴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기사등록 : 2010-10-29 오후 09:46:18 |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국의 [진보집권플랜] (0) | 2010.11.04 |
---|---|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0) | 2010.10.30 |
폴 슈메이커의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0) | 2010.10.30 |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 (0) | 2010.10.30 |
제임스 밀러의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0) | 2010.10.16 |